조용헌의 백가기행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 그룹의 4가지없는 광고 카피였다.
당신이 어디 사는가가 당신이 누군지를 보여준다고...
비싼 집에 사는 당신, 가치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근데, 그 집이 멋진 한옥이었거나 으리으리한 주택이었다면 그럴 만도 하지만,
아파트 광고였으니 참 한심한 일이었다. 

조용헌이 멋진 곳에 지은 집, 아늑한 풍광을 느낄 수 있으며,
주인의 고요하면서도 넉넉한 삶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글을 쓴 것이다.
수십 평의 넓은 아파트를 개조하여 다실로 쓰는 집도 있고,
한평 반의 좁은 공간에서 차 마시며 글 쓰는 사람의 집도 있다 

결국, 집이 얼마나 비싼지를 묻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겠다.
꼭 비싼 집에 돈 많이 들인 인테리어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만날 수 있을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역설적으로
당신이 어디 사는가는 당신이 누군가를 보여준다. 

여유있게 사는 사람들이 인스턴스 커피를 마실 리 없으며,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아웅다웅 다툴 리 없다.
조용한 음악을 즐기면서 욕심내지 않고 제 할일 하고 살아갈 것이다.
조금 더 큰 밥그릇 잡아채려고 다투는 바보들에게 최부잣댁 교훈은 찬물을 끼얹는 일과도 같다.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논 사지 마라.',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과객 대접을 후하게 하라.',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마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 옷을 입어라.'(91)  
   

한 잔 차를 앞에 두고 은은히 풍겨오는 아릿한 맛과,
찻물 마신 뒤의 달착지근한 물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부터가 있어야 한다.
빡빡한 삶의 모퉁이에 고요한 찻집 하나 숨겨둘 노릇이다. 

   
  차는 풍류가 아니다.
혁명이다.
차를 마시면 우리의 의식주 전체가 바뀐다.
의식주가 바뀌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다.
다법을 행하다 보면 채식을 많이 하게 된다. 과식을 피하고 소식을 한다.
담백한 먹을거리를 좋아하게 된다. 옷도 그렇다.
복장을 갖춰야 한다. 사는 집도 달라진다. (21)
 
   

멋진 집들의 사진은 부러움을 부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을 읽는 일로도 나는 호사를 누린 듯이 흡족하다.
꼭 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공간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경지라면, 그곳은 인간 세계가 아니다.
인간 세계 속에서도 곧 '非風流處風流足'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을 작가는 잊지 않고 가르친다.
마음이 있는 곳에 얼,흥,정,멋,맛,격 (75)은 따라올 수 있다.
그리고 어디나 차, 그림, 글씨, 시, 민족 사상 (250)의 5풍류는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거겠다.

마음을 고요하게 밝히는 곳.
그곳이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집이다. 

   
  고요함이 중요한 이유는,
고요함이 있어야만 긴장이 풀리고,
긴장이 풀려야만 내면 세계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침잠해야만 신비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은 깊은 행복감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체험의 기본은 정 靜이다.(140)
 
   

사회가 아무리 돈만 밝히는 천박한 사회가 되어서 굳이 사장님이 아니라고 해도, "부자되세요. 대박이요! "하는 인사를 건네는 판국에 이런 고요한 책을 읽는 일은 마음의 밭을 일구는 호미질이 된다. 

당신이 사는 곳.
거기는 얼마나 넓고 비싼가, 투자 가치가 있는가보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당나라 유우석은 '누추한 방에 거는 글(누실명)'에서 이렇게 썼다.

   
 

산이 높다고 전부가 아니다.
그 산에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
물이 깊다고 전부가 아니다.
거기 용이 살아야 신령한 곳이다.   

군자가 거처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공자) 

 
   

명당은 정기를 받은 곳인데, 한자로 풀면 밝은 집이 된다.
환경이 밝은 집이기도하고,
공기가 밝은 집이기도 하고,
마음이 밝은 집이기도 하다.
그 중에 제일은 역시 마음이 밝아지는 집이 '명당'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자신의 '휴휴산방'을 벽암록에서 빌려왔다.

 '휴거혈거 철목개화,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  

쉬고 또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야 한다.
집이 돈을 버는 도구가 되면, 그 집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쉼은 망하는 거고, 이뤄지는 일이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마음을 밝히는 땅, 명당에서, 쉬고 또 쉬노라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피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다 이룰 수 있는 법이다.  

넓지 않은 아파트, 초가집 안에서도 넉넉하게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1-04-20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의 말씀 중에 새겨들었던 게 운명을 바꾸는 법이인데, 바꾸어 말하면 잘 사는 법 쯤 되겠죠.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책이랑 관련하여선 명당이 있겠고,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운명을 바꾸는 법 중 한가지래요.

그런 의미에서 님 적선하고 계시는 거니(적어도 제게는요~) 복 받으실거예요.^^

글샘 2011-04-20 08:49   좋아요 0 | URL
운명이 바뀐답니까?
그게 오만한 인간의 사고의 한계죠.
전 운명따윈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마치 지구의 온난화나 기후 변동이 불규칙적인 것처럼,
운명의 파동도 말날 때마다 넘어야 하는 파도처럼... 서핑을 즐기려 노력해야겠죠.

그게, 실존(존재)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말 아닐까 하며 산답니다. ㅎㅎ
본질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명리학'이거나 '주역'이라면, 저는 실존의 흔들림에 주목하려고 하는 거죠.

아침부터 스승님 되는 기분도 좋은걸요? ㅎㅎㅎ

2011-04-2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0 21:00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제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한 건, 운명처럼 완전히 고정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는 것이고,
또 운명을 변화시키려 하는 이야기는 고정된 것처럼 인간을 옥죄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자는 것이겠죠.

파도가 파도를 만나면 더 큰 파도가 되는 이치는 참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
운명 따윈 없다고 깍두기처럼 살 건 아니겠죠. ㅎㅎ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뭐, 이런 거랄까.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네요.
일구덩이에 파묻힌 채로 매일 보내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하지만, 일 자체는 많아요.
바쁜 와중에 대~충 쓰는 리뷰라 필력이랄 게 없을 터랍니다. ㅋ
책을 억지로라도 읽으려 하고, 리뷰도 억지로 남기려 할 뿐이죠.

최성각은 ... 좋네요. 읽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