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벽 3 - 변화의 물결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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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 노조 세워...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이런 음악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던 시대도 있었는데,
외딴 카페에 모여 앉아 교원노조의 분회를 만들고, 또 한 달 만에 해직의 위협을 받던 시대,
텔레비전에선 맨날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수업 시간 아이들은 왜 교사가 노동자냐는 물음을 하던 날들... 

1956년 전후의 일본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교사 해고의 위기와 교사들의 대응에 관한 르포성 소설인 이 책을 이십 여 년만에 읽으면서, 다시 이십 여년 전의 슬픈 학교의 실루엣이 떠올라 내 마음은 한동안 방황하곤 했다. 

신규 교사이던 나에게 노조가입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단지 가입만으로 해직의 위기에 닥치는 현실은 참으로 비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쉬쉬하며 가입을 꺼리는 교사들은 아직도 '전교조의 정치적 강성'을 핑계로 돌리며 참여를 회피한다.
툭하면 빨갱이 내지는 불평분자로 취급하는 안티 세력으로서의 전교조 교사는 가입해있는 것 자체가 힘든 싸움이다. 

어쩌면 50년 전의 일본 노조는 교장도 회원이고, 교사 대부분이 회원이던 분위기여서 문제제기가 비교적 덜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노조는 군사 독재 정권의 이간질과 학교장의 전횡이라는 질곡에 부딪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좌절에 좌절을 겪어온 누더기만의 역사를 안고 있어 슬프다. 

오자키 선생의 아이에 대한 애정.
교사는 노동자지만, 또한 교사는 성직일 수밖에 없음을 뇌이는 사와다 선생.
세상의 평가는 모두 엉터리이며, 자신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나를 아프게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드럽고 매끄럽게 처세하며 적당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고,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는 이치조 다로 선생이 어쩌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아닌가 싶어 뜨끔하기도 하다.
치열하게 살고, 아이들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모습보다는,
매끄러운 학급 운영과 아이들의 형식적 성장에 적당히 관여하는 모습이 바로 나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반성. 

교단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격려하고 가정과 연계하여 개선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교사이어야 하거늘...
일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들어 빠져나오지 못함을 애써 힘들다며 떠벌이는 멍청이로 사는 것 같아 부끄럽다. 

참교육 실천 대회처럼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하여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보충수업에 매몰되어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는 교사가 되어버린 것에 몹시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의 잘못도 있지만 '우리' 학교의 모순도 크다.
나 하나의 저항으로 쉽게 바꾸기 힘든 것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 학생의 능력차를 학급관리 차원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 경험학습이 유리한가, 계통학습이 유리한가.
- 진학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 가난한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을 어떻게 없앨까.
- 여교사의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학교의 교육 활동과 어떻게 양립시킬까.
- 상품과 열등감의 문제,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문제들을 두고 교육연구회에서 토론하는 일본의 교사들은 아름답다.
한국에도 분명, 이런 과제를 두고 방학에 모이기도 하지만,
기실 참석해 보면 늘 그 얼굴이 그 얼굴, 이십 년이 넘도록 인물이 더 들어오지 않는 한계가 크다. 

이십 삼 년째 같은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그리고 평생 이 길을 갈 사람에게,
간혹,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얼마나 삐뚤어져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만들고,
또한 저 먼 곳의 미루나무가 되어 내 발자국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푯대가 필요한 법이다.
이 책은 그런 스승이 되어 주었다.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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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이나 적용은 둘째치고, 토론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라도 되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이제와서는 선생님도 사람이고, 생계가 매인 가장이자 직장인이며, 윗분들의 눈치를 봐야되는 조직속의 사람인걸 알지만, 그래도 어린시절을 약각만 더듬어 주셔서~ 살다보면 억지가 통할때도 있고ㅋ 진정한 정답은 하나지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정답이 달라질수도 있다는, 다른 선택의 여지도 꽤 있다고 말해주시는 그런? 분이 계셨으면 하는 사소한 바램이 있습니다.
작금의 카이스트 사태를 보니 너무 외줄타기 분위기라 안타깝습니다~

글샘 2011-04-20 08:43   좋아요 0 | URL
그래요. 사람마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르죠. 정답은 없는 거고 말입니다.
정답만 찾던 아이들에게 카이스트의 카오스는 무서운 블랙홀이었을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