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야흐로 한국은 돈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길바닥에 넘쳐나는 돈이 잡아먹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격이요, 인간성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시간이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섬, 그런 것들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느린 삶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느림 속에 비로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갈 시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는 영양떼처럼 경쟁상대 아닌 경쟁상대가 되어
절벽으로 달릴지, 연못으로 뛰어들지 앞을내다보지 못하는 상태로 뛰고 있다.
그들에게 뭔가 시니컬하면서도 묵지근한 훈계를 하려면, 글쎄다. 고미숙의 글로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장자에서 죽어가는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연못이 말라들어가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촉강의 물을 내밀어 너를 살려주겠다는 이야기는 너를 죽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그 물고기를 살리는 것은 한 양동이의 물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럼, 그 한 양동이의 물은 누가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인데?
사회 시스템이 불비한 시대, 각개전투가 생존의 유일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정답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한 양동이의 물도 물론 필요하지만, 장차 촉강의 물을 내밀어 줄 사람도 필요한 건데 말이지. 

'수유+너머'의 삶을 마치 커뮤니티의 성공한 사례처럼 이야기하며,
박사 학위를 따서 글을 써 먹고 사는 자신의 삶이 무에 엄청 잘 나가는 모범 사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정말 '돈의 달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 책을 집어던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부모의 가난은 자식한테는 차라리 축복이다.(80)
이런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것 같은데...
물론 한시적으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온 386세대로서 치기어린 한마디를 할 수는 있다 치자.
그렇지만, 부모의 가난을 축복이라 말하는 자는,
가난은 한낱 남루(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자와 비슷한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 땅에서 부는 대대로 물려지고, 가난도 대대로 물려졌다.
몇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상위층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축복일 리는 없다.  

부유한 집안이 계속 재생산되는 기제를 가진 국가 경제 시스템을 눈 번히 뜨고 보면서,
가난이 차라리 축복이란 말이 나올까?
아이들이 잘 사는 지역에서는 온갖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이 상류사회로 가는 길을 걷고 있고,
빈곤한 지역에선 어떤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은 하류 문화에 빠지는 길로 가기 쉬운 현실에서,
가난이 축복이라니...  

그에게 아파트는 '괴담'일지 몰라도, 한국 사회처럼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심하고,
남의 집안 이야기에 과도하게 간섭이 심한 사회에서,
아파트처럼 고립된 편의시설을 즐기는 사람들이 과연 불행하다고 느낄지,
또 아랫목과 윗목이 얼마나 윗목 편향의 비중으로 추운 가옥구조였던지를 떠올린다면,
아파트를 허물고 공동 생활을 즐기자는 주장은 좀 현실감이 심히 떨어지는 것 같다. 

공동체를 최선의 생존전략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예전의 시어머니-며느리로 불리던 여성의 공동체가 아름다운 생존의 집단이었다고 생각하냐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고.
가정이 해체되는 중심엔, 그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공동체의 기억이 담긴 거 아닐까 하고... 

간디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것은 당시 인도의 사회 구성을 염두에 두었던 발언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마을'을 운운한다는 것은 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마을은 없다.
오로지 땅값이 오를만한 '마을'에는 짬짜미로 이뤄진 담합 공동체가 있을 뿐이고,
현관문만 딸깍, 잠그면,
시어머니도 찾지 못한다는 영어로 씨월렁거리는 무슨 프레스티지, 메르디앙...이 앞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 단절된 유리창 속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만나서 짓밟혀 보겠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의 인문학 역전 프로젝트는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인데, 커뮤니타스 편에서는 실망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읽기가
숨쉬기 힘들어하는 물고기에게 물 한 양동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촉강의 물을 내밀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을 거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의 달인'에 관심이 많다.
그들에게 물 한 양동이도, 촉강의 물의 약속도 없어보이는 이 책은,
호모 코뮤니타스로 살아왔던 고단한 과거가 인식된 유전자로 가득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글쎄, 어떤 의미일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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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3-2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서평을 읽으니 마치 책을 읽은 것과 같은 느낌이 납니다. 예전 고미숙씨의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면서요. 저는 (과거의) 386 (이미 486)세대인데, 사회 조건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신분? 상승의 희망이 있던 시대를 살아, 그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습니다.

글샘 2011-03-25 15:11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읽으면, 읽는 동시에 뭔가 부글부글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제대로 몰입이 되질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책임질 부분도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