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여지없는 봄인데도
기온은 제법 손바닥을 차게 만든다.
겉모습은 이쁘장한게 눈길을 끌지만
성격은 새초롬한 미인같은 쌀쌀한 날씨. 

오늘은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생각된 김광규 시인이
자신을 어떻게 재탄생시켰는지,
<르네쌍스>가 재탄생의 의미라는데, 그 과정을 한번 읽어 보자.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김광규, 대장간의 유혹>

이 시는 대충 다섯 문장으로 되어 있어 부분별로 보자면,
첫부분에서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
버스에서 뛰어내리는 건, 바로 인생은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다.
어떨 때?
스스로 싸구려 일회용 물건처럼 가치없는 삶으로 느껴질 때.

그럴 때 화자는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대.
현대아파트는 말 그대로 <현대의 문명>이고
털보네대장간은 <전통적 삶의 양식>이겠지.
전통적 삶의 방식이 현대적으로 바뀌면서 잃어버린 인간성, 인간의 가치를
되찾고 싶다는 이야기야. 

풀무질은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야.
무쇠를 불린 시우쇠를 달궈
모루(쇠받침대)위에서 두드려서 날을 만들고(벼리고)
숫돌에 간 '낫'처럼 변신하고 싶대.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모두들 똑같은 표준의 시계 속에서
똑같은 매뉴얼에 맞춰 사느라 가슴이 막힌 화자는
스스로 노동의 도구인 <낫>, 그것도 잘 드는 <시퍼런 무쇠낫>이 되고 싶다는구나. 

다음 부분에선 <꼬부랑 호미>로 변신하여
대장간 벽에 걸리고도 싶다고 하고. 

<무쇠낫>과 <호미>는 노동의 건강함을 대표하는 도구겠지.
농부들은 잔머리를 많이 굴릴 것도 없이,
그저 땀흘려 일하다 보면 결실을 얻던 시대를 살았잖아.
그런 시대가 그리운 화자겠지. 

스스로 부끄러워,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가던 길을 - 남들은 아직도 다들 가는 길을, 멈추고,
어딘가 멈춰선 채 걸려있고 싶대.
그 걸려있는 도구는 생활에 쓰임이 많은 낫이나 호미라면 더 좋겠단 것이고.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으로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변소(便所)란다. 

이 시의 화자는 좀더 가치있는 존재로 살고 싶은 소망을 반성과 함께 드러내고 있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질 때,
가치가 재창조되는 <털보네 대장간>에서
자신을 달구고 벼려 쓸모있는 <낫, 호미>로 바꾸고 싶어한단다.
가치있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고 싶은 것이지. 

이런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자아의 본질을 찾기 위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읽는다. 

담엔, 오세영의 <열매>를 읽어 보자.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땀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러운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세영, 열매>


딱 읽어 보니 <열매를 관찰하고 쓴 시>지?
그럼 이제 <관조>란 말은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화자는 열매가 둥긂을 관찰했단다.
가시나무조차도... 그렇대. 

또 뿌리는 날카롭고, 가지도 뾰족하지만,
열매는 모나지 않고 둥글다는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지?
그 이유를 뭐라고 가져다 붙이는지 화자의 관찰력을 보자.  

 

스스로 익어 떨어지는 열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열매지. 둥근 열매.
먹는자의 이빨은 예리한데, 열매는 둥글고 부드럽대. 

마지막에 주제를 드러내고 있어.
화자가 독자에게 <그대는 아는가?> 이러고 있지.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대.
먹힐 줄 아는, 희생하는 존재는 모가나지 않는대.

이 시에서 '열매'는 단순한 '결과물, 결실'은 아니지.
원만함, 가득한 충만감의 사랑을 느끼게하는 소재란다.
반대로 가시나무, 가지, 뿌리, 이빨은 해치고 날카로운 소재고. 공격적이고...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생의 섭리를 깨닫는 거야.
자기 희생적이고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의 성격은 <모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공격적이고 남을 해치는 사람의 성격은 <둥글지 않다>는 것. 

그럼 독자는,
너 아니? 했으니 알아 들어야겠지.
마음을 모나지 않게 궁글려야겠단 것을 말이지. 

자연물 속의 '둥긂'과 '모남'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전개하면서
자연물 속에서 삶의 진리를 깨우치는 <관조>의 시. 열매... 

선생님들이 민우가 수업 잘 듣는단 말을 들으면 나도 기분이 좋단다.
성격이 모나다는 것은 사람들과 잘 부딪친다는 의미도 되지.
친구들과도 선생님들과도 둥글게 사는 민우의 모습을
오래오래 유지하기 바란다. 

간혹 스스로 좀 부족하다고 느끼면,
마음 속 <털보네 대장간>에 가서 좀 벼리기도 하고 말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털보네 대장간 하나쯤> 간직하고 살면 삶의 활력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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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3-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께서는 오세영 시인의 좋은 시를 참 잘 골라내시네요.

글샘 2011-03-17 08:40   좋아요 0 | URL
제가 골라내는 게 아니라, 좋은 시가 많은 거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