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감꽃이 지고 나더니
아프게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네
열매는 한창 쑥쑥 자라고
그것이 처음에는 눈이 부신
반짝이는 광택 속
선연한 푸른 빛에서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새
붉은 홍시로까지 오게 되었더니라.

가만히 보면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불과 일 년이지만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추는 것을 보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생각해 보니
허무라는 심연밖에 없더니라.
아, 가을! <박재삼, 홍시(紅柿)를 보며>

이 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은 마지막 행이다.
‘아, 가을!’이라는 마지막 행에는 화자의 정서가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홍시와 대비되어 성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 화자의 심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감나무엔 봄이면 감꽃이 피었다 진다.

그 꽃진 자리에서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가 자라고 자라 붉은 홍시까지 된다.

2연의 <가만히 보면>을 어려운 말로 하면,
‘관조’가 되겠지?
사물을 가만히 보면서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살포시 떠오르는 경지.
이제 이런 것은 많이 들었잖아.  



감나무가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일 년 동안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춰보는 것’을 보았어.
그러면서 화자는 반성하는 거야.

‘에고에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 보니 허무하더라는 이야기지.
심연은 ‘깊은 연못 속 같은 알 수 없는 세계’란다.

산다는 일은,
홍시만도 못한 화자가 자신을 반성하는 삶은
허무만이 깊은 그런 것임을 깨달았대.
홍시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났지.

무엇을 보고 생각했다고?
그래. 제목. 홍시를 보고.
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아, 가을!>
이니깐.


열매가 열릴 때 ‘아프게도’가 들어간 것은 성장통(성숙을 위한 고통)으로 볼 수 있겠지.
‘푸른 빛’의 열매가 ‘홍시’의 붉음으로 변하기까지 익어가는 과정은,
단지 식물이 익는 것만이 아니라, 화자의 성숙까지 이야기하는 것 같구나.

‘말 못하는 식물’도 저런데,
말로는 뭣이든 이루려는 인간의 자기 반성, 자아 성찰이 잘 드러나있는 시야.

다음엔 또 ‘도시락 뚜껑’을 보고 ‘관조적 태도’를 보이는 화자를 만나 보렴.

오늘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눈물을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
올해로 그분의 나이 아흔 살
오늘은 그분의 아흔한 번째 생신날
마른 북어 몇 마리
연시 몇 개
그분이 좋아하시던 식혜 한 대접
상을 차리고
남한 여자와 북한 사내가
두루뭉수리로 된 아들딸 데리고
꿇어 엎드려
천번 만번 빌고 빌었습니다.

신의주에서 안동까지
열차를 타고 소풍 갔던 그날처럼
임진강 녹슨 철로를 닦고 닦아
붕붕 신나는 을 울리며
당신 품에 이 손주들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시라고
천만 번 빌고 빌었습니다.

당신의 생신날 아침,
아내가 싸준 찰밥덩이
무심코 도시락 뚜껑 열다가
눈물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송수권,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화자는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울었대.
2연에서는 <그분>이 아흔 살이며,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의 생신이 오늘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어.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란 표현에서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드러내고 있지.
화자는 남한으로 피란와서 남한 여자와 살고 있어.
그러면서 간절히 어머니를 만나기를 빌고 빈단다.
그렇지만, 꼭 만날 것으로 여기진 않아.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요즘에도 90살긴 힘든데 말이야.

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야.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다가,
어머니 생신임을 떠올리며 목이 메이는 화자의 마음이 읽히는구나.

요런 시험문제가 났다면, 틀린 말을 한 사람은 누굴까?

☆선생님: 화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 동현: '나'입니다. 아마 북한에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친척을 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선생님: 화자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요?

 - 선준: 오랫동안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도시락을 열다가 북한에 계신 그분 생각과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화자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바가 무엇이겠어요?

 - 병록: 이산 가족을 둔 한 가정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확장하면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의 시상 전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까?

 - 창욱: '~ 모릅니다', '~ 빌었습니다'를 기본 구조로 하여 그 문장의 앞 내용을 조금씩 변화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에서 화자는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했습니까?

 - 현웅: 화자의 일상 체험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 이를 풍자하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당근, 현웅이가 바보지. ㅋ
이 시에서 ‘문제의식과 풍자, 비판’은 나오지 않으니 말이야.

이 시는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분단된 조국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야.
화자는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북의 혈육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생일날 생일상을 차려 놓고 빨리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만날 수도 없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지.
한 가족이 겪는 슬픔과 고통의 <특수한 경험>을 통해
민족의 아픔까지 되새겨 볼 수 있게 <일반화한 시>라고 볼 수 있어. 



이 시에서 화자와 ‘그분’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무엇이었지?
그래. 바로 ‘도시락’이었단다.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찰밥을 보는 순간,
예전 어머니께서 생일날이면 차리던 찰밥이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야.
자, 이번에도 ‘매개물’이 되는 시어를 하나 찾아 보자.

다음 박재삼의 시 ‘매미 소리에’란 시에서,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시어는 무엇일까, 한번 찾아 보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뒤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뻐 그려 낼 수 있는
명명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음에>

찾았어?
그리운 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바로 ‘매미 울음’이지.

'매미 울음'은 그리워하는 대상의 행위까지도 떠오르게 하는 매개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무심코 들었던 매미 소리가
임의 모습과 행위를 연상하게 하여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 거야.

마지막에 ‘명명한’이란 시어는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매미의 ‘맴맴’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로 볼 수도 있고,
‘밝을 명’자로 보면 또렷한 매미 소리로 볼 수도 있겠다.

오늘은 박재삼의 <홍시를 보며>에서
인간인 화자보다 나아 보이는 홍시의 자아 성찰을 화제로
가을을 맞아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는 시를 만났고,

또 박재삼의 <매미 울음에>에서는
매미 소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임의 모습, 임의 행동을 그려 보게 되었고,

송수권의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는
남북 분단으로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을
어머니 생신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찰밥을 보며
그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열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단다.

이런 시들을 읽으면,
오늘 우리가 행복하게 함께 살고 있음에,
우리가 누리는 이 아무 것도 아닌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함에까지 생각이 번진다.
사랑해, 아들~.
우리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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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07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의적' 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아요. 국어 시간에 참 잘 나왔던 말인데 ^^
어느 새 70회가 되었네요?
오늘 올려주신 시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군요. 잘 잠재워야겠어요.

글샘 2011-03-08 21:50   좋아요 2 | URL
시는 사람을 울렁이게 해요.
울렁일 수 있는 눈,
울렁일 수 있는 마음...
좋지 않나요?
울렁임도, 시도...

주인공 2011-10-12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명한 명명한 을 중의적이라고 쓸 수 있나요?
다른 곳에는 그렇다고 안 되어있어서..;;

글샘 2011-10-12 16:02   좋아요 1 | URL
매미 소리가 '귀를 띄우는' 의미가 있는데, 맴맴 우는 소리를 흉내낸 것이기도 하니 중의적으로 볼 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