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이상을 이야기하면서, 1930년대에 도무지 이해받지 못할 짓을 한 시인이라고 이야기했다.
오감도라는 특이한 용어를 쓰면서 말이지.
오늘은 그의 작품 중 '거울'이란 작품을 살펴 보자.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 거울>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것은 큰 특징이라 보기 힘들어.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의 책들 중에서 띄어쓰기가 없는 것도 많이 있었단다.
근대 이전의 책에서 띄어쓰기가 있는 다음엔
임금을 가리키는 '상(上)'같은 말이 나오곤 했지. 

거울 밖의 세계와 거울 속의 세계는 닮았지.
아니 똑같아 보이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많다.
그럴 발견하는 시인의 창의성, 한번 따져 볼까? 

우선 거울 속엔 소리가 없어. 여긴 있는데 말이야.
내 귀는 소리를 듣지만, 거울 속에도 귀는 있으나 듣지 못하지. 소리가 없으니...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거울 속에선 반대지.

거울은 내가 비춰지지만 거울 속의 나를 나는 만질 수 없다.
만날 수 없는 <단절>의 역할을 거울이 하는 거야.
그렇지만, 또 거울 덕분에 나를 만나게 되었으니,
거울은 <소통>의 역할도 하고 있겠지? 

내가 거울을 보고있지 않을 때도, 거울 속엔 내가 들어 있어.
나는 거울 속 내가 뭘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잘못된(나와 반대로 된) 일에 골몰하고 있을 거라는구나.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 반대지만, 한편 똑같이 닮았지.
'참나'는 '거울 속의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답답하고 힘들단다.
그걸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다고 표현했어. 

이상의 <거울>은 <참 자아>와 <분열된 자아>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란다.
내가 살아가는 <참 자아>는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비추어지는 것이기도 하지.
혼자 있을 때는 까칠한데 사람들은 부드럽다고 느낀다든지,
혼자 있을 때는 게으른데 사람들은 부지런하다고 여기기도 하지.
세상엔 <참 자아> 이외의 <분열된 자아>도 있는 거야.  

이상은 일제 강점기에 건축을 전공해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려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엉망으로 돌아가기도 했지.
심지어 병까지 들어 요양하러 시골에 오래 내려가 있기도 했대.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느꼈던 혼란상이 잘 그려져 있는 시야.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거울은 이렇게 세상을 똑같이 비춰주는 역할을 하면서,
사실은 따져볼수록 세상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지.
거울에서 연상된 공포 영화도 많을 수밖에...

다음에 읽어주는 시는 이가림의 시란다.
그의 '유리창'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번 살펴 보렴.
임은 부재하지만, 저편에서 오는 빛을 아무도 볼 수 없지만,
나는 느끼고 나는 보인다. 임의 눈동자가 말이야. 

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어때? 시적 화자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기대섰다.
처음과 끝이 대응되고 있지? 수미상응.
거기서 <모래알/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고 하고 있어.
유리창에서 모래알처럼 가슴 속에서 서걱거리는 이름을,
눈물 방울처럼 가슴 아리는 이름을 불러 보는 이는 이별의 슬픔을 또는
임의 부재를 서러워하는 마음이라 상상할 수 있겠구나.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이란 구절에서,
영원히 이별할 수 없는 당신을 땅에 묻은 날, 정도로 해석한다면,
임과 사별한 이의 슬픔이라고도 추측해 볼 수 있겟다. 

화자인 '내'가 일천 번도 더 입맞춘 별은 '사별한 임' 대신이겠지?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는,
정지용의 <유리창 1>에서와 같이 사별한 임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거기서 떠올리는 상황인 듯.

어디선가 오는 이 투명한 이슬.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느낌이구나.
유리창에 기대어 차가운 입김만 뿜고 섰는데,
물방울로 남은 그대의 이름,
이제 다신 만날 수 없는 그대의 이름을 하염없이 반복해 불러 보는 이의 마음을 상상해 보렴.  

이상의 <거울>은 '참 자아'와 '분열된 자아'가 어떻게 다른지를
곰곰 생각해 보는 시였다면,
이가림의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는
사별한 임을 떠올리게 되는 공간으로서의 '유리창'을 만나게 되었다.
이가림의 다른 시 중에 이상의 <거울>을 떠올리는 시가 있다. 읽어 보자.

나를 보는 나
나를 보는 나를 보는 나
나를 보는 나를 보는 나를 보는 나...
무한한 반사의
환한 허공 속으로
뚫린 길 

없는 나를 찾아
그림자 하나
홀로 헤매고 있다 <이가림, 순간의 거울 3>

내가 나를 보는 상황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지.
그런데 그것이 무한 반사 되는 것을 보면,
엘리베이터 양면에 붙은 거울들이 반사하고 반사하는 모습 속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또는 제주도 '거울의 집' 안에 비친 삼각형 거울들에 비치는 나의 옆모습 뒷모습들...  

거울에 비친 <가짜 나>는 이렇게 많은데,
거기 <진짜 나>는 없다.
세상에는 <가짜 나> 또는 <분열된 자아> 내지는 <남들이 본 나>는 많지만,
정말 <나>는 어디 있을까?
<내 마음>이란 것은 어디 있을까? 

'없는 나'를 그 '숱한 나들'로부터 찾아내는 눈이 신선하다.
세상에 '없는 나'를 찾아서,
세상을 홀로 헤매는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가 현실의 '나'다.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은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알기는 참 어려워보인다.
이가림의 '순간의 거울'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상의 '거울'과 함께. 

세상의 삶은 자기가 살려는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쓴 시가 있다.
<환목어>라고 한다. 우리가 <도루묵>이라 부르는 생선의 이름의 유래가 담긴 시다.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지.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네.
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어가 마침 수라상에 올라서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드렸지.
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지.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은 아니라네.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이식, 환목어> 

목어(묵)가 푸대접 받다가,
임금이 피란왔을 때 대접을 받아 '은어'라 불렸대.
그렇지만 전란이 가라앉자 다시 '목어'가 되었단다.
(도로 묵이 되었다고 <도루묵>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대.) 

이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을 마지막 연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단다.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필요하면 칭송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버리는 세태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이지. 

목어는 원래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유유히 헤엄칠 뿐인데 말이야.  

인간은 원래 모두 <부처>라고 했잖아.
그런데 세상에서는 누구는 1등급이고 누군 9등급으로 나누기도 하고. 한우도 아닌데 말이지.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평가>일 뿐임을 안다면 마음을 넓게 가질 수도 있겠구나. 

<환목어>같은 시는 세상을 '풍자'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필요하면 등용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금세 잊어버리는 세태를 비꼬려고 주워든 이야기니 말이야. 

자, 오늘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을 다룬 시들을 만나 보았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처럼 한쪽 면만 가진 것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어.
나와 다른 편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음을 깨닫는다면
세상이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배움도 얻을 수 있겠다. 

내일부터 며칠간은 좀 푹 쉬자.
새 학기 시작할 때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서도 '분열된 자아'가 등장하지만,
차이점이라면, 이상의 시에선 분열되기만 했던 것이,
윤동주의 시에선 <악수>를 함으로써 <화해>의 분위기가 보인다는 정도겠지. 

오른손잡이끼리 악수를 하면, 당연히 오른손끼리 잡아야 하는데,
그 아이는 반대니 악수를 할 수 없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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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2-2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거울속의 나도 유리창의 기댄 나도 어쨌든 "나"이고 나로서 사랑하고 싶고, 사랑하고 있다면 자기애가 심각한 수준인거요? 아무래도 시대를 걱정하기보단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어서 이런가 봅니다~
거울이 보이지 않아도 그속에 나는 있고, 오른손이라 악수를 못해도 마주 웃어줄수 있으니 행복하게 삽니다~

글샘 2011-02-28 21:40   좋아요 0 | URL
일상 속의 '나'도 시대를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 속에 있겠지요.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사신다니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일이 하도 드물어서요. ^^
저도 요즘 날마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