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년 전에 '접시꽃 당신'이란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다.
도종환 시인의 아내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게 되는데,
그 애절한 남편의 마음을 시로 쓴 것이 유명해져서 영화화 되었던 거란다.
그 유명한 시 '접시꽃 당신'을 한번 읽어 보렴.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접시꽃 당신)

 

접시꽃은 예전에 시골의 마을 입구(동구)나 집앞에 많이 심었던 흔한 꽃이다.
크기가 접시만 하대서 접시꽃인데,
수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꽃이란다.
아주 화려하거나 아름답기보다는, 함께 어울려서 자기 존재를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모습이 든든한 그런 꽃이지.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이도록 정해진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뜻밖의 죽음을 맞게 되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한용운도 '이별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면 사랑이 깨진다'고 님의 침묵에서 노래했듯이,
죽음을 아프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을 했던 것 같구나.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물론 죽어가는 이에게 장기 기증을 하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간이 산다는 것은
주는 기쁨, 사랑의 기쁨을 배운다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면,
뿌듯이 주고 가자는 화자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시에서 몇 번이나 '남은 날은 짧지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아쉬운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란다.
우리도 매일매일이 무의미하게 돌아오는 날들 같지만,
사실은 영원히 다시 살 수는 없는 날들임을 생각해 보면,
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제 아내가 죽어 옥수수밭 옆에 묻고 돌아오면서 쓴 슬픈 시를 한편 읽어 보자.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게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하필이면 아내를 묻던 날이 음력 7월 7일, 칠석날이었는지, 그 무렵이었는지...
아내를 묻고 오는데,
살았을 때 제대로 된 옷 한 벌 멋지게 입혀본 적 없는데,
죽고 나서 '수의(壽衣)'를 해 입힌 게 돌아보니 참 부끄럽단다. 

아내가 손수 만든 옷들일랑은 이웃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묻고 돌아오는 남편이 허한 가슴이란... 
앞부분에서는 그런 허전한 가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뒷부분에서는 그런 힘겨운 마음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지금은 비록 이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흙이 된 당신과, 훗날 바람이 되어 떠도는 나의 넋이
다시 만날 것임을, 윤회의 미래를 믿게 된다는 이야기겠다. 

내 남아 밭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그저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고,
밭갈고 씨 뿌리며 땀흘리는 삶을 살아야,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하며 옳바르게 살아야,
한 해 한 번이라도 당신의 넋과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아내도 참 검소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아내와 만나게 된다하더라도, 내가 부끄럽게 산다면 얼마나 스스로 바보같겠니.
그래서 재회의 희망과 삶의 의지를 일깨워 보는 것이겠다.
슬픔을 절제하고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어서 더욱 슬픔을 깊게 느낄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교육 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한 분으로도 유명하단다.
학교도 원래 아주 권위주의적인 교장을 위시하여,
교사들도 지극히 어깨에 힘주던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1987년 사회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교육도 많이 민주화된 거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물론 공부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런 현실까지 교사들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었던 것 같고,
-그런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일이라서 아직 바꿀 부분이 많다.-
교사와 교사간,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자연스러워 졌을 게다. 

이런 힘든 운동에 참여하면서,
힘을 모으자는 의미로 지은 시가 '담쟁이'가 아닐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담쟁이 넝쿨(또는 덩굴)은 조그마한 보잘것 없어 보이는 식물이지만,
참 끈질긴 놈이다.
어지간히 가물어도 말라죽지 않고,
겨우내 추운 바람 맞으며 담벼락에 말라죽은 것처럼 붙어있다가도,
봄이 되면 빠알간 새싹을 내밀곤 한다. 

이 시에서 '벽'은 말 그대로 벽이다. 가로막힌 벽. 장애물.
높은 벽을 보면 좌절감, 절망감이 생기겠지?
그렇지만, 담쟁이는 혼자가 아니라서 그걸 넘는 힘이 난대.
그걸 연대의식, 연대감이라고 하지. 

연대하는 방식은, <서두르지 않고, 꼭 여럿이 손을 잡고> 가는 거란다.
혼자서 열심히, 성실히 살려고 해도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진 않는다.
친구와 동지가 옆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지 

담쟁이 잎이 저 절망스런 벽을 넘는 방식.
거기서 화자는 인생의 멋진 면을 발견하고 있구나. 관조.
담쟁이의 생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발견하는 관저적 시선. 

주제는 <연대를 통해 절망을 극복해가는 담쟁이의 놀라운 생명력>이 되겠지.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하지.
그건 친구가 있고,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좁은 의미는 아니란다.
넓게 본다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걸로도 볼 수 있겠지.
내일은 졸업날이라 좀 한가하지?
보람찬 하루를 잘 계획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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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1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담쟁이 시 참 좋아했습니다.
앞 구절 읽을때 왠지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이제 수험생 아버지가 되셨네요.
화이팅입니다^*^

글샘 2011-02-10 19:08   좋아요 0 | URL
감동적이지요. ^^
벽을 넘는 담쟁이. 그걸 볼 줄 아는 시인의 눈.
수험생 아버지는 뭘 해야 할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