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 - 개정 증보판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1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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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일은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지리산 종주'의 경험과 같다.
삼박 사일 정도 코스를 꼬박 걷고 난 흐뭇함이랄까.
그렇지만 등산을 마치고 소감을 남기거나 사진을 제대로 찍은 것은 없다.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것은 가벼운 하이킹을 한 뒤에 여유롭게 즐기는 여기다. 
그래서 리뷰 제목도 저 따위로 적을 수밖에 없음을 핑계댄다.

플라톤의 <국가, 정체>를 마치 어린 아기가 발가락 힘으로 몸을 밀며 나가듯 읽었지만,
종주했다는 느낌 외에 어떤 감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정치학 개론>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가 민망한 뭐, 그런 기분이랄까. 

자꾸 비유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본질이 한 눈에 확 꿰이는 그런 책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고,
한 번 읽었다고 플라톤의 생각을 한 쾌에 꿰인 북어마냥 나열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말을 하면 내 생각을 놓치거나 엉뚱한 생각을 적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배운 것이라고는 <국가>는 '나라'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정도. ^^
그래서 관습에 따라 제목은 <국가>로 적었지만, 본문에서는 이해에 도움을 주도록 <나라>라는 용어를 쓴다.
아무래도 <국가>라는 용어에는 <근대 국가>의 폭력적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이 이런 책을 남긴 시절만 하더라도 철학과 역사와 문학의 구별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분절적으로 '문, 사, 철'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대가 폭력적으로 범주를 나눈 개념이고,
플라톤이 저술하던 시기, 제대로 된 역사는 남지 않았고, 신화를 기록한 서사시라는 문학이 책의 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플라톤이 주로 인용할 수밖에 없는 근거는 그리스 신화라든가, 호메로스 등의 작품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면서도, 이 글 전체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주로 전달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희곡을 읽는 듯한 기분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읽는 맛은 편안한 쪽이다.
다만 700쪽이 넘는 분량이 독자를 압도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난코스는 별로 없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청소년 클래식으로 장영란의 책을 읽은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리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중간중간 어떤 휴게소가 있는지를 알고 걷는 일과,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걷는 일은 초행길에선 큰 차이가 있다.
물론 해마다 지리산을 오르는 이에게는 무념무상의 행군이 더 큰 의미를 전수할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이 책을 읽었다는 데 의미를 둔다.
국가, 정체는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거시적으로 <나라>의 차원에서 설명한다는 것 정도 트레일의 개략을 남기면 되겠다. 

그리고 왜 시를 가르치지 말자고 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확실히 이해가 간다.
전체는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이렇게 하나라도 기억에 남는 것이 초심자에겐 심리적 위안이다. ㅋㅋ 
168쪽의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등의 신들이 서로 다투고 죽이는 엽기적 행각을 읽어 보면 음... 그런 것들은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나도 든다. 막장 드라마에 <15세 미만 관람 불가> 딱지가 붙는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되겠다. 

지혜, 용기, 절제, 그리고 정의가 계층에게 구현되어야 나라가 <올바름>을 이룰 수 있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올바르게 사는 일> <잘 사는 일>의 거시적 버전의 비유라고 했으니,
개인도 관리자로서의 지혜, 지킴이로서의 용기,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절제, 그리고 정의에 대한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정도는 읽었다. 

그의 '철인 통치'는 어쩌면 쇼펜하우어의 <사색>과 연관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지혜로운 자,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면 반드시 <사색>의 파이프오르간이 저음으로 깔리는 <나라 polis>를 만들 수 있고, 그런 <정체 politeia>를 확립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좋음'의 유비라고 하였고,
인식을 <상상, 짐작 - 믿음, 확신 - 추론적 사고 - 지성에 의한 앎, 인식>의 선분에 비유하였으며,
동굴의 비유로서 실재계와 인식의 오류를 표현하는 등 다양한 비유를 활용하는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잘못된 정체의 하나로 민주제를 들고 있는 점도 재미있다.
민주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 삼고 팔아먹는 약장수를 믿는 넘이 어리석다.
절대선과 다수결 사이의 부조리를 플라톤은 예견했던 것이다.
숫자가 많은 우중에 의하여 헝클어진 정치는 참주 정체를 낳기도 하는 법.
철인 정치에 대한 그의 순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수학과 천문학 등에 대한 관심을 결코 철학적 관심과 별개로 떼어 생각하지 않는 통합적 관점이 현대처럼 분파적인 학문의 '통섭'의 노력을 미리 내다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올바르게 사는 삶>은 <인간들에게 받는 상> 뿐만 아니라 <신들에게서 받는 상>까지 이야기한다. 

영리하며 올바르지 못한 자들은
출발점에서는 잘 달리나 반환점부터는 그러지 못하는 달리기 선수들이 하는 바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가.
이들은 처음에는 날쌔게 출발하나,
결국엔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데,
어깨 위로 귀가 처진 짐승 꼴을 하고서 화관도 두르지 못한 채 경주로를 빠져 나가네.
반면에 진짜로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은 끝까지 달리게 되어 상도 받고 화관도 두르게 되네.
올바른 사람들의 겨우에도 대개는 이렇게 되지 않는가.
그들은 모든 행위나 교제 그리고 생애의 끝에 이르러, 좋은 평판도 얻게 되며 인간들한테서도 상을 받게 되겠지.(650)

그 뒤엔 마치 불교 설화 속의 '극락과 지옥'이나 단테가 이야기한 '천국과 지옥'처럼 인과응보의 결과를 받는 에르의 이야기가 덧붙어 있는데, 어찌 보면 후대에 끼워 넣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어수선해 보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낳은 치밀한 논거에 따른 증명이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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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0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학 개론 읽고 독후감 쓰기 민망한....ㅋㅋ 그런 느낌 알아요.
지리산 종주 축하드립니다. 근데 종주 해보신거죠? 안해 봤으면 말을 하지마~~~~
편안한 설 명절 되세요^*^

글샘 2011-02-07 01:08   좋아요 0 | URL
이제 플라톤 다 읽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있습니다.
플라톤보단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 전공과 관련이 있으니 훨씬 재미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