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0년대를 풍미했던 최승호의 시들을 살펴 보자.
최승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가 '대설 주의보'일 것이다.
한번 읽어 보렴.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대설주의보)

1979년에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80년에 민주화 기운이 무르익던 시절,
광주에서 총칼로 민중을 제압하고 다시 군인 독재 시대가 열렸다.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내세운 '민주 정의당'이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퇴보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대설' 곧, 큰눈은 그런 무시무시한 독재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큰눈이 올 것을 예보하는 대설주의보.
결국 시련의 계절이 앞으로 닥칠 것을 예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는 것이 시임을 드러내고 있다. 

백색의 산들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친다.
제설차가 와서 눈을 치워준다면 좀 나아질 텐데...
눈보라 속에 '쪼끄마한 굴뚝새'가 하나 날아간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을 비유한 것 같다. 

산 속엔 길 잃은 등산객들도 있을 것 같다.
대설주의보가 내렸는데... 등산객들은 고립되고, 외딴 마을도 고립된다.
힘찬 눈보라를 '군단'이란 군사 용어로 표현했다. 군사 독재의 냉혹함이 드러난다.
'백색의 계엄령'에서 눈의 본질이 그려졌다.
계엄령은 당시에 툭하면 내려지던 것으로,
국가가 혼란스러워지면 계엄령을 내릴 수 있다.
대신에 국민의 모든 권리는 제지당할 수 있지.
아무나 감옥에 처넣고 고문하는 시대가 계엄령이 내려진 시대다.

쪼그마한 굴뚝새가 솔개라도 있는지, 몸을 감춘다.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도 민중과 같다.
소나무도 눈더미의 무게를 못이겨 부러진다.(이렇게 눈의 무게로 부러진 나무를 설해목이라 한다.)
시련은 계속 되는 것이다.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집은 '때'라는 발음이 반복된 언어 유희에 해당한다.
한 때 먹으려고 밥이라도 안쳤는지 굴뚝에 연기나는데,
그 배경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보라는 계엄령처럼 냉혹하다. 

이 시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군사 독재, 계엄의 시대)를 대설주의보와 눈보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해설가 조남현은 이 시를 통하여 그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겨울에 눈 내리는 현상은 당연한 자연적인 현상이자 우주의 섭리이다.
따라서 눈이 내리는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눈은 평범한 일상적 현상으로서의 눈이 아니다.
여기서의 눈은 해일처럼 굵은 눈발을 휘두르며 천지를 삼킬 듯이 내리는 눈이다.
그것은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온 산을 백색으로 물들일 듯 거칠게 내린다.
이러한 흉폭성은 자연을 파괴하고 그 질서를 교란시킨다.
그리하여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의 삶들을 제압하고 위협하기 시작한다.
굴뚝새를 '쬐그마한 숯덩이'같이 초라하게 만들고 서둘러 뒷간에 몸을 숨게 만드는가 하면,
삶과 삶을 연결시키는 '길'을 끊어 놓기도 한다.
또한 온갖 산짐승을 굶주리게 하고 소나무 가지를 부러뜨릴 정도의 위험으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이 시는 시대적 상황을 눈 내리는 일상적 현상에서 읽어 내며 그 비극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에서 보듯
이 시대를 이겨내려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다음엔 시험에 잘 나오는 같은 작가의 '북어'를 읽어 보자.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북어(北魚))

밤의 식료품 가게에서 '밤'은 곧 부정적인 시대를 상징하곤 한다.
김수영의 <폭포>에서도 '밤'은 어두운 시대였다. 

북어는 말린 명태를 일컫는다.
위의 사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뻣뻣하게 굳어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마치 그렇게 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북어를 통해 대변하고 있다. 

그 북어들이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 있다.(1쾌는 20마리란다.)
분대는 군대에서 쓰는 용어다. 분대가 모여 소대가 되고, 중대, 대대, 연대, 사단 이렇게 커진단다.
군대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도 마찬가지란다.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은 억압당하고,
모두들 굳어버린 북어처럼 획일적으로(나란히) 살 수밖에 없던 현실을 비판한 것이지.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는 주체적 삶을 상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보인다.
그 대가리들의 '혀'는 자갈처럼 딱딱하다.
언론의 자유가 없던 시절...
그래서 '말의 변비', '무덤 속 벙어리' 처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이며,
'빳빳한 지느러미'로는 주체적으로 헤엄칠 수 없는 몸이다.
'막대기 같은 생각' 역시 비판적인 사고력을 무시당하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게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런 상념에 빠진 화자는 갑자기 주체가 자신에게 돌아선다.
그 전까지는 '독재 시대에 사람들이 다들 획일적으로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반성해 보니 '나도 역시 그들과 같은 북어'일 따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느닷없이>에서 시상이 전환되고 있다.
시적 관심이 북어와 사람들에게서 <자신, 화자>에게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당혹스럽게도 환청이 들린다.
북어들이 '너도 마찬가지지?'하는 고함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획일적인 군사 독재 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북어'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 비판적 내용이 자기 반성적인 부분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지.

시적 화자의 진지한 모색이 독특한 발상을 통해 드러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우리도 늘 남들을 비평적 시선으로 보기 쉽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그 비평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1980년대 어두웠던 시절의 시들을 두편 보았다.
지금이라도 그 시절보다 무척 밝아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와도 같다는 말이 있단다.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의 주체적인 인식과 실천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겠다.
민우도 시를 읽으며 시대를 읽는 눈도 키우기 바란다.


댓글(2) 먼댓글(3)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혜덕화 2011-01-2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시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_()_

글샘 2011-01-25 14:23   좋아요 0 | URL
좋은 시야 뭐, 애들 문제집 들쳐보면 가득한걸요. ^^
애들은 그걸 문제라고 읽으니 문제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