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집에서 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잠잘 때만 들어오니 같이 살아도 낯설다.
이제 고3이 되는 중요한 시점이니, 마음을 잘 가다듬고 정신의 날을 세워보기 바란다.
오늘은 오세영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어 보자.
우선 그의 <10월>을 읽어 보자.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

인생에서 10월은 어떤 계절일까?
1월에 태어나고 12월에 죽는다면,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시점이 되었단 이야기일거야.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있었단다.
심은하와 한석규가 주연이었지.
한석규는 사진관을 하는 남자로 나오는데, 글쎄 죽을 병에 걸려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었어.
아직 30대 한창때였으니깐, 인생에서 8월 정돈데, 그냥 <연말> 분위기인 <크리스마스>가 와버린 거지.
이 시에선 역설이 많이 등장해.
'잃는 것'은 '성숙하는 것' 같은 말이 그렇지.
역설이 뭐랬지?
동시에 두 가지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했지?
'얻는 것'이 '자라는 것'과 관계있기 쉬운데, 화자는 '잃는 것'이 '성숙'의 길이랬어.
그러니 역설이지.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은 한창 청춘의 시기일거고,
식물은 청춘에 꽃으로 에너지를 다 보내서 짝짓기(화분)에 안간힘을 쓰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은 한창 일할 나이. 30대 정도 되겠구나.
식물도 여름엔 광합성을 하여 씨앗을 영글게 하고 열매를 살지게 만드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봄에는 짝짓기를 위하여 치장도 하고, 이성에게 관심도 가지고,
그러다 여름에는 식물이 광합성 하듯,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떨어질 열매, 낙과에게 너무 슬퍼하지만은 말라네.
과실이 떨어짐은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이라고 했어.
그건 바로 자연의 순환을 노래한 거겠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오늘 또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역설이지.
만남이 아름답지, 이별이 아름다운 건 아니잖아. 보통...
그런데, 역설적인 말로 이별을 더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구나.
늙는 일, 나이드는 일을 보통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화자는 <나이듦과 함께하는 영혼의 성숙>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나이 든 것을 거부하고 '동안'이 큰 재산인 양 뻐기는 풍조가 있다.
좀 아쉽지.
어차피 태어나면 죽기까지 한 평생 사는 건데...
물론 좀더 화려하게 꾸미고 싶기도 하지만, 단단한 그릇이 되어,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면 뭐, 아쉬울 것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릇'의 시인으로 유명한 오세영을 이야기하니깐, 그의 '그릇'을 만드는 재료,
'모순의 흙'도 살펴 보자꾸나.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모순의 흙)
이 시의 1연부터 역설적 기운이 가득하구나.
순서를 조금 다듬는다면 이렇게 되겠지.
흙으로 빚어진 그릇, 접시는 언젠가 깨져서 흙이 된다.
이렇게 적으면 그저 하나의 설명문인제, 행을 뒤섞어 놓으니 그럴듯 하지 않니?
그릇은 잔치에 쓰일 수도 있겠지.
잔치처럼 흥성거리던 삶의 어느 날,
잔칫상에 올리듯 여느 날과 다름없이 쓰이던 그릇이 바싹 깨진다.
죽음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란다. 아무런 준비 없는 그 날에...
버나드 쇼라는 유명한 극작가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런 말을 남겼대.
"내 우물쭈물하다 이리 될 줄 알았다."
바싹 깨지는 그릇하고 뭔가 통하지 않니?
인간은 그릇이 빚어지는 것과 같이,
물에 젖고 불에 탄다고 표현했다.
물은 왠지 좀 슬프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불은 조금 바삭거리는 마음이기도 하다.
흙반죽도 물에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야 쓸모가 있는 물건, 그릇이 되듯
인간도 슬픈 일도 겪고 마음 힘든 일도 넘겨야 쓸모있는 그릇이 된다는 비유 같다.
왜,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기도 하잖아. 그릇이 크다, 작다... 이렇게.
화자는 접시가 되어 살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접시는 깨어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도 죽는 날, 비로소 그 인간에 대한 평가가 완성되는 것과 마찬가지겠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처럼,
죽음 뒤의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흙과 같은 무기질의 원소로 이루어진
모순의 그릇,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릇에 빗대어 하고 있는 시다.
생명의 완성이 '그릇의 깨어짐'에서 비롯되듯,
인간의 생명도 '죽음'의 순간에 완성되는 느낌을 받으면 될 것 같구나.
다음엔 그의 '그릇'을 읽어 보자.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그릇 1)
이 시에서도 앞의 <모순의 흙>의 연장선에 놓인 그릇을 읽으면 되겠다.
원래 '둥글게' 빚은 그릇.
그 그릇이 깨지면 '모가 난' 면이 드러나면서 '칼/칼날'이 된다고 했다.
그 칼날은 나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화자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처에서 <성숙하는 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다.
그만큼 인생에서 '성숙'은 만나기 어려운 존재인 모양이다.
인생을 둥글게 둥글게, 원만하게 살아나가고 싶지만,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가는 순간, 그저 좋게만 살 수는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 중심을 빗나가는 순간이 또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만은 아니다.
설혹, 그 깨진 그릇의 칼날에 발이 베인다손 치더라도,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맨발이 베어진 살은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같은 시인의 <등산>을 읽는 것으로 오늘은 마치자.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生涯)의 중량(重量)
확고(確固)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岩壁)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接近)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등산)
보통 문학에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인생은 새옹지마이기도 하고 뭐 그렇게 나오지.
그런데, 이 시에서 등산은 암벽 등반 같구나.
가파른 암벽을 자일 하나에 의지하고 조금씩 조금씩 위로 나아가는 그런 행위 말이야.
나는 돈을 들여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말이야.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조금씩'은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단다.
많이 오르려는, 꼭대기에서 만세부르려는 자세가 아닌,
지금 여기서 조금 조금씩만 미래를 향하여 <가까이, 가까이> 가는 것이 그이들의 발자국일테니...
삶은 그 높은 곳까지 도달하는 거시적인 일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조금씩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임을 들려주는 시야.
이런 시들을 읽고 있으면, 왠지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 않니?
삶의 온갖 역정을 다 겪어 오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이야기를 문학을 통해 듣는 것.
그게 문학이 살아남은 힘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모든 진리라 외치는 것들도 언젠가는 흔들릴 수 있단다.
그 때, 삶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가 되겠지.
민우도 고3이란 높은 고지를 앞두고,
<함부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이런 자세로, 조금씩 나아가는 마음씀씀이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