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차구나.
아까 저녁 나절에, 우리집 앞 지하도에 불이 나는 바람에 정전 사태가 있었다.
잠시의 정전으로도 우리는 어쩔 줄을 몰라야 했구나.
촛불을 켜 놓고, 수돗물도 끊긴 집에 있자니... 인간이 참 나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수익의 '결빙의 아버지'와 나희덕의 '못 위의 잠'을 읽어 보자.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零下)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이수익, 결빙의 아버지)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구나.
1연에선 과거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예닐곱 살 적 겨울 외풍을 막아주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2연에선 성년이 된 현재 '자기 자식을 통하여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모습이,
3연에선 오늘 영하의 한강 얼음을 통하여 '아버지를 연상'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동일한 감각적 이미지가 나타나 있어.
'차가운 얼음'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표현한 소재가 되겠구나.
이 시의 주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정도가 되겠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은 일본식 가옥이란다.
적산은 '적군의 재산'인데, 일본놈들의 가옥을 적산가옥으로 불렀지.
일본은 '온돌'과 같은 난방이 없어서 '다다미'방에서 살았대.
기껏 난방기구라고는 밥상 밑에 난로를 넣고 이불을 덮은 '고타츠' 정도였지.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날마다 뜨끈한 물에서 몸을 녹이곤 했다고 해.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민우는 어떤 기억이 떠오르니?
화자는 <추위>라는 '촉각'이 떠오르는 모양이구나.
추위로 인해 아버지의 가슴팍이 떠오르고...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화자의 자식들이 옹송그리며 잠든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추억한단다.
오늘은 문득 한강물의 얼음을 보고, 그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단다.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는 차가움 속에서 뜨거운 사랑이 보이는 것이지.

민우도 나중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다. ^^
이 시는 과거 회상이 드러난 감각적이고 고백적인 시다.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애틋하지.
대화체를 사용한 특징, 시간의 흐름에 따른 주제의 심화. 이런 것들을 읽을 수 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이 <불과 얼음의 콘서트(2002)>라고 하니 재미있는 제목이구나.
지난번에 읽었던 김종길의 '성탄제'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형상화되기도 했었지.
비슷한 주제가 드러난 '나희덕'의 <못 위의 잠>을 한번 읽어 보자.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이 시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저 지붕 아래 제비집>은 '화자의 보잘것 없는 집'에서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도 가득 차는 작은 집.
어미는 새끼들에게 보온을 해주느라 날개로 둥지를 덮고 간신히 잠들었대.
그 둥지 옆에, 누군가 박아 놓은 못 하나가 있는데,
바로 그 못에서 아비는 밤을 지냈단다.
아비 제비는 그 못 위에 앉아 가족을 걱정하며 밤새 꾸벅거리고 졸고 있단다.
화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이 뜨거워> 진다.
바로 제 아버지를 떠올리기 때문이겠지.
화자가 살던 동네는 서울에서도 조금은 외진 곳, 종암동이었던 모양.
흙먼지 섞인 바람이 부는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아버지와 세 아이가 엄마를 마중나와있어.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오래오래 기다리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엄마가 내렸어.
창백한 엄마 얼굴과 하늘의 반달은 가냘프게 새하얀 게, 조금 슬퍼 보이는구나.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도 잡고 재잘거리며 떠드는데,
정류장에서 멈춰서 있는 그 사내, 남편의 안쓰런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밤 늦도록 일하고 오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였겠지.
직장을 잃고 집에서 쉬고 있던 아버지.
그 실업의 힘겨운 나날에,
심심할 때면 주머니 속에서 두 알의 호두를 만지곤 했는데,
그럴듯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마치 못 위에서 잠든 제비 아빠처럼,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화자의 아버지.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그 여자가 힘들게 퇴근하는 길.
희미한 달빛에 비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는 그런대고 따스하기도 했지만,
그 좁던 골목길은 너무도 가난했고,
실업자의 잃어버린 자신감과 놓쳐버린 자존심이
지친 아내의 한 걸음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갈 수밖에 없던 아비의 발걸음. 슬픈 그림자.
과거의 그 아버지의 꾸벅거림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의 못 하나, 그 위의 제비 애비의 잠.
흙바람이란 시련 속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의 시구나.
아버지는 실업의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는데,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떠오르고,
그 궁핍한 삶이 영위되던 '골목'의 추억은 화자를 애상에 잠기게 만든다.
벽에 박힌 못 위에서 잠을 자는 아비 제비를 보고 떠올린,
유년 시절의 화자의 아버지의 모습은 쓸쓸하고 처량하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는 화자의 눈에 보이는 '못 하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아비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재였구나.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삶의 의의를 찾는 시로는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도 있다.
한번 읽어 보렴.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고정희,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아침 출근 버스에서 정신없이 졸고 있는 어머니.
일곱 달 된 아기 엄마인데, 오늘도 출근을 하는구나.
왜 그렇게 졸고 있나 곰곰 살펴 보니,
아기에게 젖도 물리고, 시어머니 약시중도 들고, 남편의 술주정도 좀 받아 주고
그렇게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
마약처럼 달콤한 통근 버스의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구나.
'팬지꽃 아픔'과 '안개꽃 멍에'는 역설법으로 볼 수 있겠다.
팬지꽃과 안개꽃같이 이쁜 꽃에다가 '아픔과 멍에(동물의 머리나 목에 끼워 짐을 끌도록 하는 막대)'가 붙었으니 말이다.
여성 한 명에 하나씩 부여된 <부엌>이란 공간은,
한 식구의 '안식'을 위하여 어머니가 희생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집에 천사들을 보낼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 주셨다는 이야기도 있지.
<죽음과도 같은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을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고 표현했구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일해야 하는 어머니의 삶과 그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 보자.
왜 잠을 못 잔다고 하지 않고 <거부>한다고 했을까?
못 자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안 자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지?
어쩔 수 없이 깨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깨어있는 어머니 말이야.
구자명 씨에게는 동정과 연민을 느끼지만,
그건 그저 불쌍한 상황이 아니란다. 가족의 안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이지.
시인은 출근길에서 정신없이 졸고 있는 한 여성을 보았겠지.
그래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여성의 <전형>으로 구자명 씨를 창조했겠지.
생계를 꾸려나가는 여성의 고단한 삶이 잘 형상화 된 시란다.
민우도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려면 네 방 청소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겠지?
오늘은 시를 통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잠시 들여다 보았단다.
시를 읽는 일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는 길이란다.
매일 간단하게나마 시를 읽고, 인생을 배우자꾸나.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임을 잊지 말자고, 만화 한 편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