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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슨 시선 ㅣ 지만지 고전선집 574
에밀리 디킨슨 지음, 윤명옥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잇다면,
내 삶은 헛된 것이 아니리.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면,
혹은, 하나의 괴로움을 위로할 수 있다면,
혹은, 쓰러져 가는 한 마리 울새를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리.(919)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다사롭기도 하고, 한편 우울질의 어두움이 비추이기도 하지만,
그의 다양한 시들을 읽는 일은 다소 쓸쓸하면서 높고 외로운 정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초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포기 클로버와 한 마리 꿀벌이 필요하다네.
한 포기 클로버와, 한 마리 꿀벌.
그리고 몽상이.
꿀벌이 없다면,
몽상만으로도 충분하다네.(1755)
그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시다.
자연을 만나면서 외로움에 사무시는 정신.
오늘 오랜만에 정전이 되었다.
인근 지하도에 불이 나면서 우리 마을에 정전 사태가 빚어진 것인데,
촛불을 켜두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왠지 촛불 앞에서 마음이 다스한 손길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에밀리의 시를 읽는 마음은 그런 기분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높은지 결코 알지 못하네.
우리가 승천하도록 부르심을 받을 때까진,
그때, 우리가 섭리에 충실하다면,
우리의 위상은 하늘에 닿으리-
그때, 우리가 암송하는 영웅전은
일상적인 것이 되리.
왕이 되는 게 두려워
우리 스스로 완척을 휘게 하지 않았다면- (1176)
삶은 경건한 것이어야 하리.
날마다의 삶에서 만나는 그 사람에게, 또는 그 순간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을 보여야 하리.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는 좋아,
그게 진실하다는 걸 알기에-
사람들이 임종 때의 경련을 흉내낼 수 없고,
임종의 고통을 모방할 수 없기에-
한 번 멍해진 눈들을 - 그러면 그것은 죽음인데 -
거짓으로 흉내낼 수는 없으며,
누추한 고뇌가 꿰어놓은
이마 위의 구슬방울들을 거짓으로 흉내낼 수는 없기에.(241)
콘도에 갇혀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중, 동물의 세계를 보는데,
목을 물린 임팔라의 눈이 어두워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빛을 볼 때는 반짝이던 동물의 눈은, 삶의 빛을 놓는 순간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빛을 잃고 멍해진다. 그것이 죽음이다. 거기 죽음이 있다.
나는 미를 위해서 죽었네 - 하지만
무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네.
그때 진리를 위해 죽은 자가
옆방에 눕혀졌네 -
"왜 내가 죽었는지?" 그가 살며시 물었네.
"미를 위해서"라고, 내가 대답했네 -
"난 - 진리를 위해서요 - 그들은 하나요 -
그러니 우리는 형제라오." 그가 말했네 -
이렇게, 밤에 만난, 형제의 정으로 -
우리는 방 이웃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네 -
어느새 이끼가 우리의 입술까지 차오르더니,
마침내 우리의 이름마저 - 덮어버렸다네 - (449)
(미와 진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오히려
그 생명력이 번성하게 된다는 의미)
신비로움은 여기, 혹은 거기 놓여 있다.
그리고 진리는 신비로움 바로 곁에서 울고 있다.
어떤 신비로움이 샘에 서렸는가!
물의 세계는 너무도 아득하다네 -
각기 다른 세계에서 왔어도
한 항아리에 담기니 이웃이 되고,
어느 누구도 물의 윤곽을 본 적이 없으니
심연의 얼굴을 보려 할 때마다 -
표면만 보이듯, 물도 보려 한다면
유리 같은 수면만 보일 뿐이겠지!
풀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네.
내겐 경외인 것을 그가 어찌
그렇게 가까이 서서 그렇게 대담하게
볼 수 있는지 종종 나는 궁금하다네.
왠지 저 둘은 친척일지도 모르지.
사초가 바다 옆에 서서 -
발아래 바닥없는 심연을 딛고서도
조금도 겁을 내지 않듯이.
그러나 자연은 인간에겐 늘 이방인.
자연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자들도
자연의 유령 집을 결코 지나본 적 없고,
자연이란 유령을 정의 내린 적도 없으니,
자연을 모르는 자도 불쌍하지만,
자연을 안다는 자가
자연을 가까이할수록 자연을 더 모르게 되는 것이
더욱 가련할 뿐이라네.(1400)
인간은 그래서... 더욱 가련할 뿐.
외로운 자리에서 인간을 가련하게 바라본,
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