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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ㅣ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일본인들은 '오타쿠'스러운 면들이 있다고 한다.
마리 여사의 다른 책들에서는 '다양한 관심'을 읽었는데, 이 책에선 한결같이 '아랫도리'에 관심을 쏟는 모습이다.
그녀처럼 그럴싸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쓰는 멋진 교양인이,
하필이면 빤쓰에 삘이 꽂혔던 걸까?
일본의 대표적 국기(國技)인 스모를 보면 좀 우스꽝스럽다.
과장스런 몸짓도 그러하지만, 특히 그들의 훈도시는 두툼한 넙적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여있어 그렇다.
이 책의 표지엔 공산주의 소비에트의 망치엠블렘이 들어간 붉은 깃발에
황금빛 팬티를 걸친 여성의 하체가 휘날리는 그림이 있고,
그 옆엔 레닌이 금세라도 공산 혁명의 완성을 공표하려는 듯 근엄한 표정으로 있지만,
아랫도리는 하얀 팬티 차림인데,
그 깃발 옆에서는 마리 여사가 세 마리의 고양이들을 안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다.
인류 역사의 혁명적 사건이 팬티 한 장에 들어갔단 이야길까?
발그레한 얼굴이지만 호기심 가득한 마리 여사의 눈길은 여전히 팬티에 머문다.
'팬티노 멘보쿠, 훈도시노 코켄'은 '팬티의 체면과 훈도시의 품위'정도의 뜻이다.
속옷에 대한 연구의 시작은 <인류의 특징>에서부터다.
포유류 중 용변을 본 후 닦아대는 것은 인간뿐이고, 그것은 직립과 인간의 식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한 그의 프라하 생활은 당시의 소비에트 사회의 특색을 그대로 답습하게 하였는데,
팬티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소련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안경처럼 당연히 쌍으로 되어서 복수형으로 된 단어를 공부하노라면, 바지가 복수형 명사임을 알게 된다.
그런 것에 대한 탐구도 집요하며 재미있다.
신체의 영도(0도).
아무 것도 칠하지 않고, 형태를 바꾸지도 않고, 장식도 하지 않은 인간의 신체.
곧, 알몸과 같이 태어난 그대로의 상태, 문화나 문명으로 가공되지 않은 신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신체의 영도'는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왜인지 가리고 싶어하는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일본의 축제 모습을 보면, 아직도 훈도시 차림의 남성들이 가마를 메고 가는 모습을 본다.
일견 민망스런 모습이기도 한데, 훈도시에 대한 집착이나 애정은 일종의 로망인 모양이다.
마리 여사는 그것을 <북방 계통의 강력한 무기, 풍요로운 문물, 선진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가,
남방 기원의 훈도시에 집착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신선한 의문도 갖는다.
마리 여사의 이런 상상들은 유쾌하고 신선하다.
그런 여사의 글을 이제 읽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이 아쉽고 또 그의 글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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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 이야기에 세메다인과 세멘다인이 섞여 나온다. 45쪽의 세멘다인은 세메다인의 실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