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 이후,
1980년 5월 광주에서 숱한 민중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다시 군사독재는 이어지고 있었단다.
그런 사회적 배경으로 1980년대 문학은 <민중 문학>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어.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그 당시 민중의 보잘것 없는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로 유명하다.
우선 한번 읽어 보렴.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발간 난로가 타오르는 대합실(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풍경이 시각적으로 떠오르지.
'역'이란 곳은 애환에 젖은 삶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이고.
실제로 '사평역'이 어딘지를 궁금해할 필요는 없단다.
영화 '해운대'가 실제로 해운대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야.
소설 중 '무진 기행'의 안개의 도시 '무진'도 '방황'을 상징하는 상상 속의 도시고,
'삼포 가는 길'의 삼포도 '잃어버린 고향'을 상징하는 도시란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반복되는 구절을 찾을 수 있을까?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 두 줄인데... '톱밥'이 '눈물'로 바뀌었지.
이렇게 수미상관처럼 생긴 글들은 그 사이에서 뭔가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커.
그 화학적 변화가 바로 <주제>에 해당하는 것이란다.
우선 노란 부분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눠 보자꾸나. 그 앞부분을 읽어 보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막차가 오지 않는 작은 역의 대합실.
밤새워 굵은 눈송이가 내려 쌓이는데,
그 시린 유리창을 녹여주는 것은 톱밥 난로란다.
이런 배경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부분이 앞부분이다.
작은 시골 역이니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가난하고 볼품없는 시골 사람들이겠지.
신경림의 <농무>에서 배웠듯이, 농촌은 몰락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화자 <나>가 등장하는데, 그는 톱밥 난로에 톱밥을 던져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간이역의 역무원 정도 되겠지.
그믐은 음력으로 한 달이 마치는 날이니깐,
그믐처럼 졸고 쿨럭이는 사람들은
인생을 마쳐가는 노인들이기 쉽겠지.
이렇게 볼품없는 공간적 배경과 볼품없는 인물의 제시부가 앞부분이야.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몇 사람은 할말들을 가득하게 안은 삶을 살았구나.
누구나 살고 나면 자기 인생이 소설 몇 권처럼 파란만장해 보인다고 하더라마는,
식민지 시대 40년대와 전쟁 시기 50년대.
민주화 운동의 60년대와
군사독재로 농촌이 침몰하고 산업화시대로 탈바꿈하던 60~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은,
하나 하나가 그대로 역사였고 민중사의 대장경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청색의 손바닥은... 차가운 빛의 이미지다. 말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랄까.
창밖도 차갑고... 사람들도 춥다.
신경림은 '갈대'에서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이라고 했었지.
이제 곽재구의 시에서는 이렇구나.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
술에 취한 것은 제정신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지.
위에서 적은 저런 시대에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니.
보잘것 없는 한 두릅(20마리)의 굴비나 한 광주리의 사과를 사서
고향에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떠벌이며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민중>들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고 있다.
그 뒤의 <기침 소리>와 <쓴 담배 연기>도 마찬가지로 민중의 모습이란다.
그렇지만 '눈꽃의 화음'이라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넣어서,
그 삶은 고달프지만 서정적이고 평온한 분위기의 대합실에 앉아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단다.
자정이 넘는 시각이 오면,
이제 막차가 눈에 가로막혀 언제 올지 하염없이 연착되고 있는데,
낯설던 앞사람의 얼굴도,
삶에서 겪었던 뼈아픔도 모두 눈밭(설원)에 파묻히듯 친숙해지는데,
이 작은 간이역엔 서지도 않는 급행 열차가
빠~~~앙~ 경적이라도 길게 울리며 철커덩 철커덩 바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그 기차에 탄 사람들은 따스한 공간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들인지
단풍잎 같이 따스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구나.
그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 인생 역정은 참 길기도 하다.
돌아보면,
그리웠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나도 한때는 농촌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고,
그 순간들을 상기하며(호명하는) 화자는 톱밥 난로에 '톱밥'을 던져 준다.
그 '톱밥'은 '연민'이며 '동병상련의 심정'이어서 왠지 '눈물'겨운 것이구나.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언젠가 꼭 돌아올 아름다운 그날들을 부끄럽게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진실로 아름다운 그날의 시 한 편을 꼭 쓰기 위하여" 시를 쓴다는 말을 시인이 남긴 적이 있다.
곽재구 시인이 바라던 '그날'은 어떤 날일까?
70,80년대의 민중이 바라던 '그날'은 '민중을 위하여 국가가 서는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세계화의 물결은 갈수록 '온 세계의 민중'을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쉽다.
한때 유명했던 소설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란 소설이 있단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넉 달 동안 머물러 있던 공사판의 공사가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쳐 나온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정씨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정씨'는 교도소에서 목공·용접 등의 기술을 배우고 출옥하여 영달이처럼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던 노동자인데,
그는 영달이와는 달리 정착을 위해 고향인 삼포(森浦)로 향하는 길이다.
그들은 찬샘이라는 마을에서 '백화'라는 색시가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집 주인으로부터 그녀를 잡아오면 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들은 감천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가던 중에 도망친 백화를 만난다.
백화는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이지만 열여덟에 가출해서 수많은 술집을 전전해서인지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늙어 보이는 작부였다.
그들은 그녀의 신세가 측은하게 느껴져 동행이 된다.
그들은 눈이 쌓인 산골길을 함께 가다가 길가의 폐가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인다.
백화는 영달에게 호감을 느껴 그것을 표현하지만 영달은 무뚝뚝하게 응대한다.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선다. 눈길을 걷다가 백화가 발을 다쳐 걷지 못하게 되자 영달이 백화를 업는다.
일곱 시쯤에 감천 읍내에 도착한다.
역에 도착하자 백화는 영달에게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영달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비상금을 모두 털어 백화에게 차표와 요깃거리를 사준다.
백화가 떠난 후 영달과 정씨는 삼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 삼포에도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달이는 일자리가 생겨 반가웠지만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음의 정처(定處)를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소설도 <민중>의 삶에 따스한 시선을 던지던 소설이었다.
그래서 '사평역에서'와 같은 시와 엮여서 시험에 잘 내는 소설이지.
황석영은 장편 민중 소설 <장길산>이나 <객지> 등 민중 작가로 유명했는데 요즘엔 좀 맛이 갔더라.
시대가 변하니 민중은 돈벌이가 안되는 모양이다.
이 소설의 '정씨'는 감옥에서 굴러먹던 막장 인생이고, '영달'도 막노가다꾼이고, '백화'도 술집 여자일 뿐이지만,
그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는가. 하던 신경림의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로 꾸민 소설이란다.
줄거리는 이렇다.
사평역이란 작은 역에서 기침하는 농부와 그의 아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중년 사내,
시위 때문에 제적 당한 대학생, 창녀, 행상꾼 아낙네 둘, 미친 여자 등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시점을 각 인물들에게로 옮겨서 인물들의 침울하고 어두운 삶의 면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원작 시의 서정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눈 내리는 간이역, 톱밥 난로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모습,
등장 인물들의 정감 어린 태도와 따뜻한 시선이 소설의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민우야.
사람은 사는 데 무엇을 최고로 쳐야 할까?
무조건 돈만 많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사람이 무조건 성실하고 착하다고 옳은 것도 아닐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일도 삶의 성공 중 하나가 아닐까...
이밤엔 이런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도 생각하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