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이제서야 시간을 낸다.
부지런히 매일 쓰려고 노력할테니, 너도 부지런히 읽어주기 바란다. 

박재삼 시인의 시 중 유명한 것이 두 편 있다. 

'추억에서' 연작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다. 

진주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추억에서 67, 전문)  

그의 '추억에서' 연작은 가난해서 서글펐던 추억으로 점철된다. 
그 서글픔의 추억은 평생 그를 '울음'의 시인으로 자라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주를 휘돌아 흐르는 강, 남강.
유서깊은 도시 진주는 양반들은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 몰라도, 가난한 서민이 살기엔 힘든 곳이었을 거야.
그래서 조선 후기 진주 민란도 일어났고,
박경리는 그 동네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밑바닥 삶의 끈질김을 <토지>를 통해 풀어냈지. 

화자의 어머니는 진주 장터의 생어물전(마른 어물은 건어물전)에서 생선을 파셨나보다.
오누이(오빠와 누이)는 골방 안에서 머리 맞대고 손시리게 떨고 있었고... 

1연에서 등장하는 배경 <어스름>은 해가 넘어가고 나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란다.
근데도 엄마는 아직도 생선을 다 팔지 못하고 남았구나.
빨리 팔고 오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와야할텐데... 마음은 바쁘고, 손님은 점점 적어지고...
'은빛' 이미지는 '은전'으로 '돈'을 가리키는데,
생선 눈깔도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겠고, 생김새도 그런 것일거야. 

4연에서 다시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엄마의 마음이 빛나는구나.
글썽이는... 이것은 눈물을 형상화한 것인데, 마치 옹기(항아리)가 달빛을 받아 번득이듯,
어머니는 오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짓는 마음이란다.
어머니는 그 맑고 고운 진주 남강을
해뜨기 전 새벽과, 해진 뒤 어스름에야 보던 힘든 삶을 사셨던 분이구나. 

어린 시절, 그 추억에서 퍼올린 기억 하나가
이렇게 가슴 시린 것이었다니...
과연 민우의 추억들은 어떤 심상을 퍼올릴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박재삼의 가장 유명한 시는 역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란다.
가을 강에 노을이 타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시간의 강에 '울음'을 빗댄 것은... 어떤 유사성이 있을지... 생각하며 읽어 보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겠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이 시는 어렵지 않다.
제삿날 큰집에 내려가 시간이 좀 남아,
가을햇볕, 따가운 햇살 아래, 타박타박 산등성이까지 걸으면서,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동무삼아 올라간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그러다, 해질녘 노을이 붉게 물든 강물을 본다.
울컥, 서러움이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친다.

첫사랑, 그 다음 사랑, 그리고 미칠 일로 남은 자신의 삶이
막바지에 다 와가는 강물의 처지와 동병상련...  
소리죽여 울고 있는 가을강을 눈물어려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눈망울이 금세라도 붉게 비쳐 올 듯하다. 

이런 유사성의 발견이 시의 은유를 완성하는 것이란다.
자신도 젊은 시절(첫사랑)엔 힘내서 팔딱거리며 살았는데,
좀더 나이들어선(그 다음 사랑) 세상이 힘겨워 울음이 났고,
이제는 인생의 종점에 다 와가는(바다에 다와가는) 나이가 되니
가슴에 미칠 일 하나쯤 숨겨져 있지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소리죽여 우는 가을 강처럼 그렇게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렇게 인생을 바라보고,
자연을 바라보면서, 유사성을 발견해내는 일을 <관찰>과 <조응>을 맺어서 <관조>라고 한단다. 

넓게 보면, 자연과 인생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 인생이 한 점처럼 존재하는 것일 텐데...
인간은 세상을 자연과 인생으로 나누곤 하지. 건방지게...
아무튼,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생의 묘미를 발견하는 관조의 맛을 잘 보여주는 시인이란다. 

다음엔 아빠가 좋아하는 <한>이란 시를 한 편 보자꾸나.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 설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한(恨), 전문>

 

내 마음에 오롯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른다. 

자기가 마음 속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그 사랑을,
화자는 <사랑의 열매가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나무>에 빗대어 표현했구나.
화자의 사랑은 기대감에 넘치는 사랑이 아니고,
기쁨을 동반하는 사랑이 아니고, 서러운 사랑의 열매가 붉게 익고 있는
그래서 감나무같은 사랑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황을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형상'을 드러나게 표현하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단다.
형상화에 성공한 표현은 이렇게 가슴 속 상황을 다양한 심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지.

그래서, 2연에서 죽어서라도,
내 서러운 나무(나의 마음)는 그 사람 등뒤로 나지막하게 휘드려질까...
아, 소심한 사람.
그렇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날 사랑했을지도 모르고,
내 서러운 사랑의 나무를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면,
삶이란게 뭔지... 이런 마음이 되겠지. 

또, 내 사랑만 이렇게 서글픈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세상살이 눈물로 보낸 건지도 모른겠다는...
결국, 인생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이런 것이니, 서로 동병상련 할 밖에... 

박재삼의 '한'스런 '설움'을 읽는 일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일이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비를 노박이로 함께 맞는 바보같은 웃음이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는 조금 나이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단다.
이런 것을 어린 나이에 읽으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고... 

이제 방학이 되었으니 아빠도 부지런히 매일 두어 편의 시를 읽혀주려고 한다.
방학은 쉬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빠의 철학이지만,
올해 겨울과 내년 여름은 수도승처럼
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아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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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박재삼의 시를 읽었을 때 저는 대체 왜 눈물의 시인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 글샘님 설명으로 다시보니 이제야 조금 가슴에 닿는듯 하네요.

신묘년이 멀지 않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샘 2010-12-28 00:55   좋아요 0 | URL
내년이 신묘년인가요? 요즘엔 해가는 데 무심해서리... ^^
박재삼의 시는 참 아련한 감정을 갖게 해요.
울컥 눈물나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이야기 따라가다보면, 글썽, 눈물짓게하는 사람.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