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리영희 선생이 내년에 살아 계셨다면 앙코르와트를 가보고 싶다셨는데...
올해를 결국 넘기지 못하고 가셨다.
리영희 선생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작금의 시기를 미국의 식민지로 공고화되는 시기로 보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힘이 부쳐서 긴 이야기는 못하셨지만, 100년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나 현재를 보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역사는 뼈대만 있고 살이 없지만,
힘있는 소설은 굳은 살이 가득 배긴 손길로 우리에게 100년 전 슬픈 이야기를 전해 준다. 

   
 

눈 부릅뜨다가 뺨대기 하나 더 맞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 그걸 깨달았소.
그래 그걸 깨달았으믄 좀 덜 억울할 기다.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것, 그건 아무짝에도 못 쓴다.
바보 시늉, 미친 시늉 뭣이든 빠져 나오는 게 젤이제. 싸움이란 그래야 이기는 법이거든.
감정때문에 힘빼는 것,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앞으로 살아가자믄. 
벌써 나뭇잎이 누우렇소.
누우렇다 뿐이가 많이 떨어졌지. 

 
   

이런 말로만 보면 작가의 의식이 기회주의적인 거나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신시대 사형까지 언도받은 김지하의 장모로 죽음과 삶에 대하여 질긴 고민을 하지 않고선 쓸 수 없는 이야기다. 

힘은 없고, 이론만 난무하던 무기력한 유학생들과,
민족 자본론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물산장려운동의 명암.
백정들의 형평사 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의미.
그 복잡한 속내를 자못 딱딱한 부분도 있으며 펼쳐내는 박경리 선생의 글은 그대로 한 편의 논문이요. 시대를 흐르는 강물이다. 

   
 

몇 사람을 살찌우는 대신 그들은 일본 자본가의 방패가 되는 동시 민족 분열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물산장려운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인데,
과연 민족을 배려할 것인지, 몇 사람의 이익으로 분열의 길로 나설 것인지는 결과가 이야기해 줄 것이다.
3.1운동이 힘있는 싸움으로 결말을 짓지 못했듯, 10년 뒤의 물산장려운동 역시 결말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현대사에 미약한 한국 역사에서 물산장려운동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하여 위키 백과를 찾아 보니, 역시 <한계>가 빤하게 적혀 있다. 아쉽다.

물산 장려 운동은 운동 자체에 여러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들어서 토산품만 사용하다 보니 토산품 가격이 크게 폭등하여 올랐고, 이는 곧 상인과 자본가들의 배만 채워주는 결과만 낳게 되어버린다. 이때문에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들과 지각있는 민중들이 '물산장려운동은 자본가 계급을 위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한다. 여기에 일본 제국 총독부 당국의 극심한 탄압과 박영효,유성준같은 친일세력들의 관여로 일제와 타협하게 되는등 변질이 되어 감에따라 여러가지 이유가 더해지게 되고, 쇠퇴해 져가게 된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426850  (물산장려운동 : 위키백과)

이 권에서 두드러진 사람은 '관동대지진'과 얽혀 그려지기 시작하는 '오가다'이다.
이 땅을 훑고 간 무슨 무슨 ~~주의가 피를 부르고, 피와 얽혀 있다 보니 '일본놈', '친일파놈', '빨갱이놈' 이런 적대적인 용어를 서슴지 않고 쓰는 비정한 언어가 되고 말았다. 툭하면 축구하는 데서도 출격, 승전보 등 전투 용어가 난무한다.
그런 와중에 박경리가 다시 조명하는 인간상인 오가다는 그야말로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오가다의 행보에 관심이 가는데,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역시 읽었다고 해서 내 책은 아닌 셈이다. 

신여성들과 유학파의 결혼관,
교회를 둘러싼 종교관,
서양식 귀족을 숭상하는 새로운 계급 의식 등...
1920년대를 조망하는 현대 소설로는 역시 토지 3부가 튼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강준만의 19~~년대 이야기가 숱하게 많은 팩트들로 짜여있지만 재미가 없는 데 반해, 이런 소설은 역시 그 시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형상화>의 힘이 돋보인다. 

12장의 홍이와 장이의 연애 이야기에서 홍이는 제 애비의 난봉을 그대로 따르는데...
홍이에게 큰맘먹고 뛰쳐온 장이에게
"시집가서 잘 살아라. 못 살거든 날 찾아와."하고는
"아아리랑 아아리랑 아아라리요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아!"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 있다.
이 시기는 만세 직후인데... 1926년 10월 초연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사운드 트랙에 들었던 '아리랑'이 튀어나오는 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저 노래는 민요가 아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흘린 실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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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2-0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님도 지난 아침,김삼웅 님 인터뷰를 들으셨군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뼈대만 살아있는 역사를 기억해 내지 못해서...맛을 제대로 못 느꼈어요.
일단 역사 공부를 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구요.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너무 속속들이세요.
제가 읽을 때 반감될까봐 그저 훑고 갑니다.

글샘 2010-12-09 20:23   좋아요 0 | URL
리영희 평전을 읽으려다가, 맨 뒤의 인터뷰부터 읽었거든요.
속속들이 읽는 건 아니구요. 저도 이 참혹한 시절을 옛날 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개같은 시절을 말이지요.

소나무집 2010-12-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게으름뱅이 독서를 하는 저를 넘어섰습니다.ㅎㅎ
저도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면서 읽고 있답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구요.
다 읽으시고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 한번 오세요.

글샘 2010-12-09 20:24   좋아요 0 | URL
차라리 100년 전 민중은 모르는 거나 많았지요.
매일 뉴스에 나오는 거라곤 치가 떨리는 가진자들의 몸부림 뿐이니...
박경리 소설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올 겨울엔 원주 한번 가고 싶네요. ㅎㅎ
처가가 인근이라 맘만 먹으면 갈 수 있거든요.

turk182s 2010-12-14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이지만 리영희선생에 대해 책몇번 읽은기억밖에 없네요,
학창때 동아리방한켠에 있던 낡은몇권,,당시 김영삼 당선시기였는데 인터넷이없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이미 사회과학 출판책들이 많던시절이라 선생의 저서가 별로 새로울게 없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70-80년대 인테리들한테 많은 길을열어 준듯합니다.
돌아가셨을때 한번조문이라도가고 싶었는데,,

토지 읽으시면서 시대와의 조우를 잘하시네요,,
어떤 소설가가
"XX주의, AA주의는 결국 다 사라진다. 근데소설봐라..
몇천년이 지나도 전해진다 생동하는 역사와 진리가 바로소설이다.."
이런말을했던것 같은데,(좀 과잉인듯)

소설이 요즘 안들어오던데..토지는 전집 구입해놓고 한달째 1권도 못놓고 있고,,
나이는 먹어가고 삶의 동력이 약해지는듯합니다.

무엇이든 함께하는 사람이나,사람들이 있어야 변증법적 상호사투가 일어날텐데..
DKNY 로 살다보니 ,,

제작년인가 자전거로 지리산남쪽을 여행했는데 너른들판에 펼친 길을가자니
하동에서 구례까지 페달질하는데,,강렬한 냄새가 나더군요..
지리산냄새와 함께 민民들의 원초의 냄새가,,,
그래서 언젠가 토지를 읽는다고,,맘먹고 있는데.
지금은
마음에 오욕칠정이 많아 ,,활자가 아른거릴 뿐입니다..









글샘 2010-12-16 23:01   좋아요 0 | URL
오욕칠정이야 저도 많지만... 습관적으로 독서가 몸에 배었을 뿐이죠. ㅎㅎ
토지가 4부로 가면서 재미를 슬슬 잃고 있습니다. 속도가 안 나네요.
아마도... 민초들의 그 원초의 냄새가 휘발된 부분이라 그럴 거 같습니다.
속도를 더 내다보면 또 나오겠죠. 그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