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피곤해서 쉬었다.
민우도 곧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고 하니, 간단간단하게 읽을 거리를 마련해 둘게. 

오늘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시를 두어 편 골라 볼까 해.
우선,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를 읽어 보자.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참깨를 터는 일은 이런 거야.
참깨가 가득 붙어있는 줄기를 잘라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린단다.
바삭하게 마르면 마당에 넓게 비닐 포장을 깔고 참깨를 툭툭 턴대.
그러면 참깨가 들어있는 씨주머니가 톡톡 터지면서 참깨가 튀어나오는 거지.  

이 시에서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참깨를 터는구나.
젊은이인 나는 빨리 일을 하고 가려고 힘을 들여서 탁탁 털었나봐. 

그런데, 할머니는 '모가지까지 털어지'는 나의 작업을 보고, 그러지 말라고 야단을 하지.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시는데, 나는 신이 나서 마구 쏟아지는 참깨를 보면서 속도를 냈던 거야.
도시의 삶은 <속도>와 <양>으로 승부하잖아.
빨리 많이 해야하는 것.
그렇지만 할머니의 철학은 '빨리와 많이'가 아니라 '천천히 해도 정확히'였던가봐. 

할머니는 오랜 연륜을 통한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일지도 몰라.
나는 여유로움이 없이 조급해하는 모습으로 할머니와 대조되는 젊은이고.
세상을 살다 보면 빨리와 많이라는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단다. 그럴 때,
지혜로운 할머니의 말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하는 말을 되새길 필요도 있겠지.
한자 성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있잖아.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다고... 적절하게 필요한 만큼이 중요하단 이야기겠지. 

매년 노벨 문학상에 후보로 거론되곤 하는 고은 시인의 시도 한 편 보자꾸나.
문학 교과서에 실린 '머슴 대길이'도 참 멋진 시다.
한국어란 낯선 언어가 비록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기에는 시기상조란 생각도 들지만,
고은이란 시인의 한평생이 <한국적인 인물> 만 명의 삶을 노래하리라던 '만인보'에 어우러진 것이라면,
이미 그는 노벨상 이상의 업적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 일거야.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얼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고은, 머슴 대길이) 

이 시를 보면, 머슴이란 신분이 등장한다.
머슴은 '종, 노비'와 달라.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는 모두 철폐되었단다. 그렇지만 그건 공식적인 서류상 이야기고,
실제로 종들은 주인집에서 땅을 부쳐먹고 살았지.
그런 신분을 머슴이라고 했고, 머슴에게는 사경(새경)이라는 급여를 줘야 했단다.
그렇지만, 양심적인 주인이야 사경을 제대로 쳐 줬겠지만,
대부분의 주인은 그저 먹이고 재우는 일로 넘어가다가 아이들 혼사라도 있으면 재산을 좀 주고 했다고 그래. 

머슴 중에도 상머슴은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으로,
주인의 신임을 얻어 나중에는 '마름'처럼 관리자가 되기도 했단다. 

머슴 신분인 대길이는 일 잘하고, 성실한 젊은이었어.
그런데, 그는 <까막눈>이 아닌 <먹눈>이었지. 글을 알았단 의미야.
지식인은 무식한 사람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지.
그리고 글자로 증거를 남길 줄도 알고 말이야. 
화자도 대길이 아저씨에게서 글을 배우고,
일제 강점기 36년이 지났단다. 

근데, 해방 이후 이 땅은 참으로 살기 힘든 곳이었단다.
가진 자들은 더욱 많이 가지기 위해서 온갖 협잡을 다 벌이고,
무산자들의 정권이라는 북한 정권도 부패하긴 마찬가지였지.
대길이 아저씨는 먼데 바다를 바라보듯, 세상 일에 관심을 가졌을 거야.
바다 울음소리 듣듯, 세상의 고통에 마음 아파했을 거라고.  

근데, 세상은 너무 잘 사는 놈들 위주로 돌아가고 말았지.
일제 강점기가 끝났는데도, 친일파와 지주 놈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떵떵거리고 살았고,
독립운동하던 이들의 후손들은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도 했단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가 가진 철학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단다.
그저, '도리'라는 것이지.
인간은 <혼자서 너무 호강하는 저밖에 모르는 존재>여서는 안된다는 도리.
인간은 <남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도리.

대길이 아저씨는 화자에게 <등불>같은 존재였어.
시적 화자가 주장하는 바가 뭘까?
어떤 삶을 살자는 걸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쉬운 도리를 지키며 살자는 것이겠지.

이 시의 언어는 친근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로 이뤄져 있단다.
그럼으로써 진실된 민중의 삶,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지. 

박남수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를 읽고 마치자.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박남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시제'야.
과거 시제였을 <받으셨다>를 <받으시다>로 표현한 거지.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이던 <받으셨다>를
할머니가 남긴 큰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받으시다>라고 표현한 것 같아. 

<방공호>는 공격을 방어하려고 파 놓은 참호인데,
그러니깐, 전쟁 중이고, 그 위에 핀 작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대. 

<아예> 방공호에는 들어오지 않으시는 할머니.
<숫제> 말도 없으신 할머니.
<그저> 노여우신 할머니. 

이런 두 글자짜리 부사어로 할머니가 뭔가에 무척 집중하고 계심을 표현하고 있구나. 
3연의 말씀을 통하여, 살아서 보고 있는 세상의 참혹함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어. 

전쟁 중에 <꽃씨>는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란다.
늘상 죽음의 위협에 가득한 전쟁 중에, 할머니는 생명따위 돌보지 않고,
꽃씨를 거두시는 모습으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사랑이 가장 강하게 부정되는 전쟁이라는 부조리한 상황.
거기서 할머니의 정성스런 마음을 통해서 애정의 숭고함이 꽃핀 것이란다.
남들이 숨는 방공호 그 위의 안전하지 못한 곳에 핀 채송화 꽃씨. 

생명이란 것은, 그 소중함은 그런 것이란다.
꼭 활짝 핀 장미만, 상품성이 있는 것만 소중한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지... 

머슴 대길이와, 참깨터는 화자를 통해서, 또 채송화 꽃씨 받는 할머니를 통해서 생각해 보자꾸나.
정말 돈 많이 벌고, 남들 위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일만 소중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가치를 위해서 소중한 자신의 삶을 투자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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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2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낮에는 이거 안 보였는데...^^
참깨를 털면서, 전에 내가 참깨 사진이랑 올렸던 시라 반갑네요.
김준태 시인과 김남주 시인은 광주의 5월을 노래한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분들이죠.

글샘 2010-11-29 21:45   좋아요 0 | URL
착실한 학생이군요. ㅎㅎ
어제 엉뚱한 폴더에 넣어 뒀더라구요. ^^
맞습니다. 김준태, 황석영... 뜨거운 시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죠.

반딧불이 2010-12-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준태, 박남수 시인의 시를 요즈음 학교에서도 배우는가요? 글샘님 덕분에 누렇게 변한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을 꺼내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