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어 원제가 Kamigami no itadaki다. 
일본어가 재미있는 것은 같은 글자가 붙어서 복수형이 되는 건데, '~들'보다 구체적인 맛이 난다.
신들...보다 신,신...이런 조어법이 주는 말의 맛이 있다.
이타다키는 '정상'을 뜻하는 말이다.
'신들의 봉우리'와 '카미가미노 이타다키'가 주는 말의 맛은 그렇게 다르다.
의미는 같지만... 

이 책은 잘 짜여진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고찰을 등산을 통해 표현한 소설이기도 하고,
산악 소설과 도전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맨 앞,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광경을 농밀한 구름이 에워싸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뒤덮어 감춘다.
그것이 내가 본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14쪽) 

마치 시에서 수미상관의 기법을 쓰듯, 맨 뒤에서 다시 수십 년이 지난 사진 이야기로 끝나는 소설. 

어느새 구름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모두 감싸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578쪽) 

산사나이들의 순정은 그렇게 아무 이유없이 거기 오르는 것이다. 

앞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사람은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던 맬러리고,
뒤의 <마지막 모습>을 남긴 사람은 '내가 여기 있으니까' 오른다던 하부다. 

이 긴 소설을 읽으면서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독서의 트레킹을 도와준 것은 탄탄한 구성이다.
이야기를 이렇게 쓰면 독자를 길 잃고 헤매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구나... 감탄한다. 

인생은 등산이라고 하지만, 그저 야트막한 산을 오르내리는 정도의 인생도 있고, 에베레스트의 그 빙벽에 도전하는 인생도 있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이 소설은 도전하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하부를 통해 형상화하여 들려준다. 

하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등학생 시절 황석영이 썼다던 '입석 부근'같은 등산 소설이 얼마나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것인지를 조금 생각한다. 그보다는 오세영의 <등산>의 자세.
많이 오르려는, 꼭대기에서 만세부르려는 자세가 아닌,
지금 여기서 조금 조금씩만 미래를 향하여 <가까이, 가까이> 가는 것이 작가가 찬양하는 삶의 자세다.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암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無明)의 벌레처럼 무명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벼랑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오세영, 등산) 

작가의 이름 참 멋지다. 꿈의 베개... 유메 마쿠라... ^^ 

그의 이야기는 이것이다.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생명을 걸어도 된다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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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1-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이렇게 멋진 리뷰도 가능하군요~

저 에베레스트 말고 일본어도 배워야 할까 봐여,ㅋ~.
'카미가미 노 이타다키'랑 '유메 마쿠라'랑 어감이 좋아서,자꾸만 입안에서 굴리며 발음해 보게 돼요.

글샘 2010-11-16 22:22   좋아요 0 | URL
음... 이 리뷰가 멋진 구석이 있나요??? ㅋㅋ
일본어를 공부하고 나서는 일본어 책은 꼭 원 제목을 찾아보게 됩니다.
원어로 읽는 맛과 번역의 맛은 천지차이거든요.
아~ 꿈의 베개를 아는 유메마쿠라 바쿠... 하부가 마지막 남긴 말이 그거잖아요. 상상해~
삶의 철저함을 추구하는 남자가 남긴 말이란 게, 상상...이라니... 정말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turk182s 2010-11-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양사작가라는 말에끌려서 사둔책인데,,좋게읽으셨나보군요,,

글샘 2010-11-21 21:03   좋아요 0 | URL
음양사는 어떤 작품인지 몰라도, 이 책은 멋진 책입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