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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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1986.7) 
그 여름의 끝(1990. 6)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92. 1 재간행)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 5) 
정든 유곽에서(1996. 12)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001. 11) - 이성복 아포리즘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2001. 12) - 이성복 산문집 

아, 입이 없는 것들(2003. 6)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10) 

오름 오르다(2004. 11) - 이성복 사진 에세이
타오르는 물(2009. 12) - 이성복 사진 에세이

대학교 2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계집애가, 이 시인 참 시 잘 쓴다~면서 보여준 시집이 '남해 금산'이었다.
이성복이란 시인이 누군지도 전혀 모르는 내게, 그 계집애는 시를 한두 편 읽어준 것도 같다.
아직도 시를 쓰고 있을까? 그 아이는? 

이성복의 시를 몇 권 읽기도 했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서, 이성복 글의 흐름을 정리해본 데 이유가 있다.
이 시집의 독특한 형식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궁금해 한 것이다.
아니, 먼젓번에 읽은 <달의 이마~>란 시집에서 이미 그런 의문을 가졌었지만... 게으른 나는 답을 못 찾았었다.
이제 보니... 이성복은, 시쓰기를 상당기간 접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한 작업들이 아포리즘, 산문집(뭐, 그게 그거니깐, ), 사진 에세이 2권(이것도 역시 그런 거니깐...)
그리고 이 시집과 달의 이마~라는 '시집'이라고 일컫기에 좀 애매한... 그런 책이다. 

우선 125편의 글이 적혀 있다. 시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다.
시라고 보기엔 좀 그런 이유는... 표제가 하나씩 붙어 있고, 넘버링도 함께 굴러가는데... 

어떤 시들은 서로 연결되어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시들은 낱낱의 감상이 떠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문학에 있어서는 졸라 권위가 있는
(또는 권위적인)
문학과 지성사에서 찍어낸 이 책에 <이성복 시집>이라고 콱,
박아 놨으니, 시집이라 일컬어야겠다. 

5. 그 어둡고 추운, 푸른... 이런 시는 말의 맛이 참 좋다.
이성복의 시는 대체로 춥고 푸른 이미지를 많이 함축하는데, 이 시도 그렇다. 

이성복의 다른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실렸던 '꽃피는 시절'과도 유사한 자연과 화자의 융합체로서의 감각을 그리는 시들도 꽤나 많다.
아포리즘과 산문과 '시'의 간격을 나는 모르겠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아포리즘'을 지향하며
'산문'적으로 씌었지만,
권위적인 출판사에 의하여 '시'라고 명명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시집>인 것이다. 

강정이 해설을 붙였는데,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을 읽어보면 아리까리, 알쏭달쏭,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마라, 를 '하지 마라'는 뜻으로도 보고, 그래서 '욕구의 원천'으로도 본다. 

내가 보기엔 그저 '마라(도)'를 부른 것 같은데 말이다. 뭐, 중의적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성복이 <오름 오르다>를 쓴 것도 그렇고,
25번. 남국의 붉은 죽도화...가 만장굴 입구의 그 붉은 꽃무더기를 뜻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산굼부리 파헤쳐진 네 젖가슴
검은 돌, 검은 돌로 쌓은 네 어깨
검은 팔, 내 허리를 감는 네 검은 팔...
왜, 어떻게, 너는 이곳에 와서 꽃피었니?
초록 잎새 속에 뿌려진 핏방울,
내 살 속의 살, 살보다 연한 뼈(25. 남국의 붉은 죽도화, 부분) 

그리고 바로 '마라'가 연타석으로 등장하신다.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 보라...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26.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부분) 

마라,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가로등 불빛에 떠는 희부연 길 위에,
마라, 네가 어떻게 왜 여기에
대낮처럼 환한 갈치잡이 배 불빛, 불빛에...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 (27.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부분)

 

멸치잡이 갈치잡이 배들이 부옇게 뜬 마라도 앞바다... 갈치가 제주의 특산물임은 무식한 나도 안다. 

마라, 네 눈 속에 내가 뛴다
내 다리를 묶어 다오
내 부리가 네 눈 마구 파먹어도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마라(28. 내 몸 전체가 독이라면, 부분) 

지금 검은 산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은
흘러내린다 옷만 있고 몸뚱이가 없다
마라, 나는 너의 허리를 감는다
살아 있느냐고, 살아 있었느냐고 (29.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부분) 

바닷가 언덕 위 이름 모를 꽃들,
제 뺨을 잎새에 부비며 어두워진다
발 밑에 제 이름을 묻고, 그림자를
묻고,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꽃들,
눈먼 파도에 시달리다 물거품이 되는
꽃들, 마라, 눈을 떠라, 지금 네가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난 시들고 말거야 (30. 몸 버리려 몸부림하는, 부분)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마라
네 몸 여러 군데 뚫린 상처는
현무암 절벽의 해식 동굴, 실서안
꽃들과 불안한 날벌레들 술래잡기하는
네 눈은 터지기 직전의 양수막 같은
희멀건 경이, 마라, 지난밤 너는 어디서
잠들었던가 불빛에 시달리는 갈치잡이
배들은 네 거친 잠자리였던가 오, 파도치는
운명, 늙은 달의 장력에 끄달리며 오늘
밤 너는 얼마나 더 뒹굴어야 하는가(31. 밤인가, 캄캄한 몸인가, 부분) 

그렇다고, '마라'를 재발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저 발견의 기쁨에 몇 줄 베낀 것 뿐. 

그의 삶은 삼월의 바람에 지쳤다. 

삼월의 바람은 순하지 않다/
다만 삭은 발래집게의 풀어진
힘으로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는
삶,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41. 삼월의 바람은, 부분) 

시라고 하기엔 산문스럽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적 내용을 채운 아포리즘이 어울리는, 시인의 책. 

그러나, 지친 그에게, 삶은 '여러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것이고,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다.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순 없어도... 

아침마다 꽃들은 피어났어요//
밤새 옆구리가 결리거나/ 겨드랑이가 쑤시거나//
밤새 아픈 것들은/ 뜬눈으로 잠 한숨 못 자고//
아침엔 손을 뻗쳐/ 무심코 만져지는 것이//
무언가 아름다운 것인 줄 몰랐어요 (49, 무언가 아름다운 것, 전문) 

그의 앓는 어머니가 그렇게 하시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 보는' 나이.  

하루 종일 토하고 밤에는
잠 못 이루는 어머니,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말슴 없으시다가,
인제 겁 안 난다, 살 만큼 살았으니...... 

살얼음 낀 우물을 들여다보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본다 (87.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부분) 

'꽃피는 시절'을 떠나보낸 그는, 이제 국밥집 담벽 아래서, 그만, 얼굴 폭 가리고
울고 싶어진다. 

겨울 오후 국밥집 먼지 앉은
비닐 장판에 미끄러져 들어온
햇빛, 선팅한 유리 창살 격자를
죽은 듯이 눕혀 놓는다 아침부터
테니스 치고 땀에 쩔어 들어온
국밥집, 오늘 하루도 벌건 국밥에
썰어 넣은 대파같이 잘도 익었구나
소주 한 병에 여섯이 달라붙어,
구이집 마담의 무성한 거웃이나
재혼한 친구 마누라 탱탱한 궁뎅이
감탄하다가, 비틀거리며 국밥집
나올 때면 부끄러워라 국밥집 담벽
아래 바르르 떠는 참대나무 앞에서
그만, 얼굴 폭 가리고 울고 싶어라 (116. 국밥집 담벽 아래, 전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대에 '마흔'의 어정쩡함을 만난 그는 참으로 당황하였던 모양이다.
시라는 물건 안에서 쎅쓰가 나오고, 씨벌, 이런 곰삭지 않은 언어들이 난무하며 침튀기는 현장에서,
그는 견딜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멀끔한 눈으로 보지 못하고, 뷰파인더를 거쳐서 본 그의 망막에 비친 것들은
시가 되어 안착하지 못하고, 활주로를 날며 비틀거리는 나비의 날갯짓마냥, 사진으로, 아포리즘으로 떠도는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성복의 시집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좋긴 한데, 쪼끔 부끄럽다고"


이게 그의 시집에 대한 변이 아닐까? 스스로의 시에 대한 변명.   

시인의 말, 로 맨 앞에 붙인 그의 몇 줄 글을 통하여, 그의 이런저런 심사를 엿볼 수 있다. 

  지난 세월 씌어진 것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엮어 읽으면서, 해묵은 강박관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은 돌아나올 수 없는 길. 시는
스스로 만든 뱀이니 어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은
곤혹의 지지부진이다. 

자신의 시들을 돌아본다는 말이 한 구절.
자신의 시들이 '자동화'되고 있음을 본다는 말이 한 구절.
그러나 한번 들어선 이상 돌아노올 수 없는 길이란 말이 한 구절.
스스로 선택한 시의 독이 온몸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말이 한 구절.
그러나... 곤혹스럽게도, 지지부진함을 털어놓은 아쉬움이 한 구절.
이렇다. 

다시, 그가 <꽃피는 시절>처럼 열렬한 시를 쓸 수는 없는 것일까?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이성복, 꽃피는 시절>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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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10-10-1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 관한 페이퍼를 간만에 읽습니다.
나도 한때 열심히 시를 읽었는데, 요즘은 시에 관해서는 상실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사람들은 시를 잃어버렸고, 시인은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도종환 시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사회운동하지 않고 시를 열심히 썼다면 어땠을까 하며 여운을 남겼죠.
그때 사람들은 그 여운이 뜻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성복은 그 여운이 떠올릴 만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 사람은 자동화된 시의 플롯을 보면서 도종환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서 여운을 남기고 있군요.

시에 대한 치열함, 현실에 대한 치열함.. 언어는 곧 시이며 시는 곧 언어인 물아일체의 시인을 만나본지가
참으로 오래된 것 같아요. 백석이 그랬고 김수영이 그랬고 이전의 박노해가 그랬었죠.
시의 문제만이 아니라 문학 전반의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우리의 문학은 더 이상 힘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춤>이 참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고..
주저리주저리~~

글샘 2010-10-12 23:14   좋아요 0 | URL
삶의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죠.
허술하게 입고, 담뱃곽은 공유하면서 언제든 만나면 한잔, 하면서 세상의 부패에 소금을 뿌리듯, 비판의 침을 튀기던 시대와...
깔끔한 옷을 입고 담배는 끊었으며, 반갑게 만나도 차때문에, 하면서 가볍게 원두 커피나 한잔 하면서, 세련되게 시대를 잊어버리는 삶의 문제 말입니다.

요즘 시나 소설들 보면, 딱, 그래요.
번들거리는 자동차, 멋드러진 가을 코트에 손에 들린 건 국밥보다 훨 비싼 별다방, 콩다방 커피잔 하나... 잔치는 끝났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