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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강명관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야구에서,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지 마라'는 말이 있다.
공격할 때, 병살타를 치거나, 득점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아웃이 되는 아쉬운 마음이 수비에서 에러를 발생시킨다는 이야기다.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이어지기 쉽다는 말이겠다.
책을 읽거나 연구를 할 때도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는 오류'를 범하기 쉽단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우리 심리 속에서 거부하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꼽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품는 일도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할 때 완전히 지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강명관은 공격에서의 실수를 수비까지 가져오지 않은 학자다.
그는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이나, 훌륭하다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시야는 넓고, 시선은 툭 트였다. 시원스럽다.
그 시원스러움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오는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버둥에서 나온 것일 게다.
강명관은 옛글을 읽는 학자다. 옛글 속에는 아무래도 고루한 지식이 들었을 거리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강명관의 글을 읽는 일은, 쨍, 소리 나는 쇳소리를 듣는 일과도 같다.
김소연은 마음 사전에서 '상식'을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유령>이라고 했다.
신선한 표현이다.
상식은 객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사실은 실상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령>이란 비유로 표현했다.
그 유령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기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여기기 쉬우나, 유령은 어디까지나 허상인 것.
조선시대 600년은 참으로 긴 기간이었다. 그만큼 조선은 탄탄한 국가였다.
그러나, 그 탄탄한 기반에 <성리학>이 있었고, 유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훈민정음이 탄생했고, 현재 통용되는 지폐에 들어간 이황과 이이가 사상의 중심축에 서게 되었다.
성리학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 조선을 세우는 일과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으로 버티어진 조선 시대에 쓰여진 글들을 보면,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겠지만,
유령을 유령으로 볼 줄 아는 강명관의 눈에 띄는 글들은 신선한 글들이 많다.
논문 좋아하는 학자들이 보면 잡문에 불과한 강명관의 글들.
잰체하는 학자들의 고루한 글들에 비하면 강명관의 글은 줏대가 서 있어서 시원스럽다.
동심은 사람의 최초의 마음이다. 동심은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 자라면서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또 사라지게 된다. 이탁오.
도리와 견문이 나를 구성하는 주인, 곧 주체가 되어있다는 말... 16
도리라는 것은 인간 사회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
그 도리가 오히려 사람을 잡고 있다.
현대의 결혼, 상례, 제례, 명절 풍속 등에서도 도리가 사람잡는 일은 흔하고 흔하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가 이런 말 하기 쉽지 않다. 하긴, 유학자들이 빨갱이라고 하는 이탁오의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학자임에랴~
사람의 주체는 사람인 세상이 얼마나 좋으냐.
그렇지만, '학생 인권 조례'가 통과된 것을 보고, 애들을 안 패고 어떻게 가르치냐는 선생들이 아직도 많으니...
도리는 길고 인권은 짧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코귀입이 달려 있어 남들이 앉을 때 따라 앉고 남들이 설 때 따라 선다.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하니, 이 어찌 불쌍한 노릇이 아닌가. 꼭 요즘 유행처럼 기초학문을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한 말 같아서 통쾌하기도 하고 씁쓸하도 하다. 60년 바닷가에서 조수를 연구한 사람, 조귀명 (27)
고전을 잘 읽기 위해선 고전이 완벽하고 어려운 책이란 잘못된 상식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사유도 저작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33)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학자들의 행태를 보면 참 하품날 일 많을 게다.
나처럼 얄궂은 석사 논문 하나 쓰는데도, 학자연 하는 인종들의 충고에 구역질날 뻔 한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한글 맞춤법에 대해서, 또는 한글 전용에 대해서 아직도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과 말을 섞는 일은 참 두려운 일이었다.
상것들이 재산을 모으지 못하게 하여 가난에 찌들게 하고, 그 결과 하는 수없이 양반에게 의지하게 만들며, 아무리 가혹한 린치를 가해도 자신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도록 상것들을 무식하게 만든 것이 조선조 양반들의 통치술. (60)
그런 조선을 '전통' 운운하며 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강교수의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재앙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더욱 독서하고 더욱 겸손하라. (75) 이덕무, 갑신제석기
이덕무처럼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독서하고 겸손할 것을 권하는 글을 읽어야 한다.
자기들은 군대에 안 가면서, 국익 운운 하는 자들의 힘센 말은 사람을 겁주지만, 따지고 보면 사기성이 농후한 것이라고 날카롭게 꼬집는 글을 읽는 일은 통쾌하지만, 역시 지적 주류가 아님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의 편가르기가 진보적 생각을 언제나 받아들일는지... 한숨만 난다. 어쩌면, 향후 100년 동안, 이런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구양수, 추성부 秋聲賦 를 읽자니, 가을이 왔다. 곧 추석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호들갑들을 떨지만, 난 누구에게 최대인지, 어떤 점에서 전통 명절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들의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나 아닌지...
종일 차 막히는 걸로 뉴스를 때우는 희한한 방송국을 볼 때, 그들의 민족이 아닌 이주 노동자들이나 결혼 이주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스트레스 투성이인 <명절 건너뛰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가을이 왔고... 차츰 깊어지리라...
구양자가 한밤중 책을 읽노라니, 서남쪽에서 웬 소리가 들린다.
섬뜩한 느낌이다. 이상도 하지.
처음에는 뭔가 우수수 쓸쓸한 바람 소리 같더니,
갑자기 내달리고 뛰어오르고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하더니,
난데없이 한밤중에 파도가 치는듯,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하고,
물건에 부닥치자 쟁강쟁강 쇠조각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적진으로 내달리는 군대가 재갈을 입에 물어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행군하는 소리만 들리는 듯도 하구나.
구양수는 동자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나가서 알아보아라.”
“별빛과 달빛이 환히 비치구요. 하늘에는 은하수가 걸려 있어요.
사방에 사람 소리는 도무지 없구요. 숲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요.”
“슬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니라.” <구양수, 추성부>
<김홍도, 추성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