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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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엔, 내가 있다.
내 몸속엔 나 뿐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일까?
지금 여기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김선우의 사물들에 홀린 이후로, 그의 시집이 속속 나를 스쳐지나가는데,
김선우의 몸은,
아니, 그의 뇌는...
일반 인간의 몸에 비하여 수분이 많은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수분은 눈물이나 땀같은, 이런 실존적인 수분이 아니라,
하늘에 뜬 두 개의 달과 교감하는 감수성,
1Q84에나 나올 법한 상상 속에서 몸을 뒤트는 한 마리의 암컷이 되어,
온 몸과 온 정신을 다 모아서 대뇌 피질의 수분 사이를 튀어다니는 잘디 잔 그녀의 전류들이여! 

이 땅에서 어미가 되고, 여자가 되는 일은,
즐겁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던 바,
그가 온 몸으로 느끼고 밀어올린 언어의 語族들은 찬란하지만 아직 미끈거리는 양수가 가득 묻은,
물기라고도 아니할 수 없지만, 또 물기라고도 하기 힘든. 그런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여,
그대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는가?
그대가 꽃피는 오늘이, 나에겐 왜 이다지도 큰 떨림인지, 몸이 아득하게 뜨거운지...
그대는 처음부터 나였다는 듯이...
아, 러브레터도 이런 것이 없다. ^^
이 시는 생명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고

귀가 하나 둘 넷 여덟
나는 심지어 백 개도 넘는 귀를 가진 돌도 보았네
귀가 많은데 손이 없다는 게 허물 될 것 없지만
길 위에서 귀 가릴 손이 없으면 어쩌나
나도 손을 버리고 손 없는 돌을 혀로 만지네
이 돌은 짜고 이 돌은 시네
달고 맵고 쓴 돌 칼칼한 돌 우는 돌
단 듯한데 실은 짜거나
쓴 듯한데 실은 시거나
혀끝을 골고루 대어보아야
돌이 자기 손을 어떻게 자기 몸속에 넣었는지
알 수 있네 무미무취라니!
무취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귀가 많으니 돌이야말로 맛의 궁전이지
당신이 가슴속에서 꺼내 보여준
막 쪼갠 수박처럼 핏물 흥건한 돌덩이
맵고 짜고 쓴데 귀 가릴 손이 없으니
내 입술로 귀를 덮네
입술 온통 붉은 물이 들어
어떻게 자기 귀를 몸속에 가두는지 보라 하네(돌에게는 귀가 많아, 전문)  

김선우의 사물들에 홀렸듯, 김선우의 관찰력과 그의 통찰력은 사물에 찐득하니 붙었을 때 제맛이 난다.

그렇게 오는 사랑 있네
첫눈에 반하는 불길 같은 거 말고
사귈까 어쩔까 그런 재재한 거 말고
보고지고 그립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대천 바다 물 밀리듯 솨아 솨아아아아
온몸의 물길이 못자국 하나 없이
둑방을 너머

진액 오른 황금빛 잎사귀를
마지막 물기 몰아 천지사방 물 밀어 가듯

몸이 물처럼
마음도 그렇게
너의 영혼인 내 몸도 그렇게(대천 바다 물 밀리듯 큰 물이야 거꾸로 타는 은행나무야 , 전문)

오블라디 오블라다,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되는 거예요... 언제나 진행중... 이런 말이란 것도 듣고,

무꾸라 했네 겨울밤 허리 길어 적막이 아니리로 울 넘어오면
무꾸 주까? 엄마나 할머니가 추임새처럼 무꾸를 말하였네
실팍하게 제대로 언 겨울 속살 맛이라면 그 후로도 동짓달 무
꾸 맛이 오래 제일이었네

학교에 다니면서 무꾸는 무우가 되었네 무우도 퍽 괜찮았네
무우-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 스미듯 배는 흰 빛
무우밭에 나가본 후 무우-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처럼
실한 몸통에서 능청하게 빠져나온 뿌리 한 마디 무우가 제격이
었네

무우라고 쓴 원고가 무가 되어 돌아왔네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
이라는데,

무우-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도 살만 한 거지
그래야 그 생것이 비 오는 날이면 우우우 스미는 빗물을 따라 잔
뿌리 떨며 몸이 쏠리기도 한 흰 메아리인 줄 짐작이나 하지

무우밭 고랑 따라 저마다 둥그마한 흰 소 등 타고 가는 절집 한
채씩이라도 그렇잖은가
칠흑 같은 흙 속에 뚜벅뚜벅 박힌 희디흰 무우寺,
이쯤 되어야 메아리도 제 몸통을 타고 오지 않겠나(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  

나도 '무우'가 '무'가 된 것을 슬퍼했던 1인인데, 김선우가 나랑 같아서 반갑다.

강원도 산골로 국어선생을 갔던 물방울 같은 처녀의 이야기네 흙마당 어여쁜 여자의 방에 푸른보라 몸빛이 동쪽바다 물속 같은 장수하늘소 한 마리 날아들었네 어디서 큰 시름 있었는지 창 아래 반뼘 그늘 밑에서 날개를 쉬었다 하네 여자가 설탕물 만들어 약지에 찍었고 푸른보라 물결이 여자의 손을 핥았네 이슬과 송진과 개암냄새를 핥았네 그늘 깊은 피안이 달 끝에 걸려 문풍지를 악기처럼 울릴 동안 여자의 몸에서 새어나온 물소리 푸른보라빛 안쪽을 적셨네 서른 낮과 서른 밤……그늘이 뼈가 되고 꽃이 거품이 되어……훌훌한 이슬의 손이 어느날 장수하늘소를 일으켰네

여자는 갑자기 겁이 났네 하늘소 깊은 밤바다빛 떠나면 영영 안 돌아올까봐 유리병 속으로 밀어넣었네 창호지 마개에 숨구멍 내주고 꿀물 축인 연한 잎새 가장 깊은 살을 베어 넣어주었지만

일몰 낭자한 어느 저물녘 유리병 속에서 푸른보랏빛 바다는 죽어 있었네 사지가 뻣뻣해진 수천 장의 물결이 여자의 안쪽을 때려……

눈물빛 종이옷 손 끝에 매달려 타오르다 자지러지네 요령소리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 어둠을 입고 나오네 안쪽을 적셔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천길 만길 밤물결이네 긴긴 순례 끝에 여승이 가만히 펼쳐 보여준 손 안에 쐐기처럼 장수하늘소座 박혀 있었네 손금에 파묻힌 유리병 속에서 잔물결 가득한 푸른보랏빛 성좌가 소름처럼 몸을 울고

지독한 폐소공포를 앓던 한 처녀의 이야기네 주먹을 꼭 그러쥐고 여승이 가만가만 목탁을 두드렸네 잘 살라지지 않는 무거운 종이옷을 입은 채 나는 손목을 잘라 자꾸만 닫히는 유리병 밖으로 던졌네 (폐소공포) 


70년 개띠여자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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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7-0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이리 시가 어려울까요.
몸이 물처럼....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글샘님이랑 동갑이라 이거죠?

글샘 2010-07-08 22:17   좋아요 0 | URL
저같이 훌륭한 국어샘을 못만나서 그렇죠.
세실님이 제 수업을 들으셨다면 시가 그리워서 온몸을 뒤트실지도...(이상한 멘트 아님 ㅠㅜ)
저는 세실님보다 2년 오빤데요. ^^ 아직 생신이 안 지나셨으니 4년 오빠로...
ㅋㅋ 제가 70년 개때 여자들이랑 좀 친한 편이랍니다. ^^
제가 오늘 술만 깨면... 휴~~ 음주 모드... 저 시를 님의 블록에 풀어 드릴게요.

비로그인 2010-07-09 00:40   좋아요 0 | URL
개띠도 아니고 개때 여자~
푸히히히~~
나 개때 여자야!

저 위에 맞춤법에 관한 페이퍼까지 올려놓고....
글샘님 완전 귀엽당!

세실 2010-07-09 08:41   좋아요 0 | URL
으헛...반갑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시 특강 해주시는거죠?
일주일에 한 편? 아 좋다~~~~
어머 글샘님을 왜 70년 개띠로 알았을까요? (오래전부터였는데...왜 그랬지?)
알라딘엔 저보다 어린 남자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일한 마태님이 저보다 한 살 위일껄요)
오빠도 계셨네요. 앞으로 깍듯이 모실께요. (어떻게? ㅎㅎ)


글샘 2010-07-09 10:55   좋아요 0 | URL
완전 귀엽당! 한나라당보다 훨 낫네요.
세실님... 깍듯이 어떻게 모실지... 먼저 얘기해 보셈.
오래 전부터 저를 개띠로... ㅠㅜ 그럼 개띠할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