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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젠씨, 하차하다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똑떨어지지 않은 사람, 옌젠씨는 우체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는 대학때 알바로 들어온 일자리를 그냥 꿰차고 있다가 실직하고 마는데,
여자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결말을 짓지 못하고,
복지 국가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표류한다.
결국 옌젠씨는 하차를 선언하고, 자기 문패를 떼어버리고 만다.
옌젠이란 딱딱한 이름,
그리고 우체국의 단순한 아르바이트라는 반복 작업.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쉽게 해직당하는 일상.
친구도 여자친구도 주변에 없는 외로움.
텔레비전과 비디오 등의 가상 현실 속에서만 외로움을 달래 보지만, 역시 그것도 꽝!
직업소개소에서 다시 소개해주는 직업들에서도 겉도는 인생.
문패를 떼어버리는 행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도려내버리는 포기의 선언이 아닐까.
옌젠은 하차할거야. 다시는 승차하지 않아!
남쪽으로 튀어!에서 아버지는 국민을 포기하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고 외친다.
현대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들을 점점 메마르게 만드는 쪽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세계화>는 온 세계의 시민을 공평하게 노예로 만들려고 하고,
<자율화>는 온 세계의 시민들이 동등하게 자율적으로 무한 경쟁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하고,
<국제화>는 국가간의 차이를 뛰어 넘어, 가진자들은 점점 단단한 성 안에 모여 살고, 성 밖의 세상에서는 슈렉이 살든 늑대가 살든 정글화로 치닫게 된다.
<소외>가 지배하는 인간 사회는
선진국으로 불리든, 후진국으로 불리든, 인간이 누리던 평화로움과 인간간의 정감을 앗아가 버렸다.
aus라는 전치사가 보여주는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느낌은, 빈익빈의 느낌을 더욱 맥빠지게 만드는 역할을 강조한다.
나는 옌젠이 아니야.
나는 아직 안전해.
내 자식은 공부도 잘 하고, 남들을 짓밟고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외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하차하고 있는 옌젠씨의 실루엣이 자신에게, 또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엄습하고 있음을 몸서리치게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재미 없지만, 삶의 고단함을 재미없게 전달해주는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의미를 찾고자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원문을 볼 수 없는 나로선 좋게 생각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