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년 전에 나온 이 책이 나를 이끈 것은 책 제목도, 주제도 아닌... 저자의 이름 석 자였다. 

서경식의 글에서 묻어나는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왠지 모를 저릿한 통쾌함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저, 너무도 삶이 힘들어 일본 또는 유럽의 미술관들을 돌면서 만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인데, 그의 그림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공포를 이기는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이렇게 공포에 젖은 눈으로 더 두려운 21세기를 바라보는 독자를 다독거리는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듯하다. 

벤 샨의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29)은 항의 운동의 성화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민자로서 무정부주의자였기때문에 <제화공장 회계 담당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 6천 달러가 강탈당한> 사건에 대하여 '병역 기피는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느냐'는 등의 재판 끝에 1927년 처형을 당한다. 

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국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어떤 나라가 떠오른다.
정당에 가입하지도 않고서 후원금을 냈다는 '죄'를 저질렀는데,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성큼성큼 <해직>을 거론하는 어떤 나라 말이다. 후원금을 2만원 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많이 내 봤자 몇십 만원인데, 그걸로 교단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업인에게 <해직>이라는 사형선고를 마구 남발하는 이런 것이 국가라면, 정말 국민을 포기하고 싶다. 죄에 따른 '벌'은 법정에서 판결이 나고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도 될 노릇이거늘, 일단 직위해제부터 시켜 두고, 빨리 파면, 또는 해임을 시키겠다는 것은 교사를 국가의 시녀로 전락시키겠다는 폭력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주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더럽다. 사는 일이 더럽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를 보면서, 알라딘에서 이 그림을 쓰시는 분이 생각나 빙긋 웃었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도 보인다.




루오가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 말하지 말아 달라.
나를 혁명이나 반항의 횃불처럼 그렇게 중요시하지 말아 달라.
내가 한 일은 하찮으니까. 그것은 밤의 절규, 낙오자의 오열, 목멘 웃음이다.
세상에서는 날마다 나보다 가치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일 때문에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46)

멋지다. 

죠지 그로스의 '매장식 - 오스카르 파니짜에게 바친다'를 보고 있자니,
온통 가식과 거짓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현대가 비친다.
서울 광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페스티벌은 환장하게 현란하기 그지없는데,
오로지 소비로 가는 길, 처먹고 퍼마시는 길로는 광장이 열려있지만, 
비판으로 가는 길에는 완전 '좁은 문'이 설치되어 있어 광장은 꽉 막히고 만다.
주구장창 부어라 마시자... 하는 환락의 도시에 곧 퍼부어질 '월드컵 응원의 세례'는 다시 소비로 가는 일방 통행로가 되어 광장에 붉은 대열을 퍼뜨릴 것이다.  

그림은 곧 작가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것이고,
그림 속에 담긴 세계는 곧 작가와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인 것이다.
그림 속의 세계와 화가가 별천지에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아도,
우리가 사는 부조리한 세계가 그림 안에 오롯이 담겨 있어 그림읽는 일은 슬프고 가슴 아린 일이다.
특히 서경식처럼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애린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무섭지?
그렇지만, 너보다 더 세상이 무서웠던 사람들도 많단다.
그리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야.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되어있거든...

아~~~멋있다!

글샘님 때문에 맨날 지름신이랑 싸워서 지고나면...
멋지게 들어차는 책장은 배불러 좋지만...
주인의 머릿속도 배불러야 되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