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몇 번 읽으려다 말곤 했더랬다.
이 책에서 나를 밀어낸 가장 큰 척력은 김현의 온건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종교이던 시절에 그는 가르쳤고 나는 배웠다.
그 당시 교수들을 '꼰대'로 보던 나에게 그의 글들은 시답잖은 헛짓들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러다 김현은 1990년 내가 군대를 때우고 있던 시절, 48세로 작고하고 만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비평가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글들을 관심가지고 읽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지금 그의 글을 밑줄그어가면서 곰곰 읽으면서 한숨짓고, 눈물짓고, 괜스레 하늘 한 자락 쳐다보는 일은,
우선은 그가 적은 그 시대에
교수로서 그가 느꼈던 그것들을
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던 학생으로 보고 느꼈던 것들과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뜨거운 기억들로 낙인처럼 남아있는 그것들이 합치하는 지점이 너무도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그가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동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나누던 것들은,
그가 살아서 만났던 독일의 통일과 그가 죽고 나서 보였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새로운 시대를 태어나게 해서 지금 더욱 희한한 삶들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옳은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는지...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그의 글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문예 비평'이다.
신랄하기 짝이 없다. 김지하도, 서정주도, 심지어 '피바다'까지도 그의 눈앞에서는 초등학생처럼 눈깔고 앉았다.
아, 김현이 블로그질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로쟈를 저리 가라하는 블로거가 되지 않았으려나... 

그는 늘 온건한 편에서 생각하지만, 그는 더러운 삶을 살려는 오염은 전연 되지 않은 학자다.
그의 주변에 얼른거리는 학자들은 역시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대한 걱정은 역시 한 마음이다.
그렇게 대학 강단에서 조용히 공부만 가르치기에 시대가 너무도 가혹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광주 세대고, 그들이 가르쳤던 제자들이 바로 광주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본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은 민주화된 듯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그는 보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읽고 있지만, 그는 세상을 뚫어 보고 있다.
그는 격하게 논하지 않지만, 고요한 시선으로 확실한 비판을 제시하기도 한다.
날카롭지만... 그는 칼날을 겨누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큰 목소리로 옳다고 말하고 금세 변절해 버리고는 잘난 체 하는 놈들보다는 고요히 제자리에서 두 눈 부릅뜨고 있는 학자들이 훨씬 낫다. 

그의 글들이 이미 없어져버렸다는 것에 몹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의 글들을 보면... 정말 그의 책읽기는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읽어야 할 책은 지나치게 많고, 시간은 부족한 비평가의 책읽기>를 그는 즐거운 책읽기로 만들었다.
천상 학자다.  
 그의 일기 중, 두고두고 보고픈 부분들을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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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318

박몽구의 ‘십자가의 꿈’은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와 짝을 이루는 시집이다.
그의 시가 주는 충격은 거의 대부분 사실을 그대로 연역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불행하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권력/ 진실의 대립을 보여주는 시들은 더 깊고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하고, 묵비권․고문․배신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과연 그곳에는 그렇게 의로운 사람들만 있었는가?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에 진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떠나... 답답하고 답답하다.

860319

최루탄이 계속 나를 미치게 만든다. 따끔거리며 둔통이 계속되는 목, 흐르는 콧물, 막혔다 터졌다 하는 코, 따갑고 뜨거운 눈,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는 피부...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다.

860214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자리매김이란 관계 맺기, 관계 지우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번 자리가 맺어지면 변경하기가 힘들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아니다.

860409

정진규의 ‘뼈에 대하여’는 노장, 선(禪)의 연습인데, 충격이 없다. 비우기-베끼기, 받아쓰기의 마음 맡기기 연습도 적절치 않고, 교과서의 세련된 연습문제 답안지 같다.

860419

미국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국익이다. 그것이 세계주의의 가면을 쓸 때, 지식인들은 멋모르고 춤춘다.

860427

에코의 장미의 이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극론을 남몰래 보관하려는 수사의 광적 노력을 토포스(논거를 발견하기 위한 장소, 후속 텍스트들의 창작을 위한 원천으로서 자주 사용되는 한 텍스트에서의 관습화된 표현이나 구절)만을 이용하여 비판하고 있는 소설... 대중 문학은 이미 있는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860817

박재삼의 찬란한 미지수... 삶이 아름다울수록, 죽음의 원통함은 더 절실하다. 그 원통함이 영랑의 섬세함, 미당의 게으름과 다른 점이다.

861024

홍정선 비평의 특징은 사회가 지리멸렬할 때는 그 사회와 맞서 싸우는 문학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데 있으나, 그 싸움이 논리성을 잃고 감정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있다.

861102  

정과리의 ‘존재의 변증법 2’,는 ... 그가 해체하는 것은 작품이며 그가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문맥

861203

한국 사회는 소외/물신화/기능화 등의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드러난 구조로 갖고 있으며(나는 나 아닌 것이다), 분단/군사독재 등의 후진적 경제,정치적 특성을 숨은 구조로 갖고 있다.(나는 나 아닌 것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 아닌 것이어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870217 

바르트의 ‘삽화들’에서... 유년 시절은 우리가 한 나라를 가장 잘 알게 되는 왕도이다. 마음 깊숙이에는 유년 시절의 나라만이 있다.

870320

기초적 폭력은 복수를 낳고 그것은 또 폭력을 낳는다. 그 악순환은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리며 그 상태는 문화의 종말을 부른다는 지라르의 추론은 끔찍하다. 광주 이후, 비합법적인 것과 합법적인 것 사이의 실제적인 차이가 자꾸만 없어져간다. 피고가 재판관을 꾸짖고, 재판관은 피고를 훈계한다. 서로가 서로르 훈계한다. 끔찍한 일이다.

870420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읽다가... 욕망이 부재의 현존이라는 것의 예를 코제브는 목마름으로 들고 있다. 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물의 부재라는 것. 욕망은 공이며 무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생각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한다고 믿고 있었을 때, 내 육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저항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져 이제는 내가 추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내 사유의 주체는 내 육체이다. 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내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사유의 보지자이다. 

870526

‘애린’은 마음의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시적 번안이다.

870701

지식인의 병폐중 하나는, 모든 역사적 사실을 자질구레한 사실들의 모음으로 변형시켜 그 의미를 희석시키는 데 있다. 예를들어 민주화만 하더라도, 누구는 뭐라더라, 뭐는 뭐라더라라는 식이고 그것이 더 악화되면 거짓 우스갯소리로 진전해나간다. 그것은 우리가 진지하고 성숙하게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숙고하는 버릇을 갖고 있지 못함을 입증하며, 그만큼 우리가 억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억압은 바로 사실을 사실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지칭한다.

871211

임동확의 ‘매장 시편’은 괜찮은 시집... 광주사태를 다룬 것으로는 압권이다. 죽음의 기억은 전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이다.

880125

미국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영어의 다양성, 그 다양성의 긍정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 영어를 안 쓰는 유일한 방법은 파리 사람들이 생각하듯 불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하는 것... 르몽드(080113)

880203

최인훈 씨와의 이야기 중, “광주 세대 다음엔 뭐가 올까요?”
“6.29 세대가 생겨날까요? 서구나 일본처럼, 감각적이고 충동적이고, 정치엔 무관심한 세대”
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래서 ‘상실의 시대’란 멜랑꼴리한 충동을 타고 건너왔던 것일까? 

880220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그르니에의 에세를  읽다가 다시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을 왜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까. 깊이도 고통도 없는 글들을.

880224

짧은 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80년대를 특징지은 낭만주의적 감정 토로가 이제는 끝나가는 것이 아닌가... 김용택의 흉년, 이성복의 편지, 정호승의 꽃으로 태어나서, 권혁진의 진주...

880312

황지우의 ‘새들은...’ 연극을 보고...

운동권 문화가 한국 문화에 끼친 두 가지 영향 : 하나는 금기를 깨나가는 것이 문화 활동이라는 것, 또 하나는 배부르게 사는 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이동렬과의 대화...

880318

똑같은 현상의 아주 다른 표현들 : 여당내의 진통, 난산은 미묘한 역학 관계로 표현되고, 야당내의 싸움은 분열, 흉작, 상호 비방... 등으로 표현된다. 하나는 없는 싸움으로, 또 하나는 과열된 싸움으로 이해된다. 오, 말의 양날이여!

880506

김초혜의 ‘어머니’는 판매용이고, 김춘수의 ‘라틴 점묘 기타’는 그의 손솜씨의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역겹다. 너무 잘난 척하고 있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언제나 그가 옳다. 한번쯤 틀릴 수 있다.

880514

현길언의 ‘우리 시대의 열전’... 사람들은 그 나름으로 운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한스럽게도 그것을 이기려 애쓰며 살아가는 것... 한이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해야 한풀이가 잘 되고... 큰 심방일수록, 굿을 잘 하는 심방일수록 더 크고 풀 수 없는 한을 갖고 있어야...

880618

광기란 어떤 사건의 결과이어야 소설적으로 의미가 깊게 드러나지 어떤 것의 발단이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880802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880909

패한자의 기록은 증오를 낳지 않는다. 그것은 패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낳는다. 패한 사람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패한 사람도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증오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

881030

안수환의 ‘검불꽃 길을 붙들고’... 시의 수준은 고르고, 빈틈이 별로 없으나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 빈틈이 없으니, 의외의 것이 끼어들 자리가 적다.

881104

박정만의 시...쓰기는 시-쓰기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 확인하기 이다. 시-쓰기는 죽음의 연장이다. 이야기가 그러하듯, 시도 죽음을 생존의 원 박으로 밀어내려는 힘든 노력이다. 그의 시에 씌어진 표현을 빌면, 내용이야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시를 쓰는 순간에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이 끝날 때, 내 시도 끝난다. 이 꽃잎이 지고 나도 세상은 계속되겠지만, 그 따위 세상 난 모른다! 오마르 카이얏은 술로 도망갔지만, 그는 술로도 도망갈 수 없다. 그는 죽음과 맞서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과 이별할 수밖에 없는 슬픔(죽음의 맛은 없다. 그것을 쓰다고 하는 놈들은 다 개새끼들이다. 그들은 한번도 안 죽어본 놈들이다. 무섭도록 겁이 나면, 입술이 마르고, 아무 것도 없다. 입술이 쓰디쓸 때는 이미 정신이 돈 뒤이다.)

881124

85년 쓴 단상 : 죽는다는 것은 사회적 관련하에서 죽는다는 뜻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 그 가장 극단적인 예가 로빈슨이겠지만 - 죽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 없어질 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남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으나 육체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다는 듯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다시말해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그는 사라진다. 어디로? 무 속으로. 무마저도 없는 무 속으로...(850706)

890106

민중의 바다는 잘 만들어진 삼류 소설이다. 꽉 자여진 구성은 어머니의 혁명적 각성을 향해 응집력 있게 진행되어나간다. 그러나 일제하의 한국의 모습보다는 추체험된 혁명의 구도만이 크게 전면에 부각된다... 그 혁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보일는지 모르겠으나, 작위적이고 관념적이다. 모든 인물은 다같이 선량하고 혁명의 대열에 몸바친다. 왜놈들과 그들에게 봉사하는 한두 사람의 적들을 제외하고는.

890112

김선학의 ‘현실과 언어의 그늘’도 꼼꼼히 읽어보면, 별로 틀린소리같지 않은데 지루하다. 모범답안 같은 비평을 보는 지루함이다. 

890204

박경리의 토지 4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지나치게 급격하다 싶었지만 참고 1권을 읽고 2권을 읽고 있는데, 아는 사건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작가가 돌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혹시나 하고 다시 보니, 내가 읽은 것이 1권이 아니라 3권이었고 손에 쥔 것이 2권이었다. 이왕지사 하고 계속 거꾸로 읽었는데, 특이한 독서체험이고,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890309

비평가의 가장 큰 고민은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거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급해지거나 게을러진다. 둘 다 좋지 않은 태도이다.

890312

김치수의 지적 :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890520

안도현의 모닥불은 재미없다. 체험의 폭도 좁고(평교사의 지루한 체험), 사유의 깊이도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 서태석의 ‘옥산 아줌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서른여덟, 아홉 고생한 사람쯤 봤는데

마흔 여덟의 펑퍼짐.

890524

모음이 많은 이탈리아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받침이 많아 노래가 발달하지 못했어요.

김원우의 ‘아득한 나날’. 기자의 해직- 고생 - 복직의 과정이 지루하리만큼 자세히 묘사. 해직되면 무조건 민주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이 소설은 견디기 힘든 폭력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이것이 더 구체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인공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잠복기가 긴 속병같은 것으로 치부하는데 바로 거기에서 그러한 속병앓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나보다. 나도 소시민이기때문인가. 하기야 자기는 결단코 소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시민들이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지금 나는 살고 있는지.

890723

김치수가 등산 중 : 노점상 단속은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동결하는 한 방법이다. 노점상의 한 달 벌이는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할 인력의 상당수가 노점상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니 단속을 안 할 수 없다. 그 말은 푸코의 말을 상기시킨다. 광인 감호는 노동 인력 확보의 한 수단이었다. 노점상 단속은 노동자, 농민들에게 유동 인력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덥고 짜증나는 날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더우니까 산에 오는 사람들이 훨씬 준 것 같다. 어디에나 명암은 있다.

노점상 단속으로 분신자살하던 여름에 쓴 글이다.

891106

고은은 계속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나 작품들이 다 고르지는 않다. 새로 연재하는 ‘거리의 노래’는 대부분 좋지 않다.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무반성적이다. 많이 쓰면 그러나 재미있는 구절은 한둘 있게 마련이다. ‘상계동 가는 길’의 “전위, 그것은 항상 변두리에 있다.”는 재미있다. 떠돌이들만이 그 말의 진짜 뜻을 안다.

891212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배 세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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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김현 님이 블로그를 운영하신다면...
고런 상상을 했더랬는데...^^

글샘 2010-05-12 11:40   좋아요 0 | URL
그쵸. 최고의 블로거... 멋질텐데요...

비로그인 2010-05-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전체에 대한 통찰>과 함께 책이 해지도록 읽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술 때문에 상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친구인 김치수 선생과 산에 다닌 얘기며,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뒤의 권부터 읽고는 죽었던 인물이 살아나자 "이 작가가 미쳤나?" 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네요. 그가 팔봉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했다는 말 중 "따뜻한 상징"이란 표현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요. 저도 글샘님과 동감입니다. 아마 시대를 달리해서 살았다면 이 나라 최고의 블로거가 되었을 겁니다^^

글샘 2010-05-12 11:40   좋아요 0 | URL
결국 술때문에 가신 거죠. ㅠㅜ
조정래가 아니고, 박경리의 '토지'였습니다. 3권 읽고 2권 읽었다는... ^^
20년 전에 이미 블로그질을 하신 고 김현 선생께 한 잔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