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지음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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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으면서 공자와 맹자가 중심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근대를 거치면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까지 폄하되었던 것인데, 최근 '실용 失用' 정부(쓸모를 잃은 정부) 이후로 다시 논어 열풍이 일어났다.
그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논어가 일종의 <규범>을 중시하는 텍스트였으므로, <규범>이 상실된 시대의 텍스트로 논어 읽기 만큼 적절한 것은 없다는 것이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논어를 '규범'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학습이 깊지 않은 나 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논어의 독법이 시대를 읽는 데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책은 논어를 풀이하고, 다양한 논어 연구 성과를 끌어들이며, 좀 잡다하고 어수선한 논어를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풀이가 얼마나 정석에 따르는 것인지를 내가 평가할 순 없고,
다만, 각 구절을 '상황', '걸림돌', '디딤돌'을 놓아 줌으로써, 어떤 상황과 유사한 것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풀이가 어떻게 되고있는지 걸림돌을 제거해 주기도 하며, 디딤돌에서 생각을 덧붙이기도 한다.
특히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자 할 때는 '깊이 읽기'를 통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을 돕기도 한다. 

어떤 논어는 집주에 과도한 역량을 투여하고, 또 어떤 논어는 설명이 과도하기도 한데,
이 책은 일단 글씨가 큼직하여 노안이라도 쉬이 읽을 수 있겠고(논어를 읽는 나이드신 분들께 좋을 듯)
다양한 풀이 방식이 책을 지겹게 하지 않아 좋다.
다만, 좀 두꺼운 것은 논어의 텍스트 자체가 분량이 많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섬에 한 번 가 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안도현, 섬 부분)
 

이렇게 존재의 위기에 닥쳐볼 때, 논어를 펼치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판본의 논어를 읽노라면, 그때그때 눈에 밟히는 구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
그 우직한 자의 걸음을 '군자의 모습'이라고 논한 구절은 아름답다.
윤동주의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가 딱 어울리는 구절이다. 

경제적 성공이란 걸, 만약 추구하는 것이 옳다면 시장에서 채찍잡는 문지기라도 나는 꼭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추구해서 안 된다면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리라.(275)
역시 군자의 길은 우직한 길이다. 얇지 않고, 약삭빠르지 않다. 이것이 위기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군자란 '자율적 인간'으로 풀고 있는데, 물론 시대마다 다르게 풀이되어야 한다.
군자는 주위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키워서 이루게 해주고, 나쁜점을 부추기지 않고, 소인은 반대로 한다.
'사람이 길을 넓혀 가지, 길이 사람을 넓힐 수 없다.' 

결국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 그것이 자율적 인간이다. 얄팍하게 시기하고, 질투하면 소인이다.
온고지신하면서 자기 길을 찾고 가는 것. 그것이 군자란 것.
자율적 인간은 넓고 거침이 없어 늘 여유가 있고, 소인은 뭘 그리 걱정거리가 많은지 늘 우거지상.(311)
극기복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억지로 이기는 극기가 아니라,
극기란 내가 나를 넓혀서 주위 사람들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문화를 통해 나와 주위 세계 사이의 소통의 힘을 넓히는 지속적 학습으로 설명한다.(455)
곧 관계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옳은 일을 뚜벅뚜벅 걸어가며 하는 것이 군자의 일이고, 예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흔히 듣는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를
'슬기로운 이는 흘러가는 물을 좋아하고, 평화에 힘쓰는 이는 듬직하면서 만물을 길러내는 산을 좋아한다.
슬기로운 이는 오고 가느라 동적이며, 평화에 힘쓰는 이는 중심이므로 정적이다.
슬기로운 이는 즐거움을 누리고, 평화에 힘쓰는 이는 장수를 누린다.' 이렇게 푼다.
지자와 인자에 비해, 슬기로운 이, 평화에 힘쓰는 이... 이렇게 풀어 두니 참 좋다.(251) 이게 현대어 해석의 장점을 잘 살린 것 아닐까 싶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괴,력,난,신'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괴상한 것, 힘깨나 쓰는 것, 정신없는 것, 귀신같은 것... 한결같이 케이블 텔레비전이 추구하는 바이다.
스타킹을 뽑고, K1을 하고, 끝없이 수다떨고, 귀신얘기 만들고... 온갖 범죄가 화면을 메운다.
괴,력,난,신이 세상을 망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다시 논어인가. 그리고 신정근은 왜 '유쾌한'을 붙여 '논'하고 '말'하는가.
시대가 하수상하니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데, 옛사람들이 흔히 기대었듯,
제대로 된 정치가라면 이렇게 하라는 규범의 하나로 논어를 꼽기 때문일 것이다.
아, 앞으로도 논어 열풍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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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책에 군침흘리게 만드십니다~~~^^

글샘 2010-04-29 15:05   좋아요 0 | URL
저때문에 집에 책만 수북하게 사 두신 분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