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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ㅣ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김이설의 이야기는 '결핍'으로 시작되는 모든 이미지들을 망라한다.
결핍이란 추상명사를 '나쁜 피'라는 구체명사로 변이시키고,
나쁜 피를 물려받게 되어 결핍의 결과 드러나는, 무지와 가난과 폭력과 아동학대와 정신적 고통과 혼란...
이런 상황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비로소 형상화된다.
여느 소설가들이라면 사회의 밝은 면을 지향하거나, 비꼬인 면을 드러내겠지만,
김이설의 소설들은 어두운 면에서 어둡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음습한 곰팡이같은 인생들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들려준다. 누구도 꿈꾸지 않았던 소설이고, 영원히 꿈꾸기 싫은 소설이리라.
그저 먹고 사는 데 별 탈이 없으면 하는 바람,
그게 현실적으로 안 된다는 걸 절감할 때마다 적당히 좌절하고,
또한 적당히 세월을 한탄하며 술로 잊어버리는 사람들.(109)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주 풋내만 묻어 있어도 슬플 것 같지만, 실상 그 이야기들은 늘 듣는 이야기다.
그 고만고만한 일이 나에게는 힘들게 애쓴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누구에게는 치열하게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들.(119)
그래서 김이설이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좌절에는 '희망'이라고는 터럭 끝만큼도 없다.
그게 바라본 세상 돌아가는 원리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원리 하나다.
따지면 나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없고, 상처 없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있을 뿐.(108)
세상만 더러운 것이 아니다. 세상이 더럽다 보니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사연들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인 삶이란 것도 팍팍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역사를 이렇게 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지만,
시간은 그 주인에 따라 각각의 몫으로 소멸되었을 것.(122)
나쁜 피를 물려받은 이들의 마음 속에는 슬픔보다 증오가 더 많이 자리잡고 있을는지 모른다.
내가 국가의 녹을 받고 하는 일도 바로 그 증오를 순치시켜 무위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증오란 자기가 미워하고 싶은 상대를 정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왜곡된 기억과 감정을 모조리 퍼붓는 소모전과 같은 것.(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