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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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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에필로그가 인상적이다.
'도그빌'이라는 영화와 여수 출입국 사무소 화재 사건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가슴아프게 읽었다.

도그빌이란 영화를 봤을 때, 천재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답답함이 화면에서 가득 느껴지는 영화.
개같은 마을의 개같은 인간들. 이어지는 착취와 인간적 모멸감...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시간성>임을 이진경은 천착하고 있고 그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궤적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단편들은 <시간성>이 상이하면 상이한 '공간성'을 이룬다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화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옴니버스식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한편 한편이 재미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여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핍박받는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이진경은 한국과 동남아의 '시간적 거리'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 시간적 거리는 <근대> <민족> <국가> <역사>등의 용어가 사용될 때 항상 은밀히 끼어든다. 

그렇지만 그 은밀함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편파적이어서,
이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저쪽 시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폭력적이다.
일본의 근대가 그들에게는 문명을 주었지만, 조선에게는 절망을 선사한 것과 같이... 

어떤 점의 미분 계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점을 둘러싼 이웃 관계, 그 점을 포함한 채 구부러지는 선의 양상(37) 

이런 글맛이 이진경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미분 계수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명쾌한 설명도 없을 수 있지만, 미분 계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고사성어도 아닌 그런 용어들이 주는 절망감이 글에서 배어나는 것은 그의 글이 가진 단점이 된다. 

'시간'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서로 다른 리듬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 간에 거리감과 동경과 무시와 멸시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공간'이다. 

'아마존의 눈물'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 나오는 이들은 벌거벗고 살면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들은 턱에 특이한 기구를 매달기도 하고 고추에 나뭇잎을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랑시에르(76)의 '치안'을 들고나오기도 하는데, 말할 수 없는 자로 하여금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이런 것을 그는 '치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의 공간은 틈새를 노리고 치안의 부조리를 <말한다>. 그리고 <말해야 정치>가 된다. 한국 사회의 2010년은 과연 말할 수 있는 공간인가? 정치가 부재한, '동혁이 형(개그콘서트의 등장인물)'의 <샤우팅>이 가능한 공간일까? 어느 날부터 동혁이 형이 편집당하는 그런 사회는 아닌 것인가? 

외부자, 소수자, 그들과 내부자, 다수자들의 시간적 리듬의 차이가 엮어내는 공간적 비틀림은 80년대 그 뜨거웠던 논쟁을 불러왔던 <사회구성체론>의 NL, PD, ND 논쟁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이고,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던 청년 이진경은 이제 시야를 넓혀 다시 <무엇인가를 하려면>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엮인 글들은 그의 고민들이 흘러간 궤적을 마치 셔터를 열어둔 카메라의 필름에 각인된 불빛의 흐름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아무래도 산만한 느낌...  

<민족> <역사> <진보> 등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의식을 점령하며 분할하는지, 어떻게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게 되는지 그 은밀한 비밀을 공부하고 싶은 이라면 추천할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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