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글쟁이들 - 조선의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문효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글쟁이라고 하면, 문인이라고 한문으로 쓰는 데 비해 저속해 보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프로 정신이 담긴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조선에서 찾아낸 치열한 글쟁이들이 열 네명 소개되고 있다.
주로 내가 언어영역 가르치면서 많이 다루는 작가들이라 더 흥미로웠는지 모르지만, 블로그다 뭐다 해서 자기 의견을 남기기 쉬운 오늘날 글을 쓸 때 참고로 할 만 하다. 물론 누구나 이렇게 써야할 것은 아니지만, 무릇 작가라고 뻐기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두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1부. 살아있는 글을 써라.에서는 박지원, 정약용, 유몽인, 신숙주가
2부. 시대를 아파하라.에서는 이달, 허균, 허난설헌의 사제지간이
3부.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라. 에서는 이이, 이황, 김시습이
4부. 진실을 담아라. 에서는 정철, 김만중, 이익, 강희맹이 다루어진다.
글쎄, 파트별 제목과 서술된 사람들간에, 1,2부는 긴밀한 연관성이 드러나지만, 3,4부는 글쎄다. 

박지원의 글쓰는 법.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병서를 알 것이다.
글자는 비유하자면 사졸이고, 뜻은 비유하자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고사라는 것은 전장이며, 성루다.
글자를 묶어서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행진과 같다.
운은 소리를 내고 수식으로 빛을 내는 것은 금고 정기와 같다.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대이다. 비유라는 것은 유기 遊騎이다.
억양 반복은 서둘러 싸워 시살하는 방법이다.
쓰기 시작하고 끝을 맺음은 먼저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머리가 흰 군졸은 잡지 않기 위함이다.
여음이 있는 것은 군대를 거느리고 개선하는 모습이다.(소당적치기, 25)
 

햐, 이 정도 비유라면, 누에고치에서 실이 술술 풀려나는 경지가 아닐까? 

학문이 귀한 것은 실용에 있으니, 부질없이 인간의 본성이니 운명이니 하고 떠들어대고 이과 기를 가지고 승강질하면서 제 고집만 부리는 것은 학문에 유해(27)하다는 평가는 '직지인심'의 경지다. 

정약용은 성리, 고증, 문장, 과거, 술수의 <학문>을 부정하는데,
나의 소망이 있다면 온 나라 안이 모두 양반이 되는 것이니, 곧 온 나라 안에 양반이 없어지는 것이다.(43)
아, 이런 아름다운 역설이라니... 마치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읽는 기분이다. 

유몽인은 '맹자, 장자, 사마천, 반고, 한유의 글을 두루 모은 다음 스스로 조화로움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는 평을 얻는다.(65)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또 그만큼 방황하였다는 증거겠다. 그의 글은 장자의 '차이' 속을 뒤집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아아, 덧없는 세상의 삶이 가련하구나.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가 거기서 죽는 초파리 무리를 장차 모두 쓸어 거두어도 한 움큼도 채우지 못 한다.
인간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데,
구구절절 자신만 내세우며 기쁘니 슬프니 야단법석이다.
어찌 크게 껄껄껄 웃을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내가 오늘 본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늘과 땅 역시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 봉우리는 하늘 아래 작은 사물에 불과하다.
이곳에 올라 높다고 떠벌이는 것이 어찌 거듭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유두류산록, 73) 

신숙주. 그는 거의 옛 전적을 인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소문에도 그 논지를 지킨다. 조선의 문인으로 자존감을 지키며 살았다.(89)고 평한다. 숙주나물처럼 금방 맛이 가는 지조없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글을 보면 딱히 그렇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99.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113. 성소복부고
122. 성소복부고
125. 성소부부고
130. 성소부부고
맨 앞의 것은 '이 달' 편에 있고, 나머지 넷은 '허 균'편에 실렸다.
학자에 따라 다르게 읽고 있기는 하나, 같은 논문 안에서도 앞의 둘은 복으로 읽고 뒤의 둘은 부로 읽었으니, 저자의 실수로는 제법 큰 것이다. 

이달의 시 중 가장 인상적인 시는 '불일안 인운'이다.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아./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 열어 보니,/ 골짜기의 송화가 이미 진 뒤더라.
여운이 남는 시로는 으뜸이다.
정민의 '한시 이야기'에 나오는 '제총요'도 유명하다.
임란으로 자식과 아비를 잃은 조손간. 아들의 무덤가에서 술 한 잔 한 것에 그만 취해 어린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촌로의 짠한 모습.  

허균은 옥하가옥 屋下架屋 이란 표현을 쓴다. 남의 집 아래 다시 제 집을 짓고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안다는 것.  

뒷날에 지금의 글을 봄이 어찌 지금 우리가 앞의 몇 분의 글을 봄과 같지 않겠는가.
좌씨는 절로 좌씨가 되고, 장자는 절로 장자가 되겨,
사마천과 반고는 절로 사마천과 반고가 되고,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은 또한 절로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이 되어,
서로 답십치 않고 각기 일가를 이루었다.
내가 원하는 바는 이것을 배우자는 것이다.
남의 집 아래에다 집을 덧 짓고서 도둑질해 끌어낸다는 나무람을 답습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119, 문설)

허난설헌. 그의 이름은 초희였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이름을 가진 경우는 드문 일이다.
5만원권에 실린 사임당신씨도 성만 전해지잖는가. 그렇게 사랑받던 허초희가 말했다는 세 가지 한.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아,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나려 했다. 해마다 그의 규원가를 애써 가르쳤지만, 이런 한을 품었다 생각하니 그가 마음 저리게 아프다. 복도 없이 아이도 먼저 죽어버려 '곡자'를 썼다.
눈물을 가릴 수 없다.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도다.' 

이이는 조선의 천재였다고 한다.
젊은이는 건강했을 때 몸이 손상되어도 혈기왕성하여 나타나지 않지만, 만년에 이르면 해로운 독이 몸이 쇠약해진 틈을 타 한꺼번에 나타나듯, 지금 상황이 이와 같으니 10년을 지나지 않아서 큰 재화와 변란이 닥칠 것(166)이라고 상소도 올리고, 임금을 가르치는 '성학집요'도 올리지만 도루묵이 되었다. 안타까운 노릇. 

잘나갔던 이이에 비해, 배움이 보잘것 없던 이황. 그는 완전 노력파의 대표주자다.
그가 앞세웠던 것은 '경'인데,
번거로움을 바로잡는 데에는 고요만한 것이 없고, 졸렬한 것을 바로 잡는 데에는 부지런만 한 것이 없다.는 말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경건함이 읽힌다.(193)
젊은 고봉과의 서신에서 이기론에 대한 4단7정논쟁이 치열했지만, 학문적인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록 서신이었기에 뜬구름잡는 식의 주장들이 오고 가서 명확한 정리를 남긴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성리학을 조선에서 집대성하려한 노력은 대단하였던 것 같다. 

마지막 챕터의 정철, 김만중, 이익, 강희맹은 앞서 치열했던 작가들에 비해 읽히기에 밍밍하다. 

이 책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게 속도감을 내어 <하룻밤에 읽는 조선의 문인들>처럼 두어 시간이면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이런 책이 많아져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0-01-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두어시간이면 돼요? 우아.
쓰신 서평을 보면 엄청 오랜 시간을~

글샘 2010-01-27 18:09   좋아요 0 | URL
저처럼 휘리릭 읽으면 두어 시간이면 읽습니다. ^^
아무래도 저는 국어가 전공이니 아는 체하고 대충 읽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