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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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서울, 하면 그 무게 중심이 광화문에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마치 서울이란 도시 위에서 한 판의 <풍수지리도>를 펼친 것 같고,
600년의 고도 서울은 무학 대사의 <설치 미술>인 듯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을, 식민지 시대, 조선의 혈맥을 끊기 위해
왕궁터를 허물고 거기 날 일자(日) 조선 총독부를 짓고,
근본본자(本) 시청을 지었다. 그래서 다시 북한산과 이어지는 맥으로하여 대,일,본을 서울 시내에 박아 놓으려 했던 것이렸다.
한강의 북쪽, 한수북을 풍수에서 <양>이라 일컬어 한양이라 했고,
거기서 십리 더 가라 해서 왕십리란 말도 났다 한다.
갈라진 봉우리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려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적었다고도 하는데,
그 숭례문은 불길한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에 후르르 타 내려앉아 버렸다.
서울의 광화문 앞자리는
국사 시간에 3국의 패권을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사람이 가진다고 했듯,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다.
박정희는 광화문에 자기 못생긴 글씨로 현판을 매달았고, 그 앞을 국화 상여에 둘려 죽어나왔으며,
노무현은 그곳이 징허고 징해 시골에 내려가 살려고 했으나 다시 그 앞을 국화 상여에 둘려 나오고 말았다.
그 징헌 터에 화안하게 켜졌던 촛불의 민심은 아랑곳 않고, 외국인들 와서 스노보드는 타도, 열댓 명 모여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만 내면 수천 명 전경이 둘러싸는 광장이 되어버렸다.
천하디 천한 대통령이 요즘 자꾸 '국격'이란 말을 들먹인댄다.
인격이 없는 국민에게 들이대는 '국격'이란 '국수주의'에 다름아니고, 독일어로 말하면 '나치즘'이 그것이다. 내셔널리즘.
국가가 주인인 곳에, 국민은 없다.
'공'적인 사업이 전멸한 곳에 '공인'도 없고, '공인'을 참칭한 자들의 '사익'만이 들뛸 뿐이다.
그런 가벼운 나라에 겨우 한 쪼가리 넝마처럼 남은 고장이 '북촌 한옥 마을'이다.
예전엔 당당하게 세도를 부리던 자들의 넓디 넓은 집들이 이제는 모두 쓸모를 잃어버리고 식당이나 가겟방으로 변해버렸거나, 숫제 돈치레에 둘려 무너져 내린다.
그래도, 아직 몇 집은 늘씬한 지붕 용마루와 새색시처럼 살풋 들어올린 처마마루가 남아있다.
아마도, 이 책이 찍어져 나오는 동안, 피맛골은 불도저의 불세례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전에 청진동 해장국집, 청진옥이 없어진단 말도 들리곤 했다.
전통이라곤 모르던 동네 인사동이 마치 전통을 대표하는 것처럼 돈을 벌고 앉은 품세를 보면,
이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 싶기도 하다.
작가의 발품이 일구어낸 이야기들은 반갑고 다사랍지만, 간혹 쓸쓸하고 자주 서럽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이 글자로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스노보드 눈썰매장 사이로,
이 나라의 <인격>들이 스물스물 얼음녹듯 사라져버릴 노릇이니,
두툼한 이런 책들의 이야기들이 추운 겨울날 난로가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들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듯 노변정담에 밤깊어가는 줄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