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다가... 전에 저장해두었던 영화를 보았다. 

책으로 읽을 때의 감동과는 또다른 두근거림을 영화에선 볼 수 있었고,
영화로는 읽을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었다. 

빈민가 아이들의 삶은 갱스터들의 삶과 중복되고, 부모들의 많은 수가 알콜 중독이거나, 경제적 파산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피부색은 주로 검은 색이었고, 그들의 관심사는 그날그날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나타는 백인 선생님의 의욕은 그들에게 가소롭게 보였지만,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과 진심이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나서는,
가장 골치아프던 학급의 학생들이 그 학교에서 준거집단이 되어버린다. 

폭력에 저항하는 마인드를 갖게 되고,
나치의 폭력과 갱단의 폭력을 관조할 수 있는 시선을 기르며,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공부하면서,
멀리서 자기들을 위해 증언하기 위해 달려와준 이들의 존재에 감동을 받아 삶의 길에 환한 가로등을 켜게 된다. 

학교에서는 물론 교사의 노력에 부합하는 격려를 제공하지 않는다.
경력도 없는 새파란 교사가 의욕 하나로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딪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봤자 곧 지쳐 떨어질 걸... 하고 기다렸겠지만,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교육의 질이 변화했음을 시인하기도 한다. 

자, 교사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억압의 틀을 제공하는 '제도권의 사신'일까,
아이들의 마음 속에 희망의 불꽃을 피워올리는 '천사'일까.
이도저도 아닌 밥벌이의 직업일 따름인가. 

교사들이 '초임때 가장 좋은 교육을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나놓고 보면, 발령받아 처음 10년간은 아이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 같다. 학급 문집도 만들고, 학급 잔치도 하고 했던 것 같다.
한 10년이 지나면서 온갖 일더미에 휩쓸려 다니면서는 아이들과 면대면의 활동보다는 서류상으로 교육활동을 하는 짓을 일삼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학교를 하거나 부서의 기획을 맡으면 온갖 공문 처리의 달인이 되고, 교무기획이라도 할 때면, 수업을 제쳐두고 공문서 처리에 눈썹을 휘날릴 때도 숱한 것이 내 삶이었다. 

생활지도부를 맡을 때는 아이들과 끝도없는 힘겨루기가 온몸을 녹초강산으로 만든다.
아이들의 잔잔한 비행과 위반에 휘슬을 불며 뛰어다니는 심판 노릇을 하다 보면, 이런 건 교칙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이 숱하게 많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들곤 한다. 

발령받은 지 20년 하고도 반이 지난 시점에서(이제 퇴직이 20년도 안 남았다.)
가르친다는 일은 무엇인지를 깊이 돌아보는 계기를 이 책은 주었다. 

아이들과 수업 내용으로 만나고 싶은 욕구를 언제나 충족시킬 수 있을 건지...
아니면 영원히 준비가 가득한 수업을 맛보지 못하고 끝나버릴 것인지... 

갈수록 '교육'적이지 못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학교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마음아프지만, 전교조가 인간화 교육으로 저항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더욱 질곡의 늪은 깊어만 가는 것 같다. 

부장으로서 상담 인턴 선생님이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주는 정도...
학생부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지나치도록 억압적이지 않게 생활지도하자고 선생님들과 의논하는 정도... 

아이들과 전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생각을 일깨우고 삶의 방향을 더듬어나갈 수 있는 교사가 되기를 이런 책을 만나는 것으로 만이라도 경험해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나의 한계가 아닐까... 하기도 하면서,
회의와 출장과 시험 감독, 가기 싫은 회식, 학교 평가 등으로 내 시간은 없는 오늘...
틈틈이 수업을 하는 나는... 과연 교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흐린 아침...
빗방울 허공에 가득해도,
제 그릇에 따라 물방울 담길 뿐.
아이들 학교에 가득하지만,
내 좁은 그릇에 모인 아이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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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2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음 들려 글을 남기게 되네요~

한때 노암 촘스키의 책과 함께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영화 "위험한 아이들", "코러스" 도 생각이 나는데요. 그 책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공교육제도라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보곤 했습니다.

그 물음끝에 미친 결론은 흔한 말인 "수업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 였는데요. 이 말은 꼭 "수업" 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


글샘 2009-09-28 11: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써클님...
교사의 질...을 이야기하면, 문제가 많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죠.
그렇지만... 교사의 질은, 결국 학교 행정의 질이 과도하게 높이 평가되기때문에 수업의 질이 뚝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원이 학교보다 나은 건, 교무연구학생정보부 같은 건 직원이 하구요. 수업에만 열중하도록 하는데, 인원도 훨 적고 평등원칙 같은 건 필요없지요.
학교에 바라는 건, 애들이랑 잘 놀고 수업 대충 따라 하고, 그런 거라야 하는데, 우리나라 학교엔 지나치게 공문도 많고, 할 일도 많아요. 투입은... 전무하면서 말입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