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산티아고 순례일기
전용성.황우섭 글.그림.사진 / 한길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여덟 명이 산티아고를 걸었다. 남자 일곱과 여자 하나.
별로 엮일 것 같지 않은 여덟 명을 끌어모아서 막무가내, 무작정 길을 나선다.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구절은...
마지막 페이지에 떠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중에서
겁먹지 말 것. 길 잃을 위험 전무함. 외국어 못해도 상관없음. 말 안 걸고 말 안 붙이면 됨. 필요한 말은 적어가면 됨.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고 갈 것. 기대가 클수록 의미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이 최고. 아무 것도 공부하지 말고 갈 것. 가면 다 알게 되고, 가면 다 적응하게 됨... 

나처럼 책만 읽고, 시간없음을 탓하는 사람은 가기 쉽지 않은 길이다. 

여덟 명 중에서 한 사람은 그림일기를 쓰면서 가고, 다른 사람은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간다.
그래서 어떤 글들은 같은 내용을 두 번 읽게 만든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글이다.
아니, 욕이 많이 나오고, "누가 이 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랬어? 닝기리..." 이래서 좋다. 

뭐, 제목에 '순례'라고 적은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지만...
여덟 명이나 떼로 몰려 갔으면서... 순례까지는...
유쾌상쾌통쾌 아저씨와 우울진지과묵 청년이 두 사람인데,
유쾌 아저씨도 힘들면 욕만 잔뜩 늘어 놓는다. 우울 청년은 부지런히 찍고 기록하고.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드넓은 수평축이 한없이 펼쳐져있다.
우리의 일상이 속한 곳은 수직축을 중심으로 위로만 뻗어나가려는 세상이 아닌가.(79)
이런 생각을... 불현듯 하게 만드는 곳. 그게 산티아고의 매력이다. 

지옥은 세상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인간을 둘러싼 그곳이 지옥인 것이다. 인간의 몸이 있는 그 곳.(78) 

불행은 아름답다. 사람들에게 현실을 깨우치게 하거든... (213) ㅎㅎ 힘겹게 걷는 일은 그래서 아름답다. 힘겨우니깐. 개같은 길, 산티아고... 이렇게 쓰면서, 아름답다니... 

371쪽. 그림에 있는 그 말을, 나도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난다. 아마 수사반장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술집 작부가 되어버린 여인을 구해낸 김형사에게 작부가 말한다. 처음에 젖으면 뛰고 피하려 하지만, 비에 흠뻑 젖으면 그 비를 피하지 않고 그냥 다 맞는다는 말... 나랑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읽으면, 신기하다.  

아, 난 쉰이 되기 전에...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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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고 책 표지 보니 넘 읽고 픈 책이네요

글샘 2009-07-15 09:56   좋아요 0 | URL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이 책보다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거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