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규항이 본격적으로 쓴 책으론 처음이란다.
하긴, 전에 나온 책들을 읽으면서, 김규항이 여기저기서 적었던 글들을 짜깁기해서 편 책이어서 좀 실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는, 전적으로 만족이다. 

성경을 읽은 것이 언젠지 모르나, 김규항처럼 눈을 뜨고 읽었던 기억은 없다.
성경에서 예수가 반말을 하는 한국은 예수가 오해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사회(14)라는 말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요즘 예수팔아 먹고 사는 사탄들이 워낙 많아 예수님이 눈물흘리실 판국이지만, 그의 예수전은... 가장 초창기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을 통한 예수의 모습을 읽고 풀이한 책이다. 

평화란, 온 세상이 잃어버린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다.(66) 

예수가 살았던 시대는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었다. 제국과 유랑하는 민족의 갈등이 지극히 심하던 시대. 저항운동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해석하는 이의 맘대로 평화를 푸는 것은 아전인수의 목적이 있으렷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대다수의 인민들이 자신의 삶이나 계급적 처지에 걸맞은 정당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당장 뒤집힐 것. 그래서 지배체제는 언제나 제 가치관을 인민들에게 주입한다. (97) 홍세화 선생 말대로, 계급을 배신하는 의식을 갖도록 의식화시키는 것.
한국 사회의 예수가, 반공 정신만이 전쟁 후의 목숨을 부지하던 시절에 목숨을 부지하는 한 요소로, 예수 믿는 사람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희한한 등식으로 이땅에 벌겋게 불지핀 것도, 예수의 계급에 걸맞지 않는 의식에 기여하게 된 일말의 스토리가 있다. 
예수는 억압의 사회체제가 피억압자들의 비굴과 무기력에 힘입어 유지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인민들은, "저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다.", "하느님은 저곳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천재 감독 이창동은 말했다. <밀양>에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회적 모순이 존재하는 한, 다들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졌다고 해도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예수를 좇는 사람은 지배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256) 지배체제와 불화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와 곤경에 처하지 않으면서, 이쪽에서도 칭찬받고 저쪽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예수를 좇고 있다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아, 한반도의 예수님이 교회에서 가가대소를 금치 못하실 노릇이다. 나도 가소롭게 사는 인간의 하나일 뿐이고... 

불의한 사회 현실 속에서 분노와 용서는 늘 균형을 잃곤 한다.
현실에 분노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대개 용서를 모른다.
그래서 많은 경우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빠져들어간다.
한편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분노를 모른다.
그들의 분노없는 용서,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 않는 무작정 용서는 불의한 현실을 덮고 그 현실에서 영화를 누리는 세력에게 봉사하게 된다.
예수는 분명히 분노하여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만,
끝내 용서함으로써 증오와 보복의 고리를 끊어낸다.(189)
예수를 좇음으로써 삶의 지혜를 얻겠다는 내 얄팍한 생각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봉건 사회에 비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과 노력이 사람의 삶을 결정하므로 정당하다고 이야기하기 쉽다. 아니, 한국의 가진자들이 이런 논리를 늘 편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그런가... 하는 것이다. 평범한 노동자 한 명이 재벌 총수만큼 벌려면 한푼도 안 쓰고 50만년을 모아야 하는... 이것은 능력과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뜯어 고쳐야 할 <악의 구조>다.(161)... 그가 예수를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세상의 구조가 뜯어 고쳐야 할만큼 고장났을 때, 누군가가 혁명가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그 혁명가의 모범을 예수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 혁명가의 생각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하여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승리한 후엔 용서함으로써 보복하지 않을 줄 아는 사랑. 

예수믿고 천국갑시다.
그들을 단지 타락한 교회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그들은 교회의 탈을 스고 하느님 나라와 대적하는 순수한 사탄들이다.(164) ... 더 덧붙일 말이 없다.
그 교회들은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가 '그래도 성전인데' 하며 침묵하던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외쳤듯,
우리는 '그래도 교회인데'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외쳐야 한다.(180) 

대개 자유 민주주의로 자본주의를 착각하고, 예수적인 체제로 여기며,
사회주의는 예수와 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
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사회주의의 기본 정신이 예수의 이웃 사랑에 닿아 있는 것.
예수의 이웃 사랑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것'이 아닌,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며,
진정한 기독교인은 '선량한 자본주의자'가 아닌, <특별한 사회주의자>여야 한다는 것이 김규항이 이 책을 쓴 소론의 결말이다. (204)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멋진 돌이며 얼마나 멋진 건물입니까!"
"당신은 저 웅장한 건물을 보고 있지요?
그러나 돌 위에 돌 하나도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허물어질 것입니다."(13:1-2)
성전은 하느님의 거처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도 아니며 외세와 결탁해 인민을 억압하고 벗겨 먹는 강도들의 소굴일 뿐이며, 많은 인민들이 그 휘황함에 현혹되어 있기에 예수는 더욱 단호할 수밖에 없다.(212) 아, 더 많은 믿는 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슬프더라도, 슬픔 속에서 극복해야 할 것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가진 게 많은 사람, 큰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하여 그들을 축복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으로 짜인 세상의 구조와 가치관을 하느님이란 가상의 대상에 <투사>했을 뿐이란 그의 말은 몸서리치게 삶의 정수리를 찌른다.(225) 

꽃들을 보면, 대여섯 장의 꽃잎의 특정한 꽃잎에 특정한 점들이 쿡쿡 찍혀있다. (컴터 사정상 그림이 안 들어가는데, 한번 철쭉 이미지를 찾아 보시라.)
그 점들을 <허니 가이드>라고 하는데, 그 점들은 대개 수술의 위쪽(햇볕이 비치는 쪽) 꽃잎에 자리잡고 있다.
곤충들이 보기에, 허니 가이드는 자외선의 영향으로 번쩍번쩍 빛을 내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꽃들이 한창 에너지를 붉은 빛깔에 쓰고 있을 때, 곤충들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날갯짓을 하면서 꿀을 빨아들이는 동작에 따라 그의 날개와 다리들에 수술에서 꽃가루가 묻어 암술머리에 붙게 된다고 한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술과 암술들은 한결같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휘영청 구부려져 있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섭리일 것이다.
꽃송이 하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그런 것.
자신의 에너지를 최고로 끌어올려 빛깔에 쓰다가, 일단 가루받이가 끝나면 시들한 색깔로 퇴색되어버리고 씨앗의 성장에 에너지를 모두 쓰는 그런 것. 

인간이 조금 더 가졌다고 뽐내는 것.
조금 부족하다고 얕잡아보는 것.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가까운 사람들부터 주워 섬기는 것.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서 아군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고, 적군의 멸망을 바라는 그런 것.
이런 것이 자본주의적인 삶이라면,
자본주의야 말로 반자연적인 것이고, 반생태적인 것이고, 반인간적인 것이고, 반하느님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김규항의 허니 가이드에 따라 그 번득이는 가르침에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꽃가루받이도 일어날 노릇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씨앗이 영글어 가기도 할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9-05-06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씨가 본격적으로 쓴 책이 처음이라니 의외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본 책도 모두 여기저기에 썼던 글들을 모아놨던 것이네요.
부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책을 좀 많이 봐주기를 바라는건 욕심이겠죠?

글샘 2009-05-06 02:4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기독교가 비판의 눈을 감고 있음을,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 이런 책인데요... 별로 안 좋아할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