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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화 ㅣ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읽던 기억이 나는 책이다.
주인공 이름이 큰바위얼굴과 같은 어니스트였고... 공산주의 운동의 미래는 형제인류애시대이며... 예전의 도둑질 같은 것을 설명해야 하는 발전된 사회를 꿈꾸는 몽상적 사회주의자 잭런던의 소설.
마흔 살에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 그를 생각하면, 역시 내가 살고있는 삶은 '부록'이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 당시엔 놓쳐버린 것들이 심장을 찌른다.
과두지배계급의 행태는 너무도 정확한 예측이다.
과두지배계급의 이런 고차원적인 도덕적 정의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강철군화의 힘이었는데도 우리의 많은 동지들은 그것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기를 싫어했다.(312)
과두지배계급이란... 산업과 정치와 자본이 똘똘뭉친 지금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은밀한 세력'같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수의 가진자들이 미디어 등을 독점하여 자신들의 <정의>를 유포시키는 것.
아, 9.11 일어나고, 그것이 자작극이란 필름을 보았을 때, 그들의 행태가 정말 두려운 것임을 느꼈는데, 이 소설은 1세기 뒤의 일들을 너무도 정확하게 그린다.
이 과두지배계급을 움직이는 최고 추진력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라.(313)
요지는... 오늘날 과두 지배체제의 힘은 자기 자신이 옳다는 자기 만족적 이해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에게 복지란... 게으른 자들에게 적선해서 나쁜 버릇을 들이는 것일테고... 예산 삭감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님께서는 장애인 어린이가 불쌍해 죽을 지경일 것이다.
전문직 종사자에 대한 그의 시선도 냉철하다.(172)
교수들, 전도사들, 편집자들도 하나같이 부호계급에 봉사함으로써 그 일자리를 붙들고 있고, 그들의 일은 부호계급에 해가 없거나 부호계급을 칭송하는 사상만을 선전하는 것. 여론을 조성하여 국가의 사고 폭을 정하는 곳이 언론, 종교계, 대학... 예술가들은 부호계급의 조악한 취미에나 영합할 뿐...
그리고 자본주의의 잉여와 세계화의 구도를 그는 이미 100년 전에 짚어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끝은 늘 잉여와 더 작은 나라에 대한 위협... 의 연쇄 고리...
자선이란 궤양에다 습포를 대는 것이란 표현은 참 무섭지만 적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208)
가진자들의 자선이란 것이 얼마나 악어의 눈물에 속하는 것인지... 상채기는 햇볕을 쬐어야 낫는 법이지, 거기 습포제를 붙이면 당장의 고통은 줄일지 몰라도... 상처를 덧내는 길이 되는 걸...
화학적 혼합이 기계적 혼합보다 낫다.(249)는 어니스트의 말은...
작은 사건들이 누적적으로 일어나는 기계적 혼합보다는 혁명적 시기가 도래하는 것을 화학적 혼합으로 비유한 느낌이 많다. 그의 이야기들은 세계를 조금 낫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치유하자는, 변혁하자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잭 런던의 강철 군화는 100여년 전의 시선으로 현대를 바라보는 냉철한 이성의 힘을 느끼게 하는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그의 철학적 소회를 드러낸 이 소설이(정말 소설다운 것은 7세기 후의 상황을 상정한 것일 뿐,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무지막지한 낙관) 소설로서 흥미를 느끼게 할 수는 있어도, 성공적인 결말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인다.
홉스 봄이 20세기를 '폭력의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강대국의 세계대전이 사라진 후에도 끝없는 내전으로 약소국들은 쫓겨다니며, 전투원들이 대부분 죽었던 1차대전에 비하면, 민간인의 사상을 60%까지 올린 2차대전, 그리고 현대의 전투는 90% 이상의 민간인을 해치는 무자비한 시대라고 하였다.
잭 런던의 이야기는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그리는 데도 형상화에 그닥 성공하고 있지 못하고, 시카고 코뮨 이후의 프롤레타리아들의 맹목적인 모습에서도 민중과 인류에 대한 믿음을 밝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7세기를 건너뛰어 인류형제애시대가 도래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당황스런 결말로 보인다.
이 당황스런 결말을 채워주고 있는 책이 홉스 봄의 <폭력의 시대>가 아닐까 한다.
두고두고 고전으로 남을 잭 런던의 <강철 군화>를 자본주의의 횡포, 그리고 그 극복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좀더 세밀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