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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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우스갯소리로서의 유머가 아니라, 풍자로서의 죠크가 가까운 용어다. 유머러스하게 하는 농담이 결코 아닌 것이다. 줄거리는 별 거 아닌데, 참 절절히도 적어 놓았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소설에서 섬세하고 자세한 것이 싫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더욱. 프라하의 봄을 지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구석구석 배어 있는 몰개성적이고 획일화된 시선들로부터의 고통은, 우리 사회의 독재 시대의 유물과도 어쩜 그렇게 유사한 것일까. 그래서 고통이 고스란히 밀려 들어와 아프면서 이런 류의 작품을 읽기 싫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해서 모지라진 인생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극적인 작품보다는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해피엔딩의 작품들에 매료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힘겹고 가난하던 고난의 시절에 남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임진 왜란의 고난 뒤에 임진록이란 호쾌한 작품(사명대사가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 것으로 그려짐)을 써 냈고, 병자호란의 비극 뒤에는 유충렬전(주전파의 강경함을 비판하고 주화파의 합리적임을 역설한 소설)을 그려냈던 지혜를 가졌던 조상들이었다.

가난하기 그지없고, 비참하고 끝도 없던 1800년 정조의 죽음 이후 비극적 시기에는 세도정치와 함께, 삼정의 문란으로 우리 백성들은 '못살겠다 홍경래' 같은 궁지에 몰려 있으면서도, 해학적인 흥부가, 해피엔딩 심청전, 자유연애 춘향전, 기지 넘치는 약자 토끼전과 같은 이야기들을 즐겼던 것이다.

명쾌한 논리 아니면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우스웠던 시절에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우습게 살아온 나로서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 속에서의 좌절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붕괴, 참 사랑을 희구하지만 헛됨을 깨닫을 수 밖에 없는 시대를 동감하며 가슴 저림으로 즐겁게 읽을 수 없었다. 농담처럼 비아냥거린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꾼 것 같지만, 그것은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의 한 개체로서의 인간의 나약하고 무력한 삶은 조명한 것으로 읽을 것이다.

그는 결국 파괴된 인간의 마음을 붙인 곳으로 민속적 음악이라거나 종교라거나 그런 곳으로 귀결 지은 것도 불만 중의 하나이다. 애초에 우리가 온 곳도 없으며,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결말을 위한 도정이 너무 지루한 것이 괴로울 따름이다. 하하, 우리 인생이 이러한 것일까. 결국은 허망한 것으로 결말지을 것인데도, 고통스럽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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