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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병리학 -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언뜻 낯선 이의 주소에서 이 책을 선착순 3명에게 분양하겠다는 글을 읽고 부탁드려 받아본 책이다. 그 분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신 분인지, 아니면 역자인지, 절친한 관계신지, 출판사 관계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덕택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미주 제외하고 387페이지고, 부록 포함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니 쉽사리 손에 잡힐 책은 아니지만, 무섭고 아름다운 책이다.
그런데, 표지 디자인도 별로지만, 제목이 좀 낯설다. 병리학이란 말부터 그렇다.
병리학은 질병이 생기는 원인부터 그 질병의 경과, 환경과 결과 등등을 탐구하는 공부일 것인데,
이것은 단순하게 한 개체의 육신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 관계 - 엄밀하게 말하자면 돈을 가진 자들의 질병과 가난한 자들의 질병은 전혀 다른 병리학적 소견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주제다. 그래서 원 제목의 부제인 health, human rights, and the new war on the poor...가 내용을 훨씬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하는 부제에선, 보건과 인권이란 측면이 약하단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꽃보다 남자라는 '된장 드라마'의 조연배우가 자살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을 듣자하지, 자살보다는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는 정황이 떠돌아 다닌다.
지난 1월, 아직도 마음이 아픈 용산 참사 사건도 그렇고... 이들 사건의 기저에는 늘 <가난> 또는 <부자가 아니어서>가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가진자들의 정부인, 고소영 강부자 나라에서는 <부자가 아닌 것이 죄>임을 더 여실히 느끼게 되는 것인지... 헌법에 새길지도 모를 일이군.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책은 돈 없어서 병들고, 탄압받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증언'하는 내용이 많다.
아이티의 시골 병원 의사이며, 비영리단체 <건강의 동반자>란 단체를 만든 저자의 이야기는 <르뽀> 문학에 가까운 고발들이 가득하고,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의 깨끗한 환경과 편안한 삶에 감사하게 된다. 더욱이 역지사지로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노라면, 어휴~ 정말 두렵기 짝이 없다.
아이티는 쿠바처럼 카리브해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나라인데, 쿠바처럼 선진적인 의료를 꿈꿀 수 없는 나라다. 아이티의 정치적 표류에는 변함없이 '변함없는 악의 축, 아름다운 미국'의 검은 손이 작용했고, 아이티의 인권, 보건, 특히 여성의 HIV 보균자가 심각한데, 이런 사태의 근원에는 역시 <가난>이 있었다. 가난하기에 조금만 호의를 보여도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사망률 조사를 할 때, 계층 대신 인종을 기준으로 하는 미국은 계층에 따른 사망률에 대해서는 귀가 먹은듯한 정적을 유지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난>, 곧 계층의 차이가 그 격차의 본질이다.(87)
이런 구조적인 폭력의 가장 큰 희생자는 한결같이 <가난한 사람들>임을 저자는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이 아닌 미국,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의 억류 상황에서 아이티 사람들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다. 내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던 아이티의 투쟁을 통해 인권 변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의 없이는 화해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147)
아, 전두환을 사면하고 민주주의를 선포했지만, 결국 정의없음에 이 땅이 금세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 말을 실감하고 또 실감한다.
오바마는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 없음을 개탄하는데, 가진자들은 지금의 의료보험이 가진자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적음에 분노하고 한탄하는 이 나라에서 정의를 생각하는 일은 다시 가슴 떨리는 일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의 사례를 통해서도 증언을 하는데, "치아파스는 풍요롭다, 그러나 그 주민들은 가난하다."는 말은 치료 가능한 질병들로 고통받는 멕시코의 현실을 잘 드러낸다.(161)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듣지만, 객관적인 수치는 그 반대의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전례없는 번영의 시대에, 치아파스의 교훈은... <세상의 자원은 좀더 고르게 나누어 져야함>이다.(177) 저자는 퇴보와 좌절된 희망, 기아와 얼룩의 아이티를 지나 긴장과 폭력 그리고 끈질기고 희망찬 저항이 있는 치아파스를 다니면서 온몸으로 증언한다.
이 책의 힘은... 그의 증언들이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그가 몸에 아로새긴 현실임에 있다.
인권을 보려면 자유가 없는 감옥을 보면 된다는 말도 있지만, <경제사범으로 체포된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결핵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 감옥에 들어가서, 재판도 받아보기 전에 결핵에 걸리고, 일부는 판결이 떨어지기 전에 그 병으로 죽는> 무서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1부의 증언을 통해, 2부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인권과 시장중심 의료행위 비판, 약제 내성 결행의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더 잘 걸리지만 치료를 못 받기 쉽고, 그래서 인권은 더 침해당하게 된다.(213)
브렌다의 신약 테스터로서의 경험을 통하여(250), 저자는
의사들은 환자들이 제대로 지시를 따르지 못할 때에는 환자를 탓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지시를 못따를 만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 환자들은 구조적인 폭력과 그 결과 - 인종차별, 중독, 의료보험부재, 일자리 부족, 주거 불안정, 가정 폭력 - 때문에 약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한다는 것.
결국 치료에 대한 차별은 빈부 격차에 의하여 간극을 더 벌리게 될 뿐이란 결론이었다.
무섭다.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의료보험 민영화의 마수가 없는자들에게 끼쳐올 무서운 고통들이...
약제에 내성이 생긴 결핵균이 감옥에 만연해도 국가는 단순한 약제만을 처방한다는 무서운 현실.
297쪽의 터스키기 매독 연구는 미국이 고스란히 접수한 '만주 731부대의 만행'의 연장선으로 보여 인간이 가장 두려운 존재임을 보여준다.
1932년부터 1972년까지 앨라배마 주에서 600명의 환자를 추적하여 실험을 한다.
대부분 흑인 소작인이던 대상들은 '저렴한 치료제'가 있었음에도, 실험 대상이어서 자신들이 무슨 실험의 대상인지도 모르는 채 죽어간 사건이다. 1997년에서야 클린턴이 공식 사과했다는... 실험.
우간다에서 행해진 에이즈 바이러스 실험의 결과를 고발한 사건이 있었는데...
황우석이 선진국에선 구할 수 없는 난자를 수천 개 가지고 장난을 쳤던 사건도 이런 비윤리적 행태를 반영한 또하나의 터스키기였다고 생각한다.
제3세계에서의 연구는 지원금도 더 많고 점점 엄격해지는 국내 규제를 피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이다. .. 피실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 조항들은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실험이 그것을 추진하는 나라에서는 승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제3세계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302)
저자는 마지막에서 <보건과 인권을 위한 의제>를 내 놓는다.
건강과 치유가 상징적 중심이 되며, 서비스의 제공이 필요하다.
폭넓은 교육과 강력한 정부, 관료 조직에서 독립성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결국, 병은 어디서 오고, 왜 번지며, 어떻게 사람들을 시들게 하는지를 살피는 병리학은,
사회적으로 볼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이 더 쉽게 다가오고, 권력자들에 의해 병이 깊어지며, 치유의 길까지도 제한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증언들과 제언들이 건조한 메아리로 그치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은 의사들, 특히 지난 촛불시위에서 응급구조단을 조직했던 의사들처럼 깨인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또한 의료 보건 쪽의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들이나, 공무원들도 이런 책들을 읽고, 미래를 향한 어젠다들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이라도 즐겁게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