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룡(지음), 정훈이(그림), <<김대리를 위한 글쓰기 멘토링>>, 뿌리와이파리, 2007.

직장 동료였던 공대 출신 마케팅팀 김 대리가 어느 날 기획팀 소속이었던 나에게 물었다. “너 국문과 대학원 다니다 왔지?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책 많이 읽고, 또 많이 써 봐야지. 글쓰기에 왕도가 어디 있어.”


참 개떡같은 조언이었다. 김 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도사 나셨구먼.’ 그 뒤로 김 대리가 글을 읽거나 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와 등 돌리고 살아갈 김 대리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때늦은 답변을 대신해 이 책을 쓴다.


김 대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획서 구상에 관한 간단한 요령이었다. 개요를 잘 짜는 방법이 궁금했던 거지 문예공모전 나가서 상 타는 법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는 왜 김 대리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사이클 선수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 들었을까. (...) 자전거 타는 방법은 사이클 황제 암스트롱에게 배우는 것보다 친구나 형한테 배우는 게 낫다. 싸보이지만 괜찮아.

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교조주의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 있다. 선생님은 칠판에 한자로 적으며 한참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는 척했다.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곧이곧대로 하는 거 말야.”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이 괜히 전교 1등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놈은 습득한 정보를 자기 방식대로 재정리하여 이해했기에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나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었던 거다.

전자제품 사용자들은 딸려오는 매뉴얼을 달달 외지 않아도 된다. 당장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 직접 눌러보고 익히면 그만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연로한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죽으면 비디오를 틀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유익한 것은 비디오 매뉴얼일까, 아들의 설명일까. 나는 한석규가 되어 신구 김 대리에게 비디오 켜기, 재생, 끄기, 이 주요 기능만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되감기, 녹화방법은 뺐다. 세 가지 기초 기능만 숙달하면 필요할 때 스스로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은이의 말 중



- 엉성해 보여도 일단 완결된 버전을 만들어 놓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기가 쉽다. 후레자식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본드 불고 가족을 힘들게 한다. 시작이 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실전에서 절반은 필요없다. 완성본만 필요하다.


- 빤쓰 줄여놨으니 돌아오라는 엄마 말씀에 집 나온 소년의 가슴에 울컥 뜨거운 것이 솟는다. 새 빤스 타이트하게 착용하고 이제 엄마 말씀 잘 듣고 새사람 되리라 두 주먹 불끈 쥔다. 돼지표 본드여 사요나라. 그게 개념 재규정이다. 자기 꼬라지를 알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태도. 공자님, 소크라테스 선생 모두 비슷한 말씀 하셨다. 무식한 줄 모르면 유식해질 수 없다. 일단 니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 한예슬 언니가 ‘꼬라지 하고는’ 하고 말할 때 그거.

- 때와 장소에 적합한 합리적 의제 설정, 명쾌한 설명, 정확한 근거 제시, 절묘한 비유. 이런 것들이 바로 카테고리 신이 내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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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미있네요.

글샘 2009-02-12 21:27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니 제가 오려 붙이고 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