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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한겨레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밀어내고 있다...
고등학교들이 교칙을 위반하는 녀석들을 학교 평판을 명목으로 내쫓는다는 이야기다.
학교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썩은 사과들을 내쫓는데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전혀 준비되지 않은 학교에 썩은 사과를 마구 반입시킨 1996년 교육 개혁을 욕하기도 한다. 착실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도 벅찬 교사들에게 썩은 사과 한 알은 엄청난 에너지 낭비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썩은 사과가 학교를 어지럽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썩은 사과의 '본성'보다는 썩은 상자, 또는 썩은 상자 제조 과정의 '시스템'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루시퍼 이펙트...는 심리학 이야기다.
얼마전 읽은 필립 짐바르도의 '타임 패러독스'가 지루한 이야기의 연속이라면, 이 책은 별 다섯이 부족하고 어떤 추리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는 데는 며칠이 필요했지만, 술을 마시고 와서도 보고 싶고, 아이들 입시 상담으로 머리가 띵할 정도로 눈알을 굴리고 와서도 새벽 3시가 넘도록 보고 싶은 책이었다.
아부그라이브라는 이라크의 한 교도소에서 평범한 미국 병사들이 싸이코 짓을 했다.
포로들을 발가벗기고 온갖 추잡한 사진을 남긴 것이다. 시신 옆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일본군들이 대가리를 조르르 세워놓고 그 옆에서 웃으며 찍은 사진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썩은 사과를 문제삼았으나... 필립 짐바르도는 썩은 사과보다는 '썩은 상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평범한 사람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는 악한이 될 수 있다.
어떤 교사라도 학생부 교사의 악역을 맡게 되면 입에서 험한 소리가 툭툭 튀어나오게 되어있고,
예비군복 입혀 놓으면 아무데서나 오줌누고, 동작이 굼떠지며, 8자 걸음을 걷게 된다.
사람보다 조건과 상황이 문제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사람들은 결국 그들이 연기하는 역할 그 자체가 된다.(251)
이 책이 재미난 것은,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421)이나, 간호사의 복종 모의 실험(430), 나치만들기 등의 실험들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죠.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그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는 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433)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뿐만 아니라, 나치의 살해와 삼청교육대의 살인처럼 상황이 인간을 복종시킨 역사의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정상인 아이히만이 수백만 유대인의 학살을 직접 주도하게 된 사실을 밝힌다.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한 상황에 처하면 극단적인 폭력을 휘두르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도 확인된다.
제 잘못입니다
각별히 유의하겠습니다
제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정체성이 있다
정당한 권위에는 복종을 부당한 권위에는 반항을
집단에 속하길 원하되 나의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틀에 대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균형적인 시간관을 갖는다
안보라는 환상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다
나는 부당한 시스템에 반대할 수 있다
이런 것들로 루시퍼 이펙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제시하지만, 부당한 시스템은 언제나 개인의 존재를 묵살하고도 남는 힘을 갖고 있기에, 문제의식을 갖게는 하겠지만, 정말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천사 루시퍼가 사탄으로 변하기까지의 '신곡'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무서운 이야기를 졸깃하게 들려준다. 무서우면서도 재미있는 이 책은 너무 무거워서 두 권으로 분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사진을 곁들여 재미를 더해준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