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그림 / 한스컨텐츠(Hantz)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MSF... 불어로 국경없는 의사회를 이렇게 부른다.

지구의 절망을 보듬는 여러 NGO 중에 가장 유명한 기구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사실은 위험한 국경들을 넘어가는 의사회다. 그 국경선 안에서는 온갖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어서 언제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밀지 모르는 그런 곳에 간다.

물론 그 폭력들은 서로 욕하면서 일어나는 것이고, 또 그 폭력에 따라 쌍방이 모두 다치기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종교나 인종 분쟁에 끼어들어 폭력배를 치료해주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처럼 큰 나라들의 지원금, 결국 국고의 지원을 제한한다.
월드 비전처럼 유엔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림들만 그리는 단체와는 그래서 차원이 다르다.
유엔은 미국처럼 전쟁 주도국의 기구이기때문에 전쟁 주도국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런 것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이 기구의 활동을 그만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 의사들이 약자 편에 서는 일인데, 그 의사들은 사실 의료 행위란 것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주사를 맞기엔 너무 혈관이 약해서 30분이 넘도록 정맥주사를 놓지 못하는 아기들부터, 온통 잘린 몸뚱어리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 의료 행위보다는 행정적 절차를 가르치거나 의료원을 양성하는 일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니 지구상에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겁하게도 이런 의사들이 찾아올 필요 없는 땅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 뭣때문에 도망쳐 왔어요?" 이것이 지원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란다.
절간에 수도하러 가는 많은 이들이 다양한 사연들을 안고 오듯이, 이 기구로 오는 이들도 죽음을 맞대면하러 가는 길이 도망의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전쟁 관광을 하며 총알을 모으려는 람보들은 이런 기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한다.(93)

"중립성은 공모를 낳았습니다. 개입은 우리의 의무입니다."(48)
자, 중립을 지키다 보니 힘센 놈 편을 들게 되더란 것이다.
약자의 편에 개입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말은 이 땅의 민중 운동에도 유효한 것 아닐까 한다.

1968 혁명에서 얻은 <국경 = 억압>의 등식도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국경(프런티에르)을 뜻하는 F가 기구 이름에 들어갔다.
애국심을 유발하는 쇼비니즘은 곧 또다른 억압의 등가물 역할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 사람들이라 하겠다.

이 기구엔 미국인이 아주 적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인 지원자들은 미군이 배치된 곳에 배치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하긴, 분쟁지역 치고 미군이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미국인이 움직일 공간이 뭐 있을까.

이 책에 실린 수십 장의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흑인들이 많다.
아프리카의 땅에 쏟아지는 폭탄들과 그 땅에 묻힌 지뢰들은,
아시아에 쏟아졌던 불비가 재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색인종을 향한 백색인종의 <폭격의 역사>를 뚫고 국경없는 의사회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날마다 개입한다.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고 징글징글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늘 활기차게 산다는 의사회 이야기를 읽는 일은, 매일 징글징글하다고 활력을 잃는 내 어깨를 툭툭 치는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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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은 항상 존경스러워요. 그들이 어느 나라이건 대부분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들일텐데 어떤 이유든 그것을 박차고 세상을 위해 나선 사람들이잖아요.

글샘 2008-11-17 23:59   좋아요 0 | URL
정말 존경스런 분들이죠. 그 기구의 활동상을 잘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책인 것 같습니다. 근데... 이런 좋은 책들은... 절판이라죠.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