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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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에 이 책을 사 두고는, 바쁘게 사느라고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잘 모셔 두었는데,
며칠 전, 집에서 읽을 책이 없어 우연히 꺼내들었다가 한달음에 읽게 되었다.
잘쓴 책은 읽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이 책이 그랬다.
화장실에서도, 졸면서도 침대 위에서 읽다가 자곤 했다.

어제 우연찮은 기회에 수원엘 가게 되었다. 시간이 몇 시간 되어 수원 화성을 천천히 구경할 여유가 있었는데...
화성성역의궤 등에 대한 기록을 읽다가 가서 그런지,
정조 동상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자기들의 정치적 앞길에 장애물이 될 인물을 제거하는 것은 정치의 생리라 하겠지만,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노론의 총수가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록한 문학 작품 '한중록'의 작가 혜경궁 홍씨(사도세자의 부인)의 아비되는 인물이었음을 생각하면 기가 막힘을 넘어 인간에 대한 기대가 싸그리 무너지고, 정치란 것은 정말 힘있을 때 나쁜 넘 제거해야하는 군주론처럼 달려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조의 급서 이후(독살설이 강하게 제기될 정도로) 조선은 무너진다. 순헌철(이름도 참 고철스럽다.)의 3대 60 여년간, 세도정치로 그야말로 3정의 문란과 민란 등이 죽끓듯 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라는 왜넘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지만...

수원에 화성 행궁까지 짓고 정치의 새바람을 일으키려던 군주는 사라지고,
그 아래서 입안의 혀처럼 움직였던 천재 정약용은 불우한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의 에너지는 막혀만 있던 것이 아니었고, 18년간 수백 권의 책으로 결과를 맺는다.
그야말로 문제적 인물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리사 경력만큼이나 생뚱맞은 자료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법학, 의학, 물리학, 한학, 문학, 어학, 경학... 등 수도셀 수 없이 많은 자료들을 생산해 냈다.

그 생산의 원동력이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를 궁구한 책이 이 책,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이다.
지식 경영이란 말이 좀 '장사꾼'티가 나서 맘에 안들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두기도 힘든 판국에 다산 선생은 그 지식을 자유자재로 부려 쓰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훌륭한 논문을 저렇게 대량생산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기함할 노릇이다. 그 비밀을 정민 선생은 치밀하고도 친근한 말투로 풀어 주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대학원 석사과정쯤 되는 수준의 사람들에게 <논문 작성법> 대신 읽어 보라고 하면 완전 소중한 책이 될 것이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공부하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되도 않는 <논문> 작성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머리털이 다 빠질 뻔한 황당한 졸업을 한 사람이다. 박사과정은 언감생심, 쳐다보기도 싫은 것은 바로 그 '논문' 때문이다. 왜 논문 쓰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그건, 바로 논문을 쓰는 법을 지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려면, 계속 대화하고 상담할 집단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대학원에 그게 있을리가 없다.

50가지 항목으로 분류한 것들은 minbs0518이란 분이 http://blog.aladin.co.kr/706161185/1571300에 쓰신 글이 좋다.
나도 베껴쓰려다가 누가 적어둔 것이 있을지 몰라~ 하면서 뒤져보니, 역시 적으신 분이 있다. ^^

다산 선생의 공부법을 요약하면,
독서하고,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구절을 만나면 초록하고,
그 초록들이 적절하게 쌓이면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정리하는데 이때 분류를 잘 해야 한다.
점차 분류 항목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고, 자료들이 늘 것인데,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게 된 것들을 글로 쓰면 된다.
글을 쓸 때는 문학적으로 쓸 수도 있는데, 암튼 '궁리'를 골똘히 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정보를 장악해야 한다.
자료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한다.(465) 옳고 또 옳다.

이런 지식활용법을 다산 선생의 용어로 쓰자면...
문목을 세워 촉류방통하고 휘분류취하여 반복참정하고 잠심완색해서 종핵파즐하여야 한다고 한다.
글쓸 순서를 세운 다음,
(글쓸 내용들을)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고,
(자료를)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으고,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되풀이해 검토하고 따져서 점검하며,
(자기 의견이 제대론지) 생각을 정돈하여 끊임없이 살펴보아,
종합하고 분석하여 꼼꼼히 정리하라는 뜻이다.
히야, 교수들은 뭐하나 몰라~

자산어보로 알려진 정약전의 책을 현산어보란 용어로 쓴 것은 마음에 안 든다.
玆는 '이 자'로 쓰이는데, '검을 자'로도 쓰인다. 물론 '검을 현'으로도 쓰인다.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어떤 이는 검은색(흑)은 검을 현으로 쓰고, 검붉은 색을 '자'로 쓴다고도 하고, 검을 자로는 잘 안쓰인다는 의견도 있단다.
내 의견은... 자산어보는 고유명사이기때문에 그 시절부터 자산어보로 알려졌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고증하는 것도 좋지만, 고유명사를 읽는 것까지 자전을 들먹이면서 바꾸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속음을 허용하듯이 자전에는 현산어보가 더 가깝다손 치더라도 자산어보로 굳어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하긴, 뭐 정약전이 살아오지 않는한 답은 없는 노릇이다.

향낭(529)각시를 바퀴벌레로 풀이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2월 1일 각 가정에서는 대청소를 한다. 집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으며 거미줄을 털고 외양간 같은 가축우리도 거름을 치운다. 2월 초면 노래기라는 벌레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초목의 썩은 부분에서 더욱 심하게 나오고 방에까지 기어 들어오므로 이것을 막기 위하여 부적을 만들어 붙인다.
백지에 ‘향낭각시(香娘閣氏) 속거천리(速去千里)’라고 써서 기둥이나 벽 · 서까래 같은 곳에 거꾸로 붙인다. 노래기에게 빨리 천리만큼 먼 곳에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니 이 주문 부적을 붙이면 노래기가 없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다. (서울600년사, > 민속 > 세시풍속 > 춘절 > 향낭각시)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이 책을 한참 재미붙여 새벽 두세 시까지 읽고 있는데, 그만 26장과 27장이 통째로 낙장이 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 그 아쉬움이란...
마침 그 장들은 강구실용과 채적명리여서 화성 건축과 관련된 자료들이 주로 실린 것들같이 보여 전체 이해에는 지장이 없으나, 이 책은 책꽂이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두고두고 곱씹어 맛을 보아야 할 책이기 때문에 알라딘에 교환 신청을 해 두었다.

좋아하게 되면 알게 되고, 보이는 것이 전과 다르다더니,
정약용을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으면, 여지없이 정약용의 인간됨이 툭툭 튀어나온다.
고맙게 곱씹어야 할 책을 만난 것은 올 가을 독서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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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2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지 경영어쩌고 하는 말이 들어가면 딱 읽기 싫어지는데...
자꾸 이 책 좋다하니까 살짝 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좋아하는 작가중에 정민선생이 들어있기도 한데 말입니다. ^^
얼마전에 제가 좋아하는 이주헌씨도 <미술 창의력발전소-리더를 위한>이란 책을 냈더라구요. 이주헌씨 책은 어린이용 말고는 다 사서 모으는 저도 저 리더를 위한이란 말이 들어가니 딱 제껴지더라구요. ㅠ.ㅠ

글샘 2008-11-12 20:15   좋아요 0 | URL
요 책은 공부하는 사람이 무조건 읽어줘야 하는 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