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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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두 글자짜리 단어를 화두로 삼아 글을 쓸 생각을 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한자어로 된 단어가 태반인 우리말에서 두 글자짜리 단어는 지배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을 것이고, 그런 꼭지를 생각한 것은 우리말을 곰곰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말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그 정도 관심도 안 보인 내가 미안하다.

세상에 넘쳐나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혼합'적 시대를 즐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철학 주류를 반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이들의 성인화와 성인들의 아동화, 합리적인 부박함과 비합리적 진솔함...
이런 것들 투성이인 세상 가까이에서 '혼합'의 시도는 다사롭고 정겹다.

그의 3부작은 인간에서 시작한다. 그 다음은 감정, 그 다음은 관계로 확산된다.

인간 편은 당연히 생명에서 시작하는데, 생명에는 2편의 글을 할당했다.
존재의 이유를 폭력과 우정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 뒤로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이란 주제를 내세운다.
유혹 같은 걸로 글을 쓰다니... 참 재미난 사람이다.
안전...을 읽는데, 오늘 다시 백화점 붕괴가 일어났다. 불안전 불감증... 심각하다.

감정의 발견 편에서는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로 이야기를 펼친다.
시기와 질투가 다르다는 생각을 곰곰히 한다. 그렇다. 시기는 2사람의 관계지만, 질투는 3각관계다. 철학이란 뭐든지 곱씹어 살피는 마음이다. 아니다. 생각과 마음을 또 나눠보는 게 철학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면 그게 철학이기도 하겠지.
아무튼 그의 영화 이야기, 독서 이야기를 따라다니다 보면,
이런 꼭지로는 시험 문제를 내기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좀전에 읽던 박재동 화백의 제작 애니메이션인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도 만나고...
흥미진진하다.

소요유란 이런 것이다.
언어의 풀밭을 돌아다니다
자욱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발길로 툭,
걷어 차는 그런 것.
잠시 풀벌레에게 미안하다가도
금세 웃음 머금게 되는 그런 것.

3부의 관계의 현실에서는
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아부, 용기, 겸허, 체념...이 실려있다.
우정의 거미줄과 겸허... humble... 체념과 포기의 수준 차이도 재미있다.
존경은 지속성을 가진 이성의 판단이란 말을 듣고...
왜 이 시대엔 존경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는가...를 생각했다.
존경은 순간적인 인상에서 우러날 수 없고, 오랜 행동을 보고 생기는 것이다.
표리부동한 인간들을 보면서 어떻게 존경의 염을 떠올리겠는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노릇이다.

공부를 즐기듯 하는 사람, 김용석.
지난 여름, 촛불 집회할 때마다 만났던 모녀가 생각난다.
이름도 모르지만, 서울갈 때 인연이 되어 얼굴을 알게 된 딸은,
대학을 다니다가, 김용석 선생님께 배우고 싶어서 영산대 철학과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단다.
문제집도 두어 권 주고 했는데,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그 어머니가 걱정을 하시며 영산대 철학과 이야길 하시기에,
내가 김용석 교수 이름을 들먹이자 엄청 반가워 하셨다.
그 밑이라면 철학 공부 할 만 할 거라고 위로를 해 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김용석의 글은 그의 온몸에서 우러난 것이어서 읽는 일이 무한한 기쁨을 몰고 온다.
번역투의 글들을 도배하는 것들이나 서양의 철학들을 소개하는 도막글들에 대한 설명으로 조각난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아, 나는 철학하고 거리가 먼 인간이구나... 한 거에 비하면, 김용석의 글을 읽는 일은 친한 친구가 수다떠는 걸 듣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그의 평화로운 글을 많이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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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0-3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제가 좋아하는 김용석씨의 책을 연달아 두 권 보셨군요. ^^

글샘 2008-11-01 11:3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김용석 씨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네요. ^^

순오기 2008-11-0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별찜합니다~~~ 저는 교수님들 책 별로 안 읽고 못 읽었는데 급호감이에요.^^

글샘 2008-11-02 21:4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