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1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고전'은 옛날 책 중,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보통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만한 통념도 없다.
사실은 '고전'이라고 강제적으로 누군가가 '분류'했을 따름인 책들이 그것이고,
특히 미국이라는 '억지적 발생'을 가진 땅에서 '고전'으로 분류한 책들은 다분히 <배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제신문을 넘기다가 우연히 '고전 논술'을 강의하는 페이지를 읽었다.
읽기 힘든 고전들을 요약도 잘 했고, 설명도 잘 되어 있어서 니코마코스 윤리학부터 프로이트, 장자, 짜라투스트라, 근사록, 플라톤, 제국, 사회계약론, 깡디드(연재중)까지 재미있게 프린트해서 읽었고 서양 고전에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이 나를 불렀다.
동양 고전을 공부하기엔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개론서로 제격이듯이, 서양 고전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그 목록을 보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1권을 읽고 보니 이 책은 '고전'에 대한 콜럼비아 대학의 강의를 마흔 여덟 먹은 영화평론가가 청강하고 그 감상을 적은 <인상 비평>에 불과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는 못미치지만, 서양 고전에 대한 맛뵈기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고전의 해설을 자기 목소리로 하지 않고 수업 전개에 따라 설명하는 것도 그럴 듯 하고, 또 직업인으로서 청강이란 독특한 형식으로 수업을 들은 그에 대해서도 존경의 염을 표하면서 읽었다. 아무리 프리랜서같은 직업이라지만 그렇게 열심히 읽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는 기말시험까지 치렀다. ㅎㅎㅎ
그야말로 유쾌한 책읽기의 표본이다. 좋아서 읽는 것만큼 바람직한 독서는 없다.
특히 영화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미디어와 연관지어 읽는 시선도 예사롭지 않았다.
학생들의 샐러드 볼인 교실에서 <정전>의 제시는 늘 <배제>의 시선과 부딪치게 되어서,
편견과 정당성의 좌충우돌이 수시로 일어났고,
심지어 오늘은 2008년 10월 28일 이란 것도 '하나의 시선'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옳다. 서력을 쓸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이란 없지만, 진지한 독법은 있다.
이 한마디가 정전에 대한 변명이다.
선악과-라는 단어가 포함한 <이항 분류>가 우열과 저열을 가르는 시작이 되었고, 이원성의 시작은 악마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성경의 비유처럼, 주요문화와 고전이라는 편파성은 사실은 커리큘럼상의 <선택>일 뿐임을 끝없이 제기하는 이 책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레이트 북스'다.
늙은 학생이 되어 "마흔 여덟의 나이에 나는 책을 읽느라 늘상 허덕이는 낭패감을 즐김"으로써 청강생의 생활을 누린다. 아, 나는 그의 낭패감이 왜그리도 부럽던지... 나는 로또를 가끔 사는데, 로또가 한 100억쯤 걸린다면,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좀 자유스런 나라로 훌러덩 날아가서 대학 도서관에 파묻혀 공부를 죽도록 하고 싶다. (절대로 미국이나 일본으론 안 간다.)
정전을 제대로 교육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이 책을 통하여 끊임없이 질기게 제기된다. 어떤 이의 답은 "아니오."다. 그것도 단호하게. 특히 미국처럼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의 이행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교실에선 진지하게 그런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절대적 자유에 대한 포기를 이야기하는 홉스가 근대국가를 옹호했다면,
재산의 불평등이 자연상태를 떠난 인간의 불가피한 일면이라고 로크는 자본주의를 옹호하여 근대로 넘어간다는 강의를 들으면서 방학에 들어간다.
자, 과연 데이비드 덴비의 2학기에 나도 같이 강의를 들을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나도 잠시 방학을 갖고 싶으므로.
그렇지만,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곤 있지만 선뜻 손대기 어렵다는 사람에겐 한번 권해줄 만 하다.
쾌활한 표정의 샤피로 교수가 모두를 위해 과자나 오렌지 주스를 내놓고는 문제지를 나눠주었다.
이것이 그들의 시험 풍경이다. 과자를 내놓고 치는 시험... 유쾌하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나"는 행위의 축적물이라고 했다.
탁월함은 사건(천성)이 아닌 습성, 곧 행위의 축적물이라는 것이다.
고전의 축적을 읽는 일은 그래서 탁월함으로 가는 습성을 익히는 학습기술이 될 것이다.
사족, 이 책을 읽고있는 중에 시사 in이 배달되어왔다.
거기 CEO 인문학 강좌가 한국에도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인문학이 최고경영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기사는 좀 신선했지만,
그 강좌의 가격이 1,200만원(120만원이 아니다.ㅠㅜ)임을 보고는 한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