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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텔레비전 연속극의 식상한 스타일이 있다.
3대 정도가 모여 사는 대가족 제도의 집이 등장한다는 것.(세트를 아끼기 위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대기업 회장이 뻑하면 등장한다는 것.(이 코딱지만한 나라에 기업 총수는 뭐그리 많누.)
그리고 부잣집 자제분은 꼭 별볼일 없는 녀석과 사귀는데, 그게 순애보로 그려진다는 것. 쳇.
이런 말도 안 되는 연속극의 식상한 돈벌이 방식에 시비를 거는 '쿨한 서유미'의 작품이다.
실제 가정들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홉 시 뉴스 전에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한 8시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와는 전혀 딴판이기 쉽다. 마치 막돼먹은 영애씨같은 것이 우리 삶이고, 가정들이다.
서른 넘은 딸내미 영애씨는 시집갈 가망도 없고, 뭐 남자 꾀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인간성도 좋고 학벌도 좋은 딸은 서른 넘어서도 회사나 다니는데,
싸가지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이쁜 작은 딸, 영채 연애도 잘 하고 시집도 잘 간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하지만 미모도 출중하고 부유한 남편을 만나서 번듯하게 가정까지 꾸리고 사는 삼십대 여자와,
가진 것도 없고 인구 감소의 주범 역할을 하지만 머릿속에는 늘 생각이 들끓고 있으며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고 싶어하는 삼십대 여자가 있다면,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누굴 선택하고 지지할까? 질문 자체가 너무 초라한가?
사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뻔하다. 그래도 가끔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누군가, 내 편은 정말 없나요?(63)
회장댁 딸도 아닌 서민들은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인공이 회사를 때려 치고...
월급을 떠올리자 직장생활도 나름대로 좋은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직장이라는 곳은 다닐 때는 지겨워 죽을 것만 같고 거기 매여 있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빡빡하게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자의든 타의든 거기서 벗어나고 나면 헐렁함을 견디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마치 고등학교처럼 말이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고등학교가 훨씬 더 그립지만, 게다가 직장은 돈도 준다.
대체 돈이란 왜 이렇게 많은 것을 용서한단 말인가. 이놈의 돈, 악마의 금전.
뽀빠이의 올리브같은 작가 서유미가 쓴 소설은 처음이지만, 그것도 완득이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응모한 것조차 까먹었을 즈음 날아온 책이어서 묵혀두었다 읽게 된 책이지만, 서유미의 신선한 서술이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왜 연속극의 식상함보다, 영애씨의 구질구질한 리얼리즘을 사랑하는 걸까? 시시하게...
음, 쿨한 것은 ... 시시한 것과 뭔가 통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