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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토템 1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인류 문명의 시작을 이야기하자면, 이집트와 인도, 메소포타미아와 중국 문명을 든다.
그렇지만, 지금 남아있는 국가 중 그 문명의 힘을 가장 튼실하게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이집트와 인도가 수천 년 전의 문명국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과 메소포타미아가 아직도 전쟁에 휩싸여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겠다.
그런데, 올해 올림픽까지 열었고, 그 올림픽에서 명실상부 1위국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은 중국의 심장부에서 나온 이 책은 시이튼의 <동물기>보다 뛰어나고, 베르나르의 <개미>보다 훌륭하다.
몽골 초원의 늑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대지의 삶의 이야기들은,
탱그리로 불리는 대자연의 어머니의 질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치' 중심, '개발' 중심의 문제를,
'초원' 중심, '환경' 중심의 해법으로 이끌어가는 절묘한 묘미를 가지고 있다.
1,2권 합쳐서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기한 사극을 보는 듯이 흥미진진한 장면 묘사들은 어린 시절 보았던 징기스칸의 초원을 떠오르게 하는 '대장 불리바'의 파워가 시종 유지되어 독서의 재미를 실감하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농경 민족이 주로 왕권을 잡은 중국 대륙의 신화를 '용'의 신화라고 한다면, 잃어버린 세계, 그렇지만 생동감 넘치는 문화의 맥을 놓치지 않았던 중국 대륙의 실질적 힘은 바로 <늑대 토템>의 초원에서 비롯된 힘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멋진 소설로 풀어내었다.
문화 혁명기의 피폐한 삶이 너무나 눈물겹고, 사람을 어디까지 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정치인지... 회한에 가득차 바라보게 하는 글들, 지식인들은 언젠가 원상회복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에선 패배하고 마는 것들이 대부분의 소설이라면,
같은 문화 혁명의 시기지만, 그야말로 지식인의 나약함을 반성해야 함을 초원의 삶을 통해서 절실하게 보여주면서도 관료주의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모순도 자연스럽게 초원 위에서 드러난다. 그렇지만 그들은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초원의 대자연 속에서 어울린다.
한참 늑대 소리를 듣는 동안 천전의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다.
그는 때로는 비교와 대조가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문득 늑대와 개가 내는 소리의 차이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 둘을 반복해서 비교해 보았다.(2권. 121)
그렇다.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서사의 맥을 살아 펄떡이게 하는 것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바로 '비교와 대조'가 중국 문화의 비밀을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용의 문화와 늑대의 토템.
농경 민족과 초원 민족의 삶.
관료적 권력자와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
고대 문명의 센텀 중국과 현대의 침략당한 나약한 중국.
씩씩하고 늠름한 자연의 늑대와 인간 틈바구니의 어리석은 늑대.
개들의 비겁한 순종과 늑대의 강단있는 협동.
그리고... 토템의 광활한 시대와 사상의 막다른 세상...
이런 것들을 씨줄로 걸어 두고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날줄로 옭아 매어서,
한 필의 비단을 짜듯 정성스럽게 엮어낸 것이 '늑대 토템'이란 명작이다.
유홍준이 백제의 문화를 일컬으면서 '낙이불음, 검이불루'의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이 대작 속에 흐르는 유유한 이야기들은 유쾌하지만 음란한 구석이 전혀 없고,
검박하지만 인간의 누추한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은 상쾌함이 있다.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웅장하지만 결코 압도하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지만 비판으로 껄그럽지도 않고, 방치되어 살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은...
이 소설을 읽노라면 초원의 어머니, 탱그리의 넓은 마음이 그대로 독자의 마음에 그득하게 들어찬다.
길고 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 그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고구려 중심의 <곰의 토템>을 가지고 살았던 강한 초원의 민족이었던 이 나라가,
농경 민족, 불교와 중앙집권적인 국가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문약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은이가 '비교와 대조의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나도 가져 보노라면...
짧기만 한 인생에서도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박물지나 풍속도를 좋아하는 사람도,
동물기, 곤충기로 시작해서 개미까지 몰입했던 사람도,
무엇보다 역사나 인류 문화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까지...
두루두루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드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