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앓는 아이들
문경보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말했다.
"만약에 먹고 나서 곧 잠들고 한 30분 있다가 고요하게 심장이 멎는 약이 개발된다면 엄청 팔릴거야. 그치?"하고...
그때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무서웠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 먹고 세상을 버릴까... 아니, 인류는 그 약으로 인해 멸망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2.
더운 여름날, 퇴근 후 끈적거리는 바람은 어둠이 내린 아스팔트 위에서도 미적지근하게 남아있다. 한 달 전, 도로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기껏해야 이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로 위에 앉아서 촛불을 켠다.
바로 옆에서는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즐거운 표정의 젊은이들이 싱싱하게 지나간다.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듯한 내 모습에 섬뜩하다.

3.
책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가 있었다. 고등학교때, 책이라곤 펼칠 줄도 모르고 맨날 화장과 앞머리 세우기에 전념하던 친구는 시집가서 애도 기르고 번쩍거리는 집에서 잘 살고 있는데, 학창시절 인생이란 무엇일까 하면서 정신적 성숙을 자랑하던 주인공은, 풀카운트로 가득찬 나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고민하고 있던 그 여자.

4.
문경보 선생의 글을 읽는 일은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답도 없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곱씹는 것이 인생일진대, 교사가 학생과 교감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바보같이 아이들 속에서 뒹굴고, 울고... 이러는 바보 문경보 선생의 글 속에는 따스한 인정이 살아 있다.
그 속에는 아직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게, 같이 살아가야 할 힘이라는 게 느껴진다.

5.
여름방학식을 한 것이 7월 19일. 보충수업을 마치는 것이 8월 19일.
오늘부터 기나긴 4박 5일의 여름방학으로 들어간다. ㅠㅜ
방학...은 공부를 놓아버리는 기간인데... 스님들도 '안거'하는 기간인데...
아이들은 이미 공부를 놓아버린 표정들인데도 억지로 학교에 불려 나온다.
방학인데도 지각을 하고, 결석을 한다. 방학과 결석? 뭥미...
아이들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다음 주면 개학이다. 다람쥐가 쳇바퀴 돈다.
오늘 마지막 날인데 아직 여섯 명이 안 왔다. 이 괘씸한 놈들...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 이게 요놈들 나름의 저항이고 살 길 찾기다... 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하루도 결석 않은 넘이 징헌 넘들이다.

6.
삶은 고행이다.
그래서 삶에 대해 터득하신, 삶은 곧 없음이고 비움임을 깨우치신 부처님, 예수님을 높이 산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삶은 힘들다.
고등학생이면 이미 청춘이다. 사춘기는 훌쩍 넘긴 아이들이다.
나보다 키도 마음도 더 큰 아이들... 가끔 덩치만 웃자란 아이들로 속도 썩는다.
교사는 어차피 바보가 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서, 성기고 낡은 체가 되어야 아이들 숨통이 열린다.

7.
성기고 낡은 사이로 공기도 통하고 인정도 통하는 것을 일컬어 '소통 疏通'이라 한다.
아이들이 내게 쉽게 흘러드는 좀더 성긴 교사가 될 필요가 있다.
작은 것에는 꼼꼼하고, 큰 데서는 성글고 드문드문한...
아이들의 찬란한 1%를 놓치지 않고 발견해 주는 데는 눈빛을 빛내는 교사가 되리라.

8.
곧 2학기 수시 모집이 시작된다.
아이들도 긴장하고 언제 면담을 시작하나...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대학을 찾아보고 의논하는 일... 쉽지 않다.
아이들의 청춘을 빛낼 수 있는 곳을 찾음에 부지런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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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8-19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기고 낡은 사이로 공기도 통하고 인정도 통하는 것을 일컬어 '소통 疏通'이라 한다." 이 문장 참 좋아요! 그런 소통이라면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푸근하고 넉넉할까요 ^^

순오기 2008-08-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눈부신 청춘이 책상머리에서 시들어 가고 있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