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박종인 외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그들이 진정 천사라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Angel들이라면, 그들이 눈물 가득한 생을 살아선 안 되는 일 아닐까?

이 책을 엮은 것이 '조선일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왜 아이들을 찾아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자꾸 고깝게 들리는 것인지...

대한민국은 경제적인 총량만을 따질 때, (그 삶의 질을 고려한다는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어서 따지지 않는다마는...) 1,2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다.(나는 이 양의 큰 부분이 미국에서 들여오는 무기의 가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외의 많은 재산들도 1%밖에 안 되는 '재벌'이란 현상들의 몫이며, 숱한 거품들은 실제 생산은 전혀 없는 부동산 투기에서 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한국은 아이들을 외국에 입양시키는 부끄러운 아동 학대의 대표 국가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교육열이 세계적인 것처럼 그 국민들은 착각하지만, 국가는 교육에 정말 쥐꼬리만한 투자를 한다. 그 투자도 사실 거의 인건비와 시설 운영비로 다 들어간다. 교육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덕분(?)에 학급당 학생수가 급격히 줄고 있으며, 세계 유일의 미친 사교육 시장의 활황으로 학생들의 찍기 능력(지적 능력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은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특이한 나라다.

방학이지만 아이들은 거의 학원에서 종일을 보낸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중학교 가면서부터 좌절감에 휩싸이는 나라다. 그렇지만, 자기 자식만 잘 되는 길이 있는 줄, 착각하며 사는 나라가 이 나라다. 정말 이기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부모들이다.

대조적인 나라로 핀란드를 꼽는다. 우리보다 심한 역사적 격변을 겪었다고 볼 수 있는 핀란드가 세계 교육의 모범으로 빛나는 것은, 교육이 국가의 미래다...하는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개인의 미래'일 뿐이다. 국가를 위한 교육은 공교육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책엔, 대한민국의 그 알량한 교육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욕된 수준의 아이들을 찾아가서, 학교를 지어주고, (적나라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그런 것들은 '선교'의 일환이다.) 그 아이들에게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 스토리들이 많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바라보면서, 그 눈빛들을 이용한 '교회 장사꾼'들의 추악한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나쁜 마음을 갖게 된 것인지... 정말 사탄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내 생각을 교정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가난한 나라, 그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당장 먹을 것, 필요한 것을 주는 '교회'나 '선교사'는 천사가 아니라, 가난을 이용한 장사꾼에 불과함을 나는 본다.
찾아가는 이들의 눈에, 그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지만, (여행기들을 읽어보면, 그 불쌍한 아이들이 또 얼마나 치열하게 굴러먹었는지 정말 싸가지 없고 못돼먹은 짓들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 아이들을 불쌍한 인생, 죽지 못해 삶을 연명하는 아이들의 생활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를 이 책의 저자들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점이다.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조선일보 팀이 꾸리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삐딱하게 보지 않았을지도... 그렇지만, 이미 삐딱선을 타버린 내 독서의 행간에서, 그들이 자료를 찾아서라도 넣었음직한 그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들이 제거된 책의 의미는 원래 시도의 몇십 분의 일도 안 되게 가벼워졌다.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다네.
그러나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지.(65)

그 시궁창이 절대적 빈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분배의 불공정과 세계적 제국주의의 수렁에 의한 것임을 이야기하지 않고, 몇 사람이 별들을 바라보는 행동으로 세계가 아름다워질 것이란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 아닐까?

초등 수준의 어린이가 몸을 팔러 다녀야 하는 현실을 보면서, '문제는 가난이고 가난은 100%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걸...'(131) 알지만, 캄보디아 정치의 근원에는 중국과 미국의 이권이 개입했음에 저자는 무거운 고개를 돌린다. 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면서... 왜 정치 이야기는 쏙, 빠진건지...

매달 한국인으로부터 꾸준히 후원을 받아 공부하던 소년(192), 역시 한국인의 후원을 받아 책과 공책을 사서 공부하는 소녀(193)들을 감싼 정치적 상황은 '존재가 이성보다 우선'임을 가르쳤다. 실업, 고문, 전쟁, 폐허, 납치, 문맹... 그들의 가난을 보면서 작가는 대한민국의 옛모습을 그대로 목격(196)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의 절대적 가난도 문제지만, 이 나라의 상대적 빈곤, 실업, 전시에 준하는 폭력 경찰들의 횡포 속에서 사는 나라. 그리고 시골에 가 보면, 파괴된 가정의 아이들을 사회적 복지라곤 하나 없이 늙어서 죽음을 앞에 둔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들을 끌어안고 사는 질곡의 구렁텅이가 먼저 떠오른다.

천사의 눈물을 보러... 굳이 멀리 갈 필요 없다. 멀리 가는 이들은... 한국은 이제 세계적 경제 대국이라고 착각하거나, 착각하도록 종용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안에서 그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정신적으로 피폐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정치의 노릇함이다.

펜을 칼보다 강하다. 먼 곳에 가서라도 꼭 공부하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
(코란 중에서, 228)...
이 말을, 학교 공부라고 듣는 선교사들이 딱하다.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려는 각다귀들은 그렇게 듣는지 몰라도,

내 귀엔 공부하지 않고는 무력을 이길 수 없다.
무식은 정치적으로 반복되는 수난을 잉태할 뿐이다.
정치적으로 가진자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는 자들과 대립하기 위해서는,
칼 앞에서 촛불 하나로 버팅기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의로 들린다.

오늘도 열아홉 청년들의 얼굴에 가득한 수심만 바라보던 내 속셈에 먹구름만 잔뜩 뒤덮인 마음으로 읽게 된 책.
책속의 아이들의 불행한 정도가,
방학도 잊고 학원으로 뺑뺑이치는 우리 아이들의 불행의 정도와 비교될 수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방학인데도 얼굴이 허연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일조권도 없는 학생의 인권이 안쓰럽고 또 안쓰러워 보이는 건 내 마음이 어두운 까닭인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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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7-2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의 가난하고 불행한 아이들을 보며 연민의 눈으로 보는건 정말 1%의 해결밖에 안되겠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제대로 밝혀주지 않는 책은 그저 그 아이들의 그런 삶에서 자신의 부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자들의 자기 위안거리밖에 안될겁니다. 보수진영이 흔히 써먹는 수법이기도 하구요. 1%를 주고 99%를 빼앗으면서 그 99%를 가려먹는 수작이잖아요.

글샘 2008-07-29 14:05   좋아요 0 | URL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도 못하고 사니깐요. 그렇지만, 많이 가진 자들이 폼잡으면서 하는 일들은 언제나, 더큰 이익의 창출을 위한 것일 따름일 때가 느무느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