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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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낙타 전문>

낙타, 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 바싹 마른 사막의 모래,
그리고 그 모래가 바람에 날리는 모랫바람을 견디려 길숨하게 늘어진 눈썹,
그리고 반틈은 감은 눈.
타박거리는 느린, 그러나 유연한 걸음과 몸동작.

신경림이 느려졌다.
그리고 낙타 걸음으로 온 세상을 헤집고 다녔다.
남북아메리카와 몽골과 히말라야 설산과 터키까지...
그의 낙타 걸음을 자꾸 걸고 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세계화'라는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달리는 말은 다리를 걸면 넘어질지 몰라도, 적어도 낙타는 넘어지지 않으리라.
지치고 지치면 사막 그 그늘 어느 곳에서라도 삶을 부려 놓고 살풋 눈을 감을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화가 빠르고 하나의 언어로 통일되어 가는 세상이라면,
낙타가 상징하는 바는 느리고 방언을 쓰는 세상을 상징한다.
적어도 시는 그렇게 약삭빠르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느리면서도 구석구석 길가 풀도 뜯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세상 사는 사람들도 보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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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0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스산합니다.
느리게 가고 싶은데 자꾸 등을 떠밀면서 재촉하네요.
글샘님이 좋다하면 신경림의 낙타를 한 번 타봅죠.

글샘 2008-06-04 08: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세상에 눈 감고 책만 보면서 흥얼거리고 싶은데, 왜 자꾸 국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낙타를 굳이 타보시라고 권하고싶진 않지만... 한번 타보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