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간에 시읽기 1 문학시간에 읽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 안에는 리듬과 심상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이 있고, 관계가 얽어낸 상처들의 아린 내음이 있다.
한숨 소리도 있고, 반짝이는 눈빛들도 있다.
이런 걸 읽지 못하고, 반복되는 사랑 타령이나 읊조리는 젊음은 가엾다.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고 싶은 책.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 석 헌

만리 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나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천성보다도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바다 3     -   이도윤

썩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움직이는 바다를 보아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아라

그런 자만이 마침내
뜨거운 해를 낳는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 복효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 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 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 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뿌리가 나무에게
                              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 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 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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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3-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국어시간에 시읽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문학시간에 시읽기'도 있군요.^^
'바다'는 처음 접하는 시예요. 좋군요~~~~

글샘 2008-03-15 14:01   좋아요 0 | URL
그건 중학생 용이고요. 문학 시간에~~시리즈가 좀더 머리굵은 애들 용입니다.

마들렌 2008-10-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인사도 없었는 데 제가 이현주목사님이 시를 옮겨갔습니다.
우연히 왓다가 글샘님 글이 좋아서 오늘만 몇번 왔습니다.
용서해 주실거죠
그럼 편한 밤 되세요

글샘 2008-10-16 10:3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필요한 거 있으면 옮겨다 쓰세요. 그게 인터넷 글인데요. 뭐~
가끔 놀러 오세요~~~

마들렌 2008-10-1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 질곡의 한국사를 '뜻'으로 풀어내린 '함석헌'님께서
이세상을 그냥 두고 떠나기엔 미련이
남아 있었나 보군요

개인적으로 좀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