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8 - 1호                             00고등학교 3학년 9반


게임의 법칙을 알면 게임이 즐겁습니다

0 0 고 3학년 9반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새 학년도의 담임을 맡은 0 0 0 입니다. 중요한 고3의 첫날을 맞아 학부모님과 학생들의 관심이 높을 것 같아 몇 자 미리 적습니다.
우선 담임인 제 소개를 하자면, 담당 과목은 국어이며 올해로 20년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학교 3곳과 고등학교 2곳을 거쳐 올해 0 0 고로 전근을 왔습니다.

고3이라고 하니 이제 제법 ‘입시준비생’이 된 듯도 하고,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선 것도 같고... 입시에 대한 중압감도 클 것 같고... 부모님과 학생의 긴장이 매우 높을 것이고, 그만큼 걱정과 불안도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3이라고 갑자기 생활 패턴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좀더 열심히 할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올해 1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클 것이기 때문에 고3은 중요하고도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 제도에서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대학 입학>을 많은 사람들이 뽑을 것입니다. 어떤 대학을 갔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편지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대략의 청사진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인터넷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게임의 법칙 하나.
모든 게임은 시작할 때 레벨 1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레벨 1에서 버벅거릴 때 높은 지력과 마법을 쓰는 사람도 원래는 1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게임의 법칙 둘.
모든 게임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 투자하면 한 레벨을 올릴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두 시간 투자해도 별로 소득이 없을 때도 있고, 누구는 좋은 아이템을 잘 얻는데, 난 아닐 수도 있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이걸 인정하면 맘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게임의 법칙 셋.
게임은 레벨이 오를수록 어려워집니다. 레벨 2로 오르기 위해서는 아주 허약한 몬스터 십여 마리만 처치하면 되지만, 레벨 3으로 오를 때는 이십여 마리…. 레벨 10정도 되면 100여 마리. 여기까진 재미있고 쉽고 하루 만에 오를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레벨이 20이 넘어서면 하루에 1레벨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3,40 레벨 정도 되면 한 레벨 올리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때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찾거나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새 아이디를 만들거나.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레벨이 오를수록 게임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게임의 법칙 넷.
게임을 하다보면 캐릭터가 죽는 때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어려운 상대를 찾아가서 무리하게 득점을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적절한 상대를 찾아 꾸준히 득점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게임의 법칙 다섯.
누구나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게임의 법칙 두 번째에서 게임은 공평하지 않다고 했지만, 게임은 마지막까지 참고 진행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게임의 법칙을 인용한 이유는...
1. 우리는 모두 비슷한 머릴 갖고 태어났다.
2. 그러나 우리의 가정 환경과 지적 조건, 사회 환경 등은 공평하지 않아서 지금 많은 차이를 보인다.
3. 학년이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는 어렵게 마련이다. 그렇다는 걸 알면 스트레스가 적다.
4.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헤매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5. 꾸준히 노력한 자에게 행복한 결과가 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3 생활은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날마다 웃기는 친구들이 있고 “집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할 만큼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수시로 ‘담임 통신’을 통하여 그때그때 생각할 것들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3월엔 학생들을 만나면서 학생들의 환경과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가능하시다면 학부모님께서 학교로 한번쯤 방문해 주시든지 전화로라도 통화를 했으면 합니다. 학생을 이해하는 데는 학부모님과의 짧은 상담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출장이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010-9668-0000, 메일 s000000@hanmail.net,)
4월부터는 학생들의 학습 습관이나 학습 기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이고, 지속적으로 성적 관리를 해 나갈 것입니다.
5,6월 경에는 수능 응시 과목에 대한 상담을 하여 자연반 수학을 응시할 것인지 인문반 수학을 응시할 것인지도 확정할 것이며, 여름 방학부터는 수시 모집부터 시작하여 입시 지원 상담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학교의 일정은 3월 15일(토) 오후에 ‘입시 설명회 및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깊은 상담은 어렵습니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첫 모의고사가 4월 15일(화)에 있습니다. 수능만큼 중요한 시험이니 학생들이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가정에서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교수(學, teaching)’와 ‘학습(習, learning)’의 두 가지가 함께 어울려야 효과적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수’가 중요하고, 학문이 고도화될수록 ‘학습’이 중요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엔 선생님이 중요하지만, 대학 시절엔 스스로 하는 공부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을 올리려고 ‘학원을 더 다니자. 인터넷 강의를 하나 더 듣자.’고 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3 시기에는 스스로 공부에 익숙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스로 공부하다 보면, <주말과 방학>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는 날 실컷 자거나 놀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일은 ‘나무 기둥에 토끼가 달려와서 부딪혀 죽기를 바라는 것(수주대토)’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작년 3학년들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니 ‘저주받은 89년생’이니 하여 올해 입시에서 재수생 파워가 막강할 것이라는 <학원>의 분석이 있습니다. 물론 ‘수능 등급제’로 인하여 총점은 더 낮은데도 등급의 운이 좋아서 좋은 대학을 간 학생도 분명히 있고, 더 좋은 점수로도 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올해 ‘서울대, 연대, 고대, 의약대’등은 미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몇 점 차이로 누가 들어가느냐가 달라졌을 뿐, 상위권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하여 재수를 하던 분위기는 올해라고 특별히 강해진 것은 아니며, 재수생의 학력이 높지만 예년에 비하여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 심리’를 조장하여 이익을 보는 것은 ‘학원’일 뿐입니다. 원래 상위권 학생들이 재수를 많이 하고, 1년 더 공부했으니 성적이 좀 오르는 것은 어느 해나 있어온 일입니다.

원래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순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닙니다.매일 학생들 곁에서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며 학생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교사입니다.
저는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교실에 비추어 생각해 봅니다.
정말 그대로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인생에 ‘등대’가 될 수도 ‘표지판’이 될 수도 없지만, 학생들이 꾸물거릴 때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칠 수도 있고, 낙담해 있거나 슬럼프에 빠졌을 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 8시부터 영어 듣기 방송이 나갈 예정입니다. 반드시 교재를 준비하여야 하며, 7시 50분까지는 교실에 입실하여야 합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는 속담을 저는 믿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빠지려는 학생들은 미리 단념을 하기 바랍니다.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는 법이지만,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어지간히 아픈 걸로는 조퇴할 수 없습니다. 조퇴가 잦은 회사원은 감원 대상 1순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도 실력입니다.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고3 학생에게 ‘핑계’는 없습니다. 등,하교가 자리잡히지 않은 반은 입시 성적에서 비례하는 성적을 얻습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수업에 심한 방해를 하여 교과 선생님으로부터 혼나는 경우에도 따로 불러 야단맞을 각오를 하기 바랍니다.
고3, 1년간 학교에서 이런저런 수능 대비 교재를 준비하라고 할 것입니다. 연간 20만원 가량의 문제지 구입 비용이 들 것입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수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분실에 대비하여 책 윗부분에 매직으로 학번을 크게 적어두기 바랍니다.

‘개구리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죽을힘을 다해 <팔짝> 뛰쳐나오지만,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따뜻함을 즐기다 그만 익어서 <희떡> 뒤집어지고 만다는 말입니다. <나쁜 습관>은 이와 같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어느 순간 '희-떡-' 뒤집어지게 만들고 만다는 거죠.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뜨거운 물에 깜짝 놀란 개구리처럼, 과감히 '확' 버리기 바랍니다. 도둑들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집중>하고,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잠을 설쳐대는데, 우리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가치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몹쓸 일입니다.

오늘부터 250여일 남은 ‘수능(11월 13일, 목)’을 어떻게 준비하는가를 3학년의 첫날인 오늘, 단단히 준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길게 글을 썼습니다. ‘학원’에서는 불안감을 조장하기 위하여 ‘논술’이 중요하다거나 ‘내신’이 어느 해에 중요하다거나 호들갑을 떨게 마련입니다만, 올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수능’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어렸을 때 ‘꿈’이 있었습니다. 성장하면서 ‘현실’에 비추어보면서 점점 바래버린 '자신의 꿈'을 사랑하도록 부모님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성적과 가정 환경과 경제적 형편을 모두 고려하다보면 보석같은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고, 지금의 내 성적이 충분히 좋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넉넉하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걸 하도록 돕는 일이 어른들의 일입니다.
꿈을 갖는다는 건, 바로 이것.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학생들이 늘 바쁘기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담임 통신을 학생들에게 띄울 생각입니다. 학부모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 3월 3일

귀한 학생들을 만난 첫 날에 새 담임선생님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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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들 선생님이 보내신 가정통신문
    from 파피루스 2008-03-05 19:36 
    내가 13년째, 아니 유치원부터 하면 14년째 학부모 노릇을 하면서 선생님들이 보내신 특별한 가정통신문은 다 모아두고 있다. 담임의 첫인상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담임샘의 교육철학이 담긴 것이라서 일년을 지켜보게 된다. 이제는 이런 자료가 우리딸이 초등선생님 되었을 때, 실제적이 도움이 되겠다 싶어 보관하길 잘했다며 또 자화자찬이다.^^ 어제 중3 아들녀석이 가져온 선생님의 통신문이다. 잘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선생님들의 이런 애정과 열정이
 
 
루루 2008-03-0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겨우" 2년차 되는 교사입니다. 내일 만날 학생들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구요. 어찌어찌해서 종종 와 쓰신 글을 보곤 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 게 쑥쓰럽기도 하네요^^;
저도 학부모님들이나 학생들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정말.

글샘 2008-03-03 18:29   좋아요 0 | URL
2년차나 20년차나 아이들 앞에서 설레고 떨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도 이런 편지 써 보세요. 아이들도 부모님도 참 좋아하고 신뢰가 쌓인답니다.

2008-03-05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8-03-05 13: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글을 쓰시는 건 뭐,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영어는 그런 비법이 있었군요.
날마다 바쁘고 피곤하지만 아이들이랑 뒹구는 교실은 늘 뜻밖에도 즐겁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