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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존 홀트 지음, 공양희.해성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7월
평점 :
에피소드 1.
혜덕화님 글에서 5학년 아이들에게 받아쓰기를 시켰더니 다 맞은 아이가 한 명밖에 안 나온다는 이야길 읽었다. 실업계 아이들은 어떨까?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선생님의 문제를 그대로 받아서 두 반에서 놀아 보았다.
한 반에서는 스무 문제를 그대로 불러 주었다. 다 맞은 아이는 없다. 한 문제 틀린 아이도 없다. ㅠㅜ 두 문제 틀린 아이가 서너 명 나왔고, 평균은 13~4점이다.
다른 반에서는 좀 곤란한 문제만 10개를 불러 주었다. 다 맞은 아이는 역시 없다. 한 문제 틀린 아이가 한 명. 두 문제 틀린 아이가 서너 명. 평균은 6~7점.
그리고 다른 반에서는 하기를 포기했다.
5학년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보고 연습을 해서 시험을 쳤기 때문에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일을 자꾸 하는 것은 열패감을 주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글 맞춤법. 너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걸로 끝냈다.
에피소드 2.
우리 집엔 아이가 아들 하나다. 이제 중3 올라가는 아이인데,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혼자서 놀기를 좋아하고 나서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친구와 노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아내가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제 친구들과 노는 일에 정말 열심인데... 공부도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중학교 들어가서 공부 좀 하지? 하고 스트레스를 주면서 옆에서 시키기도 하고 학원도 보냈는데, 반에서 10등 정도한다. (전교 석차로 25% 정도) 우리 동네는 그닥 잘사는 동네도 아파트촌도 아니어서 부산에서 중하 정도 되는 남자 중학교에서 그정도 성적이니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런데 혼자서 공부하는 모습 보면 안심이 안 된다. 그냥 하겠거니 하다가도 느릿느릿하고 무사태평한 아이 모습을 보고 괜히 불안해서 잔소리를 하게 된다.
에피소드 3.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아빠와 아기가 식사중이다.
아빠가 말한다. 자 빨리 먹자. 아이의 대답은 "Why?"
다시 아빠. 음, 빨리 먹고 자야지 착한 어린이지요. 다시 "Why?"
잘 먹고 잘 자야 쑥쑥 자라는 거란다. "Why?"
잘 잘 때 온 몸에서 성장 호르몬이 나오는 거야. "Why?"
?????????????? ㅜㅠ 드디어 아빠는 대답이 막힌다.
주변에 아이들이 있고, 교육 활동은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교육의 효과를 검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뾰족한 이론적 바탕도 없이 그냥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요구한다.
야단치고, 윽박지르고, 억압하고, 심지어는 체벌까지 가하면서...
내가 셋 셀 동안 못하면 혼 날 줄 알아! 하고 어른의 기준의 주입하려 한다.
저자는 말한다.
서두르지 마라!
가르치려 하지 마라!!
절대 서둘러 가르치려 들지 마라!!!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이다. 여러번의 시행 착오를 통하여 '감'을 '확신'으로 '지식'으로 굳혀 가는 것이다. '감'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아이에게 '지식 교육'을 행하는 일은 아직 아교가 굳지 않은 의자에 앉히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언어'일진대, 언어는 특별한 교육 과정을 통하여 습득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 끝없이 반복해서 암기하고 자동으로 그 언어를 2~3년 안에 완벽하게 습득한다. 어른들은 결코 그 업적을 이룰 수 없다. 교육이란 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음과 모음부터 발음을 가르쳐서는 결코 언어교육에 성공할 수 없는 것.
<아이들을 믿으려면 우선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배워왔다. ... (8)>
원인은 이것이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
아이들은 사악한 존재이며, 아이들은 '길을 들여 복종시켜야 할 사악한 악마'이거나, '프로그램을 잘 돌리면 천재로 만들 수 있는 두 발 달린 컴퓨터'로 보는 것. 이 두 관점 모두를 반대하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치 않는다.
온 몸을 반복해서 쿵 넘어지게 하거나 머리통이 띵하도록 박치기를 하는 놀이를 원한다.
소리를 지르는 일을 반복하고 싶어하고, 재주넘기를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어지럼을 느끼고 웃는다. '학교 정신'으로 아이들이 대학에 가기를 바라면서 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첼로를 권해보면 대부분 받아들이지만, 어른들은 거절한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세상을 살게 자유를 돌려 줘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우리에게 덜 의지할수록 아이들은 스스로를 더 잘 가르칠 수 있다.(161)
머릿속에만 이런 생각을 담고 맨날 아이들을, 아들을 구박하는 나는 역시 '학교 정신'으로 무장한 교사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할 리가 없지.
우리 모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실수를 가지고 남 말하는 데 끼어드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알고 있다. (167) 쿡, 찔린다.
잔소리는 화를 불러 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건 모욕이기 때문이다. 부탁받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넌 네가 이걸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만큼 똑똑하지 못해. 그리고 이걸 익힐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못하고."하고 모욕하는 말.
나는 제자들과 아들을 모욕하는 선생이고, 아빠였다. 미안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감'으로 배워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기다려 주는 일'이다.
아이들을 시험하기 위해(또는 모름을 증명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희미한 감을 반복하여 지식으로 바꾸는 더딘 과정을 중간에 끊어버리는 나쁜 일이다.
서두르지 말고,
가르치려 말고,
끼어들지 말고,
기다려 주어라!
그러지 않으면 그리칠 지 모르니... 욕속부달이다. 욕심을 내면 이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