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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소설(小說) 1 - 소설보다 더 재미난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조용헌은 '한국의 전통'에 매달린다.
그것이 철학이든 사소한 민속이든 그는 일단 관심을 들이고 본다.
한 나라의 전통은 '가진 자들'의 그것이 많다.
못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의 문화를 부러워하고 하다 보니 가진자들의 문화가 전통으로 굳어지는 것이 많다. 이슬람의 차도르가 그렇고, 중국의 전족이 그렇다.
그렇다고 서민들의 문화에서 배울 만한 것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다양한 짚문화라든지 음식 문화들 중 서민의 그것들도 현대에 수용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 땅을 빌려 살면서, 아쉽고도 아쉬운 것은 이 땅의 전통 문화는 일제 시대와 전쟁을 거치고 산업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한 100년 사이에 몽땅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전통 문화는 의식주 등의 용기문화에서부터, 습관이나 예절같은 문화와 뿌리깊은 언어, 철학 같은 관념 문화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몸에 배인 것인데, 식민지와 전쟁, 전쟁보다 무서운 산업사회와 독재자들의 행패는 전통 문화를 실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나 박통은 설, 추석도 없애려 하였고, 무속이나 한의학의 맥도 몽땅 끊어버렸다. 그 뒤의 학살자는 무조건 '전통'만 되살리자고 꼴깝을 떨기도 했고... 그것이 국풍 81같은 쌩쑈였지만...
이제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전통의 뿌리를 뒤적이는 조용헌의 발걸음은 그래서 쓸쓸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그는 온갖 의식주의 뿌리에서 전통의 맥락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진 자들'의 집안에 남아있는 전통이기 쉬운 것이다.
그도 이야기한다. 한국의 가진 자들은 '귀족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졸부'들이 많기 때문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경주 최부자처럼 부자가 존경받으려면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역의 양중음, 음중양을 이야기하는 그의 속도 무진 쓰리리라.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세상의 이치가 실상에선 먹혀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텔레비전에서 '의식주'에 대한 프로그램 중, '한국의 옷'이나 '한국의 집', '한국의 사상'에 대한 것은 드문 반면, '먹을 거리'는 신토불이와 만나서 단골 메뉴로 자리잡았다. 일본 방송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도 없으리라만, 온갖 먹을 거리를 화면에 담아내는 것도 전통을 찾는 한 가지 길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먹을 거리만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카메라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도 양이 있게 마련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 되었다고 좋아할 노릇도 아니었듯,
이명박 당선자가 인수위와 꼴깝을 떤다고 좌절할 노릇도 아닌 모양이다.
한국 최초의 노동당이 분열되는 모양을 보면서도 '음중양'을 바라 본다.
조용헌의 과거 여행은 '진보'를 일컫는 자들이 욕하는 것일는지 모르지만, '진보'를 참칭하는 자들이 내용성을 채워나가지 못할 때, 하나의 길을 꾸준히 탐색하는 황소 걸음처럼 자기의 세계가 있다.
비록 이런 이야기를 싣는 도구가 죄선일보란 같잖은 신문이지만 그 또한 '양중음'의 한 면으로 읽을 수도 있으리라.
그의 '작은 이야기'들은 '의식주'의 기본 생활 뿐 아니라 우리가 배우지 못한 철학적 세계를 다루어 주어 '다이제스트'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이규태의 '칼럼'처럼 말이다. 정말 아쉬운 것은 한국의 옛 철학을 배우는 일이 참으로 드물고 드문 것이란 점이랄까.